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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고랜드발 채권시장 쇼크…개입나선 금융당국

  • 2022.10.21(금) 08:16

채안펀드 가동하는 금융위…증권가는 '추가조치' 요구
일각선 도덕적 해이 비판…통화당국과 엇박자도 문제

회사채와 기업어음(CP) 투자심리가 급랭하면서 금융당국이 결국 단기자금시장 개입을 택했다. 강원도 춘천 레고랜드발(發) 유동성 리스크가 시장 전반으로 확산될 조짐을 보이자 긴급 진화에 나선 것이다.

그간 개입 '검토' 또한 일종의 조치라고 선을 긋던 스탠스를 감안하면 현 상황을 그만큼 엄중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당국의 이같은 시장 개입은 그러나 금융회사의 도덕적 해이를 부를 수 있다는 우려도 낳는다. 자칫 증권사의 오판을 당국이 메꿔주는 모양새가 될 수 있다는 비판이다.  

일각에서는 금융당국의 유동성 지원이 자칫 증권가의 도덕적 해이를 부르는 게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 사진=금융위원회

신용 스프레드 7일 연속 연중 최고…당국도 입장 '급선회'

21일 금융위원회는 회사채와 기업어음(CP)을 매입하고 추가 캐피탈콜(투자 대상 결정되면 출자)도 준비하겠다고 밝혔다. 코로나19 팬데믹이 한창이던 2020년 조성한 채권시장안정펀드(채안펀드) 자금이 그 재원이다. 

채안펀드는 회사채 등 채권시장 경색으로 기업들이 정상적으로 자금을 조달하지 못할 때 유동성을 공급하기 위해 금융기관과 기업들이 출자한 펀드다. 국고채와 회사채의 과도한 스프레드(금리 차이)를 해소하는 차원에서도 활용된다. 

불과 지난주까지만 해도 채안펀드 가동에 신중한 입장을 보였던 금융당국이 이처럼 입장을 급선회한 건 최근 레고랜드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 미상환 사태로 회사채와 CP 금리가 치솟는 등 채권시장이 급속도로 얼어붙어서다. 회사채 투자심리의 척도인 신용 스프레드는 실제 확대 일변도다. 

신용등급 'AA-'인 회사채 3년물 금리는 전일 연중 최고치인 연 5.588%로 국고채 3년물(연 4.350%)과의 신용 스프레드가 1.238%포인트까지 벌어졌다. 이는 지난 19일 신용 스프레드(1.202%포인트)보다 더 확대된 수치로 최근 7거래일 연속 최고치 경신이다. 레고랜드 ABCP 만기 직전 거래일인 지난달 28일(1.004%포인트)과 비교하면 격차는 더 커진다. 

기업들의 대표적 단기자금 조달수단인 91일물 CP 금리는 연 4.1%까지 뛰었다. 앞서 지난 19일(연 4.02%) 2009년 1월28일(4.09%) 이후 13년 만에 4%대에 진입했는데 여기서 더 오른 것이다. 

회사채 3년물과 국고채 3년물의 신용 스프레드가 확대 일변도다. / 자료=금융투자협회

이처럼 신용 스프레드가 확대되는 건 회사채에 높은 이자가 요구된다는 뜻이다. 시장에서 리스크를 그만큼 크게 보고 있다는 의미다. 기업 입장에서는 높은 금리를 부담해서라도 자금을 조달하려고 하지만 최근 레고랜드 사태까지 터지면서 시장의 리스크 회피 심리는 더욱 강해지고 있다.

이경자 삼성증권 연구원은 "(레고랜드 ABCP 디폴트로) 지방자치단체가 보증한 채권에까지 불신이 생겼고 시장 전반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유동성 축소로 가뜩이나 어려운 시기에 지자체의 결정을 이해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금투업계 "채안펀드론 부족…통화당국까지 나서야" 

금융투자업계는 이처럼 경색된 시장 상황에서 금융당국의 보다 적극적인 조치를 바라고 있다. 특히 레고랜드 ABCP에 대거 투자한 증권사들은 더욱 목이 마른 상태다.

금융감독원이 국회 정무위원회 양정숙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신한투자증권, IBK투자증권, 대신증권, 미래에셋증권, 삼성증권, NH투자증권, 한국투자증권, DB금융투자, 유안타증권, KB증권 등 증권사 10곳과 멀티에셋자산운용이 총 2050억원의 레고랜드 ABCP를 편입했다. 이들은 모두 법인투자자 계정이지만 증권사 고유계정 편입분이 없어 ABCP 관련 피해가 고객에게 이어질 수 있다.

이에 금융당국의 채안펀드 가동 이외에도 통화당국의 기업유동성지원기구(SPV)의 필요성까지 업계는 언급하고 있다. 김기명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매입약정이나 확약 등 신용보강을 제공한 증권사는 자체 자금으로 PF ABCP를 인수해 급한 불을 끄고 있다"며 "채안펀드만으로는 시장 기능의 완전한 회복에 한계가 있다"고 밝혔다. 

특히 기존 시장 참여기관이 참여하는 캐피탈콜 방식의 채안펀드는 신규 자금 공급 효과가 떨어진다는 설명이다. 김 연구원은 "결국 자금이 이쪽 주머니에서 저쪽 주머니로 옮겨지는 것으로 효과는 제한적일 수 있다"며 "한국은행의 무제한 환매조건부채권(RP) 매입과 저신용등급을 포함한 회사채·CP 매입기구인 SPV 재가동의 필요성도 있다"고 주장했다.

증권사 도덕적 해이 우려…고금리 기조와도 엇박자

일각에서는 그러나 금융당국의 유동성 지원이 자칫 증권가의 도덕적 해이를 부르는 게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채안펀드는 '구제금융'이 아니기 때문이다. 앞서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일부 증권사는 CP 발행으로 조달한 자금을 운용에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된 바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채안펀드 투입으로 애먼 기업만 살려주는 꼴이 될 수도 있다"며 "수익을 노리고 들어간 증권사들의 판단 미스 측면에서도 사안을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더욱이 지금 통화당국은 금리인상을 가속화하고 있다. 앞으로 금리가 더 올라갈 것이 자명한 상황이다. 한쪽에서는 금리를 인상해 시중 자금을 조이는데 다른쪽에서는 유동성을 푸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김은기 삼성증권 연구원은 "최근 신용 스프레드 확대는 물론 신용위험에 대한 부담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긴축 통화정책에 따른 유동성 부족이 더 근본적인 원인"이라며 "금융당국의 시장 안정화 방안이 큰 역할을 하기는 힘들 것으로, 궁극적으로는 금리 변동성 완화 및 금리 하향 안정화가 중요하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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