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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한해 마음의 빛깔은 어땠나요

  • 2019.12.31(화) 07:44

[페북사람들] 방보영 프리랜서 다큐감독

2019년 기해년 한해

긴 하루도 짧은 하루도 있었지만

이젠 얇은 종이 한 장만 남았다.

1년 전 제야의 종소리

그 울림이 아직 여전한데

떠나가는 뒷모습에 아쉬움이 크다.

올해를 한 장의 화폭에 담는다면

과연 어떤 그림들이 나올까. 

매년 연말이 되면

아무리 두꺼운 패딩을 입어도

마음 한 쪽 문풍지 사이로

차디찬 황소바람 새어 들어온다.

그 황소바람을 잠재울 수 있는

따뜻한 전시회가 열렸다.

국제장애인문화교류협회 주최로

지난 12월 25일부터 31일까지

서울 종로구 인사동 갤러리H에서

찾아가는 장애인문화예술학교

청년작가전이 열리고 있다.

주제는 '마음으로 그린 빛깔' 

이번 전시를 기획한 최단비 팀장은

단체사진까지 모두 찍고 나서야

이제야 한해를 마무리한다면서

환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청년작가전은 두 번째입니다.

찾아가는 장애인문화예술학교에서

발굴한 젊은 작가의 작품은 물론

역량 있는 작가 개인을 선보이고자

제2회 청년작가전을 준비했어요.

발달 장애라는 인식의 벽을 넘어

작가 각자가 오롯이 뿜어내는

예술 에너지가 추운 날씨만큼이나

삭막한 이 세상에 따뜻한 빛으로

전달되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김남희 큐레이터가 관람객들에게

작품에 대해 설명해주고 있다.

"예술에 대한 열정으로

장애의 경계와 문턱을 넘은

28명의 작가들이 작품을 통해

자신의 눈과 마음에 보이지 않은

세상을 감각적으로 그려냈어요.

작품 활동 속에서 비로소

행복과 성취감을 느낀다는 작가들

그리고 그들이 마음으로 본

세상 이곳저곳 이런저런 풍경들,

예술과 함께 평범함이 특별함으로

다가오는 그 시간들을 통해

어떤 이들에게 또 다른 위로와

용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양희춘 작가는 지적장애인입니다.

시골길이란 작품입니다.

양 작가는 구도를 공부하면서

풍경화를 많이 그리게 되었죠.

평화로움을 느낄 수 있는

정적인 색상이 인상적이죠.

황토색이 짙고 벼가 익어가는 마을

뒷산을 배경으로 화면 가운데로

길을 내 자칫 답답해질 수 있는

부분에 공간의 미를 더했죠."

"양단영 작가도 지적장애인이죠.

표범과 나비들의 향연이란 작품인데

봄의 나비와 화보 속 표범의 자태를

어두운 판화에 새겼습니다.

맹수인 표범과 힘없는 나비를 구성해

각자의 아름다움을 찾고자 했죠.

단순한 흑백의 조화를 깨고

농담법으로 색감을 표현해

부드러움을 느낄 수 있어요.

그러면서도 조각칼의 운동

즉 날카로운 선을 최대한 살려

주제의 감성을 표현했습니다."

"양진혁 작가는 자폐장애인입니다.

작품명은 나뭇잎 사이의 새입니다.

양 작가는 초록색과 파란색을

즐겨 사용하는 편입니다.

자연의 형태 그리기를 좋아하죠.

주변 동식물들을 자세히 관찰하며

자신이 표현하고 싶은 색감으로

다채롭게 표현합니다.

나뭇가지 위 새의 다양한 포즈를

유심히 관찰하고 그린 이 작품은

각각의 특징을 알록달록 펜으로

창의적으로 표현했어요."

"이소현 작가도 자폐장애인이죠.

사각접시라는 작품입니다.

이 작가는 움직임이 많고

혼잣말도 많이 하는 편이나

그 와중에 조금씩 매만진 손길로

다양한 작품을 만들어 냅니다.

만드는 시간은 오래 걸리지만

배우려는 자세가 꾸준해요.

이 작품도 지도 선생님의

손을 보고 따라하며 익힌 솜씨로

단아하게 빚은 사각접시입니다.

거칠지만 단순한 멋이 돋보이죠."

"최주림 작가도 자폐를 갖고 있어요.

'Thunder Bike'라는 작품입니다.

최 작가는 공모전과 국제전에서

수많은 수상 실적을 갖고 있어요.

회화의 요체는 색채와 형태인데

이 기본에 충실하면서도

어느 한 편에 치우침 없이

시각예술의 매력을 유감없이 표출하죠.

이 작품도 마찬가지인데요.

색상의 찬란한 조형적 하모니를

자유롭게 구현하고 있으며

강렬한 색채의 향연을 보여줍니다."

이세일 씨는 김현승 작가의

대우 포크레인 작품 앞에서

한참을 머물러 있었다.

"작품을 보면서 먼저 와닿았던 건

일반인보다 몇 배의 노력이 깃든

기다림의 결과물이라는 겁니다.

완성도도 높은 것 같습니다.

화려하고 역동적인 느낌이 좋아요.

저에게 2019년은 하늘색입니다.

군대에서 전역한 후 사회로 복귀해

많은 꿈을 그려나가고 있습니다."

서중석 어르신에게 2019년은

과연 어떤 빛깔이었을까.

"브라운이었어요.

나이가 들면서 푸르름이 사라지고

점점 브라운으로 변하고 있어요

조금 더 안정감 있게.

가족이 생기고 그 자녀들이

또 다른 가족을 만들었어요.

저에게는 큰 기쁨이지요.

그래서 저도 가족들에게

기쁨을 주고 싶은 거예요.

뭔가 보이는 선물도 좋지만

저나 안사람 모두 건강하게

또 기쁘고 즐겁게 봉사하며

걱정을 안겨주지 않는 삶이

가장 큰 선물인 것 같아요.

노부부들은 서로 배려하면서

화목하게 지내는 게 중요해요.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같이 있는 시간도 늘어나는데

전 아침 먹고 무조건 나갔다가

저녁 무렵에나 집에 들어와요.

그러면 서로서로 더 반갑고

할 이야기도 많아 더 좋아요."

'미래의 세계'라는 작품이다.

하구은 작가가 그렸다.

2019년 기해년이 저물고

2020년 경자년 쥐띠해가 다가온다.

빛깔은 한 가지 색보다는

여러 빛깔이 어우러져야

비로소 아름다움이 더해진다.

올 한해 어떤 빛깔들로

마음의 그림을 그렸는지 돌아보고

2020년은 조금 더 밝고 희망찬

빛깔들로 그려지기를 바란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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