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2일 오전 10시10분께, 흰 몸체에 윗부분이 자줏빛을 띤 '목포행 7883' 편성 열차가 수서역 플랫폼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서울 강남 수서에서 출발해 부산·목포 등을 오가는 수서고속철도(SRT)다. 철도시설공단과 SRT 운영사인 SR은 지난 1일 영업시운전을 개시했다. 이날은 국토교통부 및 언론 매체들과 수서~오송 구간에서 시승행사를 가졌다.
영업시운전은 종합시험 운행의 마지막 단계다. 내달 본격 개통을 앞두고 실제로 영업하듯이 열차를 운행하면서 열차 내 시설을 비롯한 안전과 서비스 등을 종합 점검하는 막바지 과정이다. 시승행사에 참석한 강호인 국토교통부 장관은 "무엇보다 국민 안전이 최우선"이라고 강조하며 SR에게 빈틈없는 서비스 제공을, 공단에게는 안전한 개통 준비를 당부했다.
▲ 서울 강남구 SRT 수서역사 /윤도진 기자 spoon504@ |
◇ '출발부터 20분 캄캄'..52km 율현터널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을 해제한 부지에 지은 SRT 수서역은 한눈에 봐도 서울역보다 무척 작았다. 지하 2층~지상 3층 연면적 8557㎡ 규모다. 외관은 새가 날갯짓 하는 모양을 형상화 했다. 300m가량 떨어져 있는 지하철 3호선·분당선 수서역과는 지하에서 무빙워크로 연결된다.
역사 안으로 들어가면 지하 1층으로 바로 내려가게 된다. 이곳에 매표소와 대합실이 있다. 다시 지하 2층에 내려가면 열차 승강장이 있다. 지상에 플랫폼이 마련돼 있고 대합실과 상업시설 등이 선로 위에 있는 서울역과 다른 구조다.
▲ 수서역 1층서 바라본 역사 내부 /윤도진 기자 spoon504@ |
수서역을 출발한 SRT는 동탄역을 지나 지제역에 이르기 직전까지 52km에 이르는 구간을 지하로 달렸다. 세계에서 3번째로 긴 '율현터널'이다. 이 구간 선로는 지표면에서 40~70m 아래에 있다.
지상에 선로를 두는 것보다 토지 보상비 등이 줄기 때문에 사업성을 확보할 수 있어 택한 방식이다. 다만 이 때문에 출발 후 20여분간은 바깥 풍광을 볼 수 없다.
◇ 평택분기점부터 KTX 선로 함께 이용
▲ 동탄역에 설치된 스크린도어 /윤도진 기자 spoon504@ |
율현터널 구간 내에 있는 동탄역은 아예 모든 역사가 지하에 있다. 출발한 지 14분만에 열차가 정차한 동탄역 플랫폼은 지하 6층이었다. 현재 동탄역 위쪽을 지나는 경부고속도로는 지중화해 지하 1층에 넣고 역사 위는 공원으로 만드는 계획이 추진중이다.
동탄역 승강장에 스크린도어가 설치돼 있는 것도 눈에 들어왔다. 고속철 스크린도어는 국내 최초다. 지하철과는 달리 열차와 스크린도어 사이 공간이 1.5m 가량 떨어져 있는 게 특징이다. 열차 소음을 완화하고 풍압을 낮추는 효과가 있다는 게 철도시설공단 측 설명이다.
▲ 동탄역을 지나 지상으로 나온 SRT서 바라본 외부 풍광 /윤도진 기자 spoon504@ |
동탄역을 지나 평택 지제역으로 가는 길에야 바깥이 보이기 시작했다. 수서역~동탄역~지제역~평택분기점까지 60.9km가 SRT 전용 선로다. 평택분기점부터는 지금 운행하고 있는 코레일 선로를 쓴다. 천안아산역부터는 역사도 공용이다. 철도시설공단이 이용 시간을 기존 코레일과 신생 SR에 배분하는 구조다.
