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약품이 'KRAS(커스틴 쥐 육종 바이러스) 항암제'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글로벌 시장에서 아직 정식허가를 받은 약물이 없는 데다, 대장암 등 여러 고형암종에서 효과를 나타내 시장 잠재력이 크다는 평가를 받고 있어서다.
5일 제약업계에 따르면 한미약품은 이달 5~10일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 열리는 'AACR(미국암연구학회) 2024'에서 KRAS 돌연변이 항원을 표적으로 하는 mRNA(메신저리보핵산) 항암백신 후보물질을 소개한다.
KRAS 단백질은 인체에서 세포가 성장하거나, 새로운 세포로 분열하도록 신호를 보내는 역할을 한다. KRAS 단백질에 돌연변이가 생기면 필요 이상으로 세포가 성장하고 증식하다가 암을 일으킨다.
KRAS 돌연변이는 고형암 환자의 약 20%에게서 나타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주로 대장암, 비소세포폐암 등에서 발견된다.
한미약품이 이번에 발표하는 후보물질은 KRAS 돌연변이 항원의 설계도를 담은 mRNA 유전자를 우리 몸에 투여해 면역반응을 유도하는 원리의 암백신이다. 한미는 KRAS 돌연변이가 발현된 암세포를 지닌 쥐에게 이 약을 투여한 결과, 종양세포의 성장이 37%까지 억제된 것을 확인했다.
한미약품이 개발 중인 'HM99462'는 KRAS 돌연변이 단백질을 간접적으로 억제하는 또 다른 유형의 항암 후보물질이다. HM99462는 KRAS 단백질을 활성화하는 SOS1(세븐리스 상동체1)을 억제하는 원리의 약물로 전임상 시험에서 우수한 항종양효과를 나타냈다.
한미약품이 KRAS 신약 개발에 몰두하는 이유는 다양한 고형암종에 걸쳐 사용이 가능한 데다, 글로벌 제약사가 아직 완전히 개척하지 못한 분야로 성장 잠재력이 크기 때문이다.
다국적 제약사 암젠은 미 FDA(식품의약국)로부터 세계 최초로 KRAS 돌연변이 억제제 '루마크라스(성분명 소토라십)'의 신속승인을 지난 2021년 받았지만 최근 임상 데이터 신뢰성 문제로 정식승인이 지연됐다.
신속승인은 암이나 전염병처럼 생명을 위협하는 심각한 질환의 치료제에 대해 임상 2상에서 안전성과 효과성을 입증했을 경우 우선 승인을 하고 향후 임상 3상을 진행해 정식승인을 받을 수 있도록 한 제도다. 암젠은 현재 2028년 완료를 목표로 새 임상 3상 시험을 진행하고 있다.
FDA로부터 두 번째 신속승인을 받은 브리스톨마이어스스퀴브(BMS)의 '크라자티(아다그라십)'도 정식허가를 준비 중이나 독성 문제가 발목을 잡고 있다. 크라자티는 지난해 유럽 EMA(유럽의약품청)로부터 독성 이슈로 한 차례 조건부 허가가 반려된 적이 있다.
한미약품은 두 후보물질이 아직 전임상 연구 단계로 글로벌 제약사와 비교해 개발속도가 느리지만 차별화된 강점을 보유한 만큼 향후 시장에서 충분한 성과를 낼 수 있다는 입장이다.
이번에 미국 암학회에서 소개하는 물질은 하나가 아닌 다수의 KRAS 바이러스 항원을 표적으로 하는 암백신으로 내성에 센 강점이 있다. HM99462는 KRAS 돌연변이를 간접적으로 억제하는 원리로 루마크라스, 크라자티 등의 기존 KRAS 돌연변이 저해제와 함께 투여하면 치료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
한미약품 관계자는 "현재 개발 중인 KRAS 항암백신은 전임상 연구에서 면역반응을 크게 향상시켜 종양 성장을 효과적으로 억제하는 결과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어 "HM99462는 다양한 KRAS 변이 고형암 세포주에서 항암 활성을 나타내는 차별성을 가진 약물로 이르면 연내 임상 1상을 시작할 계획"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