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바이오텍(신약개발사)이 공시를 지연하거나 번복하는 등 미흡한 관리로 투자자들의 불만을 사고 있다.
유한양행이 최대주주로 있는 전진바이오팜은 지난 6일 하루 매매거래가 중단됐다. 한국거래소로부터 공시번복 5건, 지연공시 1건이 확인돼 불성실공시법인 지정에 따른 벌점 12점을 받으면서다.
향후 1년 내로 벌점 3점을 추가로 받으면 상장폐지 기로에 서게 된다. 코스닥 시장규정에 따르면 상장법인은 최근 1년간 누적 벌점이 15점을 넘으면 상장적격성 실질심사를 거쳐 상장폐지 여부가 결정된다.
케어젠은 지난달 8년 전 공시한 단일판매·공급계약체결 금액을 50% 이상 변경(258억원→60억원)하면서 불성실공시법인으로 지정됐다. 7월 말 기준으로 케어젠이 최근 1년간 받은 누적벌점은 11점으로 4점만 더 받으면 상장폐지 심사대상이 된다.
큐라클은 지난 2021년 프랑스계 제약사 떼아에 기술이전했던 신약후보물질이 반환됐다는 소식을 지난 5월 닷새 늦게 공시해 지난달 불성실거래법인으로 지정됐다.
큐라클이 기술반환 소식을 밝힌 다음 날 주가는 하한가를 기록했는데 이보다 앞서 이인규 전 사내이사가 44만주를 시간외거래로 매각하면서 주주들 사이에서는 미공개정보를 이용한 매매가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바이오텍이 이처럼 공시에 미흡한 모습을 보이는 원인 중 하나는 관련 업무를 담당할 전문인력이 부족한 것에서 찾을 수 있다.
최근 미래실적전망을 부풀린 파두사태로 상장문턱이 높아지기 전까지 바이오텍은 대부분 기술특례상장 제도를 활용해 코스닥 시장에 입성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이 제도가 도입된 2005년 이후 지난해까지 총 101개의 바이오기업이 기술특례로 상장했다.
이 제도를 활용하면 바이오텍은 매출액 없이 기술력만 인정받으면 상장할 수 있다. 그러다 보니 공시규정을 챙길 만큼 충분한 인력을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상장하는 사례가 발생하기도 한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아무래도 적자기업이 대부분인 바이오텍은 소수의 인원이 여러 업무를 맡다 보니 이를 통제하는 데 어려움이 클 수밖에 없다"며 "공시를 뒤늦게 하려는 의도는 없었겠지만 상장회사이다 보니 의무감을 가지고 주의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했다.
해외 제약사 등과 업무가 많은 업종 특성상 시차 등의 이유로 부득이 공시가 지연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에이프릴바이오는 지난 4월 개발 중인 신약후보물질의 임상 1상 결과를 하루 늦게 공시하면서 불성실공시법인으로 지정됐다. 당시 에이프릴바이오는 호주의 임상시험수탁업체로부터 한국시간으로 저녁 늦게 결과를 전달받은 탓에 공시가 지연됐다고 해명했다.
주주들 사이에서는 불성실공시법인에 대한 규제당국의 솜방망이식 처벌이 근본적인 원인이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달 불성실공시법인으로 지정된 전진바이오팜은 규정에 따르면 상장폐지 심사조건에 해당하는 벌점 15점을 부과받아야 했으나 거래소가 공시불이행 1건(벌점 3점)을 1200만원의 벌금으로 대체하면서 이를 넘겼다.
불성실공시법인 수는 최근들어 빠르게 늘고 있다. 지난 2022년 56개이던 코스닥 불성실공시법인 수는 지난해 76개로 증가했다. 올해 상반기 불성실공시법인으로 지정된 제약바이오기업은 11곳으로 전년 동기대비 2곳 더 늘어났다.
홍지연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원은 "국내 상장기업의 공시위반 건수는 코스닥 상장기업을 중심으로 지속적인 증가하는 추세"라며 "공시가 책임있기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규제 당국의 제재뿐 아니라 기업 내부의 공시전문인력 확보 및 체계화된 내부 공시시스템을 갖춰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