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사이언스의 주가가 속절없이 내려가고 있다. 오너일가는 금융사에 담보로 맡긴 주식가치가 하락하면서 추가 증거금 요구(마진콜)에 직면했다. 주주들은 혹여나 마진콜 대응에 실패한 물량이 시장에 출회될까 하는 불안에 떨고 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29일 종가 기준 한미사이언스의 주가는 3만700원으로 지난 3월 형제(임종윤·종훈)가 모녀(송영숙·임주현)와 표대결에서 승리한 정기주주총회 이후로 30.7% 내렸다.
경영권 분쟁이 불거진 이후 연중 최고치를 기록한 1월16일과 비교하면 주가는 45.3% 꺾였다. 30일 오전 10시 40분 기준 주가는 3만1000원으로 전일대비 0.9% 상승했다.
한미사이언스의 주가가 약세를 보이는 주요 원인으로는 상속세가 꼽힌다. 형제와 모녀는 지난 2020년 고(故) 임성기 회장이 타계한 이후 5400억원에 이르는 상속세를 부과받았다. 이후 이를 매년 분할 납부하면서 현재 2600여억원이 잔여 상속세로 남았다.
형제는 상속세 문제 해결에 자신하던 모습과 달리 경영권을 손에 잡은 이후로 사모펀드 지분 매각설만 무성할 뿐, 아직 이렇다 할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장남인 임종윤 한미사이언스 사내이사를 제외한 가족은 연초에 납부 예정이었던 상속세분을 내지 못하고 납부기일을 연말으로 연장했다.
앞서 임종윤 사내이사는 지난 3월 21일 정기주총 전에 개최한 기자간담회에서 "상속세로 경영권을 지킬 수 없다면 경영해서는 안 된다"며 "(모녀와 달리) 저희는 세금을 잘 해결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형제는 최근 연대납부로 상속세를 함께 납부해야 하는 모녀와 갈등을 빚으면서 문제 해결으로부터 더욱 멀어지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임종훈 한미사이언스 대표는 지난 14일 임시주총에서 어머니인 송영숙 회장을 대표이사직에서 해임했다.
가족 간 갈등으로 상속세 납부 방법이 미궁으로 빠진 가운데 주가가 브레이크 없이 떨어지면서 오버행 우려가 불거졌다.
27일 기준 형제는 다수의 증권사에 한미사이언스 주식을 담보로 약 2000억원을 빌렸는데, 최근 계약 체결일보다 주가가 큰 폭 떨어지면서 증권사에 추가 증거금을 납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차남인 임종훈 대표는 대출금액 대비 담보주식가치 비중을 나타낸 담보유지비율(LTV)이 장남보다 높게 책정돼 이 부담이 더 큰 것으로 나타났다. 이달 임 대표는 두 자녀의 주식 78만주를 빌려 150억원의 대출을 추가로 받기도 했다.
임 대표가 추가 증거금을 납부하지 않기 위해 유지해야 하는 한미사이언스 1주당 가치는 3만2000원에서 3만6000원선이다.
주가가 3만원 이하로 내려가면 추가 증거금을 내야 하는 대출도 있다. 임 대표는 지난해 12월 한국증권금융으로부터 주식 105만주를 맡기고 250억원을 대출받았는데, 담보유지비율이 125%로 책정돼 1주당 가격이 2만9700원 이하로 내려가면 증거금을 추가로 납부해야 한다.
만약 임 대표가 추가 증거금을 제때 납부하지 못하면 증권사가 담보로 받은 주식을 임의청산해 이 물량이 시장에 쏟아지는 오버행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 부담의 경중만 다를 뿐 오너일가는 합산 4000억원 가량의 주담대를 끌어온 상태로 주가 하락에 따른 마진콜 위험을 모두 안고 있다.
이 가운데 29일 주가가 3만원선 붕괴를 앞둔 연중 최저치까지 내려가자 한미사이언스는 "창업주 가족인 대주주 4인이 합심해 상속세 현안을 해결해 나가기로 했다"는 메시지를 30일 증시 개장 전 발표했다. 한미사이언스도 주주들의 성난 마음을 달래려는듯 "자사주 취득 및 배당도 적극적으로 검토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한미사이언스 주주들 사이에서는 "가족 중 누군가가 또 변심하는 것 아니냐", "대안이 나와야 믿을 수 있다" 등 회의적인 반응이 적지 않게 나오고 있다. 공동 상속인들에게는 연대납세 의무가 있기에 '합심해 해결하겠다'는 건 원론적 입장이라며 평가절하하는 모습도 감지된다.
이에 형제 측 관계자는 "시장에 알려진 것과 달리 가족 간의 분위기는 좋으며 합심이 깨질 일도 없을 것"이라며 "상속세는 문제없이 대응하고 있으며 대규모 투자유치 등의 대한 내용도 구체화하면 공개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