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조용했던 국내 디지털 음원시장이 요동칠 전망이다. 스마트폰과 더불어 인공지능(AI) 시대를 맞아 디지털 음원이 확실한 킬러 콘텐츠로 자리매김하면서 주요 정보통신기술(ICT) 기업들이 서비스를 정비하거나 신규 플랫폼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어서다. 수 년째 국내 음원시장을 장악해온 멜론의 아성이 흔들릴지도 관심이다. [편집자]
스마트폰 이용자라면 멜론, 지니, 벅스, 엠넷 등 음원 서비스 하나쯤은 가입해봤을 것이다. 월 1만원 정도를 내면 스트리밍 방식으로 음원을 무제한 들을 수 있어서다. 국내 음원 시장점유율은 멜론이 절반 이상을 차지하면서 수 년째 1위 자리를 지키고 있으나 올 들어 큰 변화가 예고되고 있다.
검색포털 맹주 네이버와 동영상 플랫폼 강자 유튜브가 서비스 전략을 새로 짜고 있는데다 최대 이동통신사인 SK텔레콤이 올 4분기를 목표로 새로운 서비스를 준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멜론을 운영하는 카카오M(옛 로엔엔터테인먼트)도 음원 콘텐츠와 메신저 카카오톡을 결합시켜 전에 없던 서비스를 내놓을 예정이라 치열한 경쟁이 예상된다.
ICT 업계에서 내로라하는 기업들이 하나같이 음원 서비스에 관심을 보이는 것은 인공지능(AI), 스마트홈, 자율주행차 등 4차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킬러 콘텐츠의 중요성이 갈수록 커지고 있어서다. 특히 기업들은 AI 기반의 음성인식 스피커를 통해 이용자의 다양한 요구사항을 서비스로 제공, 트래픽을 확대하며 시장 지배력을 강화하려는 속내를 드러내고 있다.
스마트폰을 통한 스트리밍 방식의 음원 소비가 대세가 되면서 음원 콘텐츠가 '공짜'라는 인식이 줄어든 것도 기업들이 군침을 흘리는 이유다. 국내 디지털 스트리밍 시장은 지난 2013부터 2017년까지 연평균 19.1%의 성장을 기록하고 있다.
◇ 네이버, AI 플랫폼 '바이브'로 음원 통합
네이버는 오는 18일 '바이브(VIBE)'란 인공지능 기반 음원 추천 앱을 내놓을 예정이다. 바이브는 네이버가 검색포털 서비스를 하면서 쌓아 놓은 콘텐츠·상품 추천 기술과 노하우를 접목한 차세대 서비스다. 네이버는 기존 '네이버뮤직'을 바이브에 통합시켜 서비스를 강화한다는 계획이다.
네이버는 음원 서비스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2015년 마이크로소프트(MS)로부터 스트리밍형 라디오 음악 '믹스라디오(MixRadio)'를 인수한 바 있다. 네이버의 자회사이자 '라인'을 서비스하는 일본 라인주식회사가 사들이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사업 성과 등을 따져봤을 때 성장이 어렵다고 판단, 믹스라디오 서비스를 인수한지 1년도 안돼 종료했다. 대신 라인을 통해 유료 음원 서비스인 '라인뮤직'에 집중했다.
이와 별도로 국내에선 2004년부터 네이버뮤직 서비스를 해왔다. 네이버뮤직은 네이버의 AI 스피커에 기본 탑재하는 등 이용자 접점을 확대하기 위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다른 음원 서비스에 밀려 두각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네이버뮤직의 시장 점유율은 10%에 못 미치는 것으로 알려졌다.
네이버가 바이브를 중심으로 서비스를 통합하면 파급력이 클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바이브는 이용자 개인 취향을 고려한 인공지능 기반의 추천을 강점으로 한다. 멜론 등 다른 서비스도 이용자가 선호하는 음악을 분석해 좋아할만한 콘텐츠를 제공하고 있으나 바이브는 이와 차원이 다르다는 설명이다. 하나의 음악 파일을 마치 해부하듯 쪼개 곡의 속도나 신호의 특징, 키(Key), 구조 등을 분석해 이용자의 음악 성향을 파악한다.
네이버는 바이브를 자사 인공지능 스피커와 차량용 인포테인먼트 등의 다른 플랫폼에 연동, 이용자 주변 환경까지 고려하는 음악 추천 서비스를 계획하고 있다. 이용자가 외부에서 스마트폰으로 음악을 듣다 거실로 들어와 AI 스피커로 옮기면 변화한 주변 상황과 기분을 감안해 최적의 음악을 추천한다는 것이다.
네이버 관계자는 "그동안 음악 서비스는 차트에 노출된 상위권 콘텐츠 위주로 소비되는 경향이 있으나 추천 기술을 고도화하면 음악을 듣는 방식도 달라질 것"이라며 서비스에 대한 자신감을 드러냈다.
◇ SKT, 차세대 플랫폼으로 재도전
멜론 운영사인 로엔(현 카카오M)을 매각하며 음원 시장에서 발을 뺀 것으로 보였던 SK텔레콤은 AI 등 차세대 기술을 접목한 신규 플랫폼으로 시장에 다시 도전한다.
