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건 거래의 종결은 계약서상 규정된 선행조건이 모두 충족되는 것을 전제로, 양도인(이수만 전 총괄프로듀서)이 신청한 '2023년 2월 7일자 이사회 결의에 따른 유상증자 및 전환사채 발행 전부를 금지시키는 가처분'에 대한 법원의 결정이 발령된 날로부터 5영업일이 되는 날 또는 당사자들이 별도로 합의하는 일시에 진행하기로 한다."
에스엠 최대주주 이수만 전 총괄 프로듀서와 하이브가 체결한 주식양수도계약 양수도 대금 지급 조건에는 이러한 문구가 적혀있다. 이 문구를 놓고 금융투자업계와 법조계 일각에서는 계약 선행조건이 에스엠 경영권 분쟁의 또 다른 변수가 될 수 있다는 추정이 난무했다.
대표적으로 공개매수 성공 여부 또는 가처분 인용 여부가 주식양수도계약 이행에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공교롭게 에스엠 최대주주가 이수만 전 총괄에서 하이브로 바뀌는 날짜(3월 6일)는 카카오가 유상증자 및 전환사채 대금을 납입하기로 한 날짜와 같다.
그러나 거론된 두 가지 모두 선행조건에 포함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통상적인 수준의 선행조건만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 전 총괄의 홍콩법인 CT플래닝(CTP)의 정체를 하이브가 '몰랐다'고 밝힌 점은 진술 보장 조건을 위반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공개매수 성공, 주식 양도 전제 아니다
지난 10일 이 전 총괄은 하이브와 주식양수도 계약을 맺고 보유 주식 439만주 가운데 352만주를 넘기기로 했다. 1주당 12만원으로 산정해 총 매각대금은 4228억원이다. 에스엠의 최대주주가 공식적으로 이 전 총괄에서 하이브로 바뀌는 날짜는 3월 6일이다.
공시를 자세히 살펴보면 이 계약에는 선행조건이 있다. 선행조건을 충족하지 않으면 계약이 파기될 수 있는 것이다.
법조계 일각에선 이 전 총괄로부터 지분을 매입하는 하이브가 내건 조건이 '공개매수 성공' 혹은 '카카오 대상 신주 및 전환사채 발행 금지 가처분 신청 인용'이라는 예상이 제기됐다.
만일 하이브가 공개매수에 실패한다면 풋옵션(매수청구권)으로 이 전 총괄의 잔여지분을 넘겨받더라도 총발행주식의 18%에 불과해 안정적인 경영권 확보가 어렵다. 또 법원이 가처분 신청을 기각한다면 카카오가 주당 9만원대로 9%에 달하는 지분을 확보하며 잠재 위협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당국에 따르면 이 전 총괄-하이브 사이의 주식양수도 계약 조건에는 공개매수 성패 여부는 없는 것으로 확인된다. 만일 선행조건에 포함됐더라면 이를 공개매수 신고서에 분명히 밝혀야 하지만 공시 서류에는 이런 내용을 찾아볼 수도 없다.
실제로 에스엠과 비슷한 시기 최대주주 주식양수도계약과 공개매수를 동시에 발표한 오스템임플란트의 경우, 공개매수가 성공해야 최대주주 주식 양수도계약도 종결된다는 내용이 명시돼 있다.
가처분 인용 여부도 최대주주 변경계약과 별개
가처분 신청 인용 여부도 선행조건에 해당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법적 분쟁에 따른 계약 불이행 위험은 통상 주식양수도 계약 조건에 들어가긴 한다.
이 전 총괄과 하이브간 주식 양수도계약에서도 ①진술 및 보장이 중요한 측면에서 진실하고 정확할 것, ②확약 및 의무가 중요한 측면에서 이행될 것 ③본 거래를 금지하거나 중대하게 제한하는 법원 기타 정부기관의 판결, 명령 기타 조치가 없을 것 ④본 거래의 종결에 필요한 정부기관 승인을 받았을 것 등이 포함돼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나 이 전 총괄이 제기한 카카오 대상 신주발행 금지 가처분 신청은 이수만-하이브 주식양수도 계약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법률적 리스크가 아니라는 게 당국자들의 판단이다.
만약 카카오가 주식양수도계약 당사자라면 위 조건 중 '③본 거래를 금지하거나 중대하게 제한하는 법원 기타 정부기관의 판결' 항목에 해당할 수 있지만, 카카오는 가처분 소송의 당사자일뿐 주식양수도계약의 당사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수만의 역외탈세 논란, 계약 이행 변수?
다만 이 전 총괄이 하이브와의 주식양수도계약 체결시 통상적인 수준의 조건(진술 및 보장의 진실성과 정확성)을 위반했는지에 대한 논란은 존재한다.
이 전 총괄의 반대편에 서있는 이성수 에스엠 대표가 홍콩법인 CTP를 '해외판 라이크기획'이라고 저격하고 나선 이유 중 하나도 이수만-하이브 주식매매계약에 균열을 내기 위한 의도라는 해석이 나온다.
이와 관련 하이브는 "주식매매계약을 체결할 당시 이 전 총괄이 CTP라는 회사를 소유하고 있다는 내용도, CTP가 SM과 계약이 체결되어 있다는 내용도 전달받은 바 없다"고 지난 16일 밝혔다.
다만 하이브는 본인들이 인지하지 못한 거래 발견 시 이 전 총괄이 이를 모두 해소하도록 계약을 맺었고, 향후에도 문제가 되지 않도록 이사회를 통해 투명하게 관리를 할 것이기 때문에 이성수 에스엠 대표의 문제 제기는 의미 없다고 일축하고 있다.
하이브의 입장은 결국 CTP 존재는 몰랐지만, 이를 근거로 계약을 파기할 의사는 없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권재열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정확한 계약 내용을 살펴봐야겠지만 일반적으로도 세금 탈루와 같은 법률 위반이 확인될 경우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는 내용이 들어간다"면서도 "지금처럼 경영권 분쟁이 급박한 상황에선 이런 사유가 계약 해지로 이어지기보다는 가격 산정 등 부가적인 사항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