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과 페이스북, 아마존 등 플랫폼 사업자를 중심으로 글로벌 정보통신기술(ICT) 생태계가 재편되고 있다. 플랫폼 사업자에 맞서 독자 영역을 구축하거나 플랫폼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전략이 요구되는 현실이다. 이들 플랫폼의 성공 비결과 이에 대응하는 전략을 시리즈로 알아본다. [편집자]
시작은 별것도 아니었다. 지난 2003년 하버드대 학생이었던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창업자는 교내 여학생 얼굴을 비교하는 사이트 '페이스매시'를 만들었다. 화제를 모았다. 남학생들은 키득키득 웃었고 여학생들은 분노했다. 교내 전산 시스템을 해킹한 정보를 활용한 수단은 문제였다. 이듬해 저커버그는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사진을 올리는 페이스북을 만든다.
2017년 현재 페이스북은 월 활동 사용자(MAU)만 전세계 20억명에 달하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됐다. 페이스북은 약 700년 전 세계를 호령했던 칭기즈 칸의 ICT 버전이라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페이스북이 단순히 사용자 숫자만 많았다면 대단한 서비스가 아닐 수 있다. 관련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력이 관건이다. 그래야 플랫폼이다. 플랫폼은 상품을 생산하고 소비하는 활동을 위해 반복적이고 공통적으로 사용하는 토대를 말한다. 플랫폼은 쉽게 말해 엄청나게 큰 장터다. 이 장터에 가면 다른 어떤 곳보다 효과적으로 일을 도모할 수 있다.
페이스북은 그런 점에서 플랫폼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페이스북은 기술적 업그레이드를 지속하면서 자사 플랫폼을 통해 성장한 수많은 성공 사례를 만들고 있다.
예를 들어 지인 추천을 기반으로 운영되는 채용 플랫폼인 '원티드'(Wanted)는 페이스북 로그인 기능을 통해 회원 가입과 로그인 절차를 단축하고 플랫폼을 활성화했다. 페이스북 로그인 연동으로 기존보다 신뢰할 수 있는 프로필을 확보해 현재 1400곳이 넘는 기업들이 원티드를 이용하고 있다.
맛집 검색·추천 서비스 플랫폼인 '망고플레이트'(MangoPlate)는 자사 서비스에 페이스북의 장소 애플리케이션프로그래밍인터페이스(API)와 페이스북 로그인을 적용해 신규 음식점 데이터베이스(DB)를 최신 상태로 유지하고 데이터 입력 과정을 자동화할 수 있었다. 망고플레이트는 해당 기능 도입 후 기존보다 14배 많은 신규 음식점을 DB에 추가하면서 불과 2주일 만에 3만개의 신규 음식점을 확보했다.
페이스북을 통해 글로벌 마케팅을 하는 사례는 더 많다. 한 국내 스타트업 창업자는 "페이스북을 통해 국내는 물론 글로벌 사용자를 상대로 마케팅을 손쉽게 할 수 있었다"며 "페이스북 마케팅을 나만 알고 싶었을 정도로 효과가 좋았다"고 말했다.
전자상거래(e-commerce) 기업들은 해당 업종에 담긴 의미 그대로 장터로서의 플랫폼 역할을 하고 있다. 글로벌 기업 가운데 대표적 사례로는 미국 아마존과 중국 알리바바가 있다. 이 가운데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기업 알리바바도 시작은 보잘것 없었다. 마윈 알리바바 회장은 지난 1999년 지인 18명을 상대로 돈을 받아 사업을 시작할 정도로 열악한 상태에서 일을 시작했다. 투자 유치도 어려웠다.
그런데 현재 알리바바의 연간(2016년 4월∼2017년 3월) 매출액은 229억9400만달러(25조9000억원)에 달한다. 매출 규모는 미국 아마존과 이베이를 합친 것보다 많다. 알리바바 플랫폼을 통한 연간 실제 구매자는 4억5400만명, 월 활동 사용자의 경우 모바일만 5억700만명에 이른다.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알리바바를 '세계 최대의 장터'라고 불렀다.
알리바바 또한 생태계를 지원하면서 초대형 플랫폼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 지난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가 진행될 때도 오히려 자사 이익을 줄이고 중소기업의 수출을 돕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OTT(온라인 동영상 스트리밍) 분야 세계 최대 기업 중 하나인 넷플릭스도 마찬가지다. 넷플릭스는 현재 190여개국에서 1억900만명의 회원을 보유하고 있는데, 지난 1997년 창업 당시엔 DVD 대여점에 불과했다.
영화 DVD 연체료를 물어낸 경험에서 월 정액제 비즈니스 모델을 떠올렸다는 리드 헤이팅스 창업자는 현재 전세계 콘텐츠 제작자들과 협력하며 생태계를 이루고 있다. 넷플릭스 플랫폼을 통해 영상 콘텐츠를 전세계에 유통하라는 메시지가 담긴 플랫폼 전략이다.
이런 방식이 넷플릭스에도 이익이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옥자' 제작을 지원하며 국내 OTT 플랫폼 시장도 공략하고 있는 게 대표적 예다. 각국의 유명한 콘텐츠 제작자에게 대규모로 투자하는 대가로 영상을 독점 공급함으로써 넷플릭스 앱을 고객 스마트폰에 깔게 만드는 전략이다.
이처럼 글로벌 플랫폼 사업자들은 적절한 시기에 획기적인 서비스를 내놓고 기술을 개발하며 파트너사들의 이익을 돕는 방식으로 생태계를 꾸려 거대 장터를 이뤄왔다. 물론 이들은 수많은 서비스를 직접 하지 않으면서 장터만 갖고 돈을 벌지만, 이들 또한 저마다 위기를 극복하고 다양한 플랫폼과의 경쟁을 통해 성장했다는 점을 무시하기 어렵다.
문제는 거대한 글로벌 플랫폼을 상대로 경쟁을 벌여야 하는 국내 플랫폼들과 글로벌 플랫폼의 영향력에 기대야 하는 사업자들이다. 글로벌 플랫폼의 영향력은 점점 강해지고, 기존 질서는 무너지고 있어서다.
가장 단적인 예를 보면, 넷플릭스는 미국 최대 비디오 대여 회사로 불리던 블록버스터를 파산에 이르게 했다. 사정이 이러니 플랫폼을 이해하지 못하는 기업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까지 나온다. 국내 대형 플랫폼 네이버와 카카오는 구글, 페이스북, 넷플릭스 등에 계속해서 맞설 수 있을까도 향후 관심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