SK텔레콤은 올해초 엑소·트와이스·방탄소년단 등 강력한 콘텐츠 파워를 보유한 엔터테인먼트3사와 손잡고 신규 음원 플랫폼을 론칭한다고 선언했다. 이 플랫폼에는 SK텔레콤의 AI·5G·블록체인 등 미래 기술을 도입, 이전보다 진화한 형태의 맞춤형 콘텐츠 등이 특징이다.
아울러 네이버 등 다른 사업자들처럼 인공지능 스피커 및 차량용 인포테인먼트에 적용하는가 하면 5G와 함께 활성화될 증강현실, 가상현실 같은 미래 영상 기술을 활용해 ‘보는 음악 콘텐츠’ 개발도 추진한다.
SK텔레콤은 콘텐츠 확보에도 열을 올리고 있다. 최근에는 스마트폰용 음악 미디어 '딩고뮤직'으로 유명한 모바일 방송국 메이크어스에 100억원 규모의 지분 투자를 단행하기도 했다. 이를 통해 신규 음원 플랫폼의 경쟁력을 키운다는 것이다.
메이크어스는 10~30대의 눈높이에 맞는 감각적이고 재미있는 영상들을 내놓으며 인기를 모으고 있다. 작년말 기준 메이크어스 페이스북 · 유튜브 · 인스타그램 구독자는 3360만명, 포스팅 조회수는 37억회에 이른다. 음악채널인 ‘딩고 뮤직’은 세로가 긴 화면으로 구성된 모바일 특화 뮤직비디오를 선보이는 등 대표적인 모바일 음악 채널로 자리매김 하고 있다.
◇ 유튜브, 새단장 유료 서비스 상륙 앞둬
음원 서비스 업계가 예의주시하는 곳이 세계 최대 동영상 플랫폼 유튜브다. 유튜브는 지난달 22일 월 9.99달러를 내면 광고 없이 음원 서비스를 즐길 수 있는 '유튜브 뮤직 프리미엄'이란 서비스를 미국과 호주 등 글로벌 시장에 내놨다. 아직 국내에선 이용할 수 없으나 조만간 상륙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 서비스는 유튜브가 확보한 광범위한 음원 콘텐츠를 손쉽게 즐길 수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예를 들어 특정 가수가 공식적으로 낸 음반 외에도 콘서트에서 불렀던 음악 등 풍부한 콘텐츠가 올라오기 때문에 차별화된 경쟁력을 갖췄다는 평가다.
앞서 유튜브는 2016년에 음악앱과 유튜브 레드란 유료 서비스를 내놓은 바 있다. 유튜브 뮤직 프리미엄은 기존 레드에서 이름을 바꾸고 새단장한 것으로 불필요한 광고 없이 다른 유료 음악앱처럼 편하게 음악을 감상할 수 있다.
스마트폰 시대를 맞아 유튜브의 영향력이 갈수록 확대되고 있다는 점에서 유튜브 뮤직 프리미엄이 미칠 파급력은 무시하지 못할 수준이다. 유튜브는 국내에서 동영상 뿐만 음원 서비스로도 많이 이용되고 있다.
실제로 한국인터넷기업협회가 최근 설문조사한 결과를 보면 음악을 감상할 때 주로 이용하는 앱은 유튜브(43.0%)로 압도적으로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유튜브의 점유율은 국내 1위 서비스인 멜론(28.1%)보다 거의 두배 가량 많다.
◇ 카카오, '멜론+카톡' 파급력 주목
멜론을 운영하는 카카오M의 수성 움직임도 거세지고 있다. 카카오엠은 모회사이자 국내 모바일 플랫폼 강자 카카오와 합병을 통해 음원 서비스 경쟁력을 한층 강화하면서 독주 체제를 유지한다는 방침이다.
카카오와 자회사 카카오M은 지난달 17일 각각 이사회를 개최하고 양사간 합병을 결정했다. 오는 9월 출범할 합병법인은 카카오톡과 인공지능(AI) 플랫폼인 카카오I, 멜론의 개발 및 운영 주체를 통합해 플랫폼 저변을 넓힌다는 계획이다.
즉 멜론의 가입자를 카카오톡 기반으로 확대하고 콘텐츠를 풍부하게 해 문자와 영상 뿐만 아니라 음악으로까지 커뮤니케이션 방법을 다양화한다는 방침이다. 여기에 인공지능과 사물인터넷(IoT) 기술을 멜론 플랫폼에 결합해 진화한 서비스로 경쟁력을 끌어올리기로 했다.
이미 카카오는 지난 2016년 카카오M을 인수한 이후 많은 영역에서 서비스 결합 작업을 진행해 왔다. 멜론에서 카카오 계정 로그인 서비스를 제공해 편의성을 높였고, 카카오톡 프로필과 연동을 통한 음원 서비스도 제공해왔다.
이에 힘입어 2016년 인수 당시 360만명이었던 멜론 유료가입자 수는 현재 100만명이 불어난 465만명으로 확대됐다. 여기에 더불어 카카오의 인공지능 스피커 카카오미니에 멜론이 탑재, 서비스 연동 효과를 누리고 있다.
현재 멜론은 유료가입자와 순방문자(UV), 페이지뷰(PV) 등에서 엠넷닷컴과 벅스, 지니, 소리바다 등 경쟁 서비스를 제치고 압도적인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시장 점유율 50% 이상을 휩쓸고 있으며 10년 연속(작년 기준) 온라인 음원서비스 만족도 1위 등 명실상부 국내 최대 음악 서비스다. 멜론의 독주가 올 하반기에도 유지될지에 관심이 모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