전용선로구간은 선로 기반이 콘크리트로 위주로 돼 있고, 공용 구간은 종전의 콘크리트 위에 자갈을 깐 방식이다. SRT는 코레일 KTX와 같이 영업최고속도가 시속 300km인데 시승 중에는 전용선로 콘크리트 구간에서 차량 진동이 적게 느껴졌다.
최고 관리상태일 때는 자갈로 덮은 선로의 탑승 품질이 낫지만, 유지보수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평균적으로 콘크리트 구간이 낫다는 설명이다. SRT가 출발한 지 40여분만에 도착한 오송역에는 먼저 도착한 KTX 열차가 승강장 반대편에 서 있었다.
▲ 오송역 나린히선 SRT(왼쪽)과 KTX(오른쪽) /윤도진 기자 spoon504@ |
◇ '사회적약자 배려석, 장거리탑승 우선석' 특화
시승행사에 배차된 열차는 10량 편성이었다. 이중 1량이 특실, 나머지는 일반실이다. SRT 객실은 KTX-산천 대비 47석을 늘려 수송 능력을 키우면서도 의자 사이 무릎 공간을 5㎝가량 넓게 설치했다. 두 좌석 사이 콘센트를 설치했고 기존 KTX보다 2.5배 가량 빠른 와이파이(Wifi)를 마련해 승객 편의성을 키웠다.
특실은 좌석을 젖히는 장치가 전동식이어서 버튼으로 조작할 수 있게 있다. 좌석 위에는 항공기처럼 수하물을 넣을 수 있는 보관함이 있다. SRT는 특히 일반실 중 2량을 각각 사회적약자 배려석, 장거리탑승 우선석으로 꾸몄다.
▲ SRT 사회적약자석 객실 /윤도진 기자 spoon504@ |
김복환 SR사장은 "사회적약자석은 장애인, 임산부나 6세이하 아동 동반 승객 등에 우선 배정하는 것으로 일반석과 달리 좌석시트, 목받이, 카페트 등을 보강해 승객이 더 안락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사업성만이 아니라 공공성을 더욱 강조한 운영 포석이다.
장거리 우선석은 서비스 개선 차원에서 기획됐다. 김 사장은 "드나듦이 잦은 단거리 탑승객이 장거리 이용객과 섞여 있으면 탑승 중 안락함이 떨어진다는 종전 KTX 탑승객 민원이 많았던 것에서 착안했다"며 "수서~동대구 정도 거리 이상 탑승객 위주로 운영할 것"이라고 했다.
◇ KTX는 사당~광명 셔틀버스..'경쟁체제 스타트'
수서에서 출발하는 SRT는 서울역에서 출발하는 KTX에 비해 공용선로구간까지 운향거리가 짧다. 이 때문에 7~8분가량 목적지에 더 일찍 도착할 수 있다. 운임은 평균 10%(최대 14%) 저렴하게 책정됐다. 일반실 기준 수서~부산간 5만2600원, 수서~목포간 4만6500원이다.
개통 이후에는 부산행 경부선 40회, 목포행 호남선 20회 등 편도 기준으로 하루 60회 운행할 예정이다. 편성수는 KTX의 2분의 1 수준이다. SR은 오는 30일까지 일반인 대상 시승열차를 운영한다. SRT가 개통하면 서울 강남·강동 등 수도권 동남부 지역 주민들의 고속철도 이용이 편리해질 전망이다.
▲ SRT 기관실 (사진: 국토교통부) |
강 장관은 "SRT 개통은 고속철도 부문에서 국내 최초로 경쟁체제를 도입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하지만 '아우'인 SR의 등장은 '형' 코레일에도 신경 쓰이는 부분이다. 전날인 지난 1일, 코레일은 서울 지하철 4호선 사당역에서 KTX 광명역을 오가는 셔틀버스를 운행한다는 발표를 내놨다.
홍순만 코레일 사장은 "2~3개월내 버스 운행을 시작해 광명역이 수도권 남부의 중심역으로 자리 잡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강 이남의 철도 이용객을 순순히 수서역으로 빼앗기지 않겠다는 코레일의 긴장감이 드러나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