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흥그룹 창업주인 정창선 회장이 지병으로 별세했다. 향년 84세. 호는 중봉(中峯)이다.
중흥그룹에 따르면 정 회장은 지난 2일 오후 11시40분께, 광주 전남대학교병원 학동병원에서 치료받던 중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영면했다.

1942년 광주에서 8남매의 셋째 아들로 태어난 고인은 농부 아버지 밑에서 건설현장 목수로 자랐다. 넉넉지 않은 가정형편에 가족의 생계와 남매의 교육을 위해 17살부터 건축현장의 일용잡부로 나선 것으로 전해진다. 미장보조견습공 현장 생활을 한 그는 직접 집을 지어보자는 꿈을 갖고 30세의 나이에 처음으로 자신의 손으로 단독주택을 짓는다.
정창선 회장은 현장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인부와 함께 일을 함께하며 세세한 공정을 하나하나 챙겼다. '내 집을 만든다는 마음으로 집을 짓는다'는 정 회장의 신념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그로부터 10여년이 흘러 정 회장이 40세를 넘겼을 때 광주·전남 지역에는 아파트 수요가 늘기 시작한다. 단독주택과 연립주택을 짓던 그는 1983년 2월 중흥주택을 설립해 아파트 건설을 본격적으로 나선다. 중흥그룹의 시작이다. 이후 1989년 중흥건설을, 1994년에는 중흥토건을 세우며 그룹의 기틀을 잡았다.
정 회장은 평생을 건설 산업에 몸담으며 주택건설을 중심으로 토목, 레저, 미디어 등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했다. 대우건설 인수 등을 통해 지역 건설사를 국내 대형 건설그룹으로 성장시킨 '입지전적인 기업인'으로 불린다.
정 회장은 경영 전반에서 무리한 외형 확대보다는 재무 건전성과 사업 안정성을 중시하는 기조를 유지했다.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 부동산 경기 침체 등 건설업 전반이 어려움을 겪던 시기에도 단계적인 사업 운영으로 그룹의 기반을 다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대우건설 인수 이후에도 중흥그룹은 기존 사업과 신규 사업을 병행하며 비교적 안정적인 경영 기조를 지속했다. 대형 건설사 인수로 재계 순위 20위까지 그룹을 성장시키면서도 무리한 사업 확장보다는 단계적인 관리와 운영에 초점을 맞춘 경영을 이어갔다.
정 회장은 기업 경영뿐 아니라 지역 경제 발전에도 이바지했다. 2018년 3월부터 대한상공회의소 부회장으로 활동했다. 같은 해 3월부터 2024년 3월까지 광주상공회의소 회장을 맡아 지역 상공인과 기업인의 목소리를 대변했다.
정 회장은 이 같은 공로를 인정받아 2005년 주택건설의 날 동탑산업훈장, 2017년 제70회 건설의 날 건설산업발전 공로상, 같은 해 광주광역시민대상(지역경제진흥대상) 등을 수상했다.
그는 평소 언론 노출을 자제하며 실무 중심의 경영을 이어온 인물로 알려져 있다. 내부적으로는 원칙과 책임을 중시하는 경영자로 평가받아 왔다. 중흥그룹은 "창업주의 뜻을 이어 안정적인 경영과 사회적 책임을 다하며 지속 가능한 기업으로 나아가겠다"고 밝혔다.
유족으로는 부인 안양임씨와 아들 정원주(중흥그룹 부회장 겸 대우건설 회장)·원철(시티건설 회장)씨, 딸 향미씨, 사위 김보현(대우건설 사장)씨가 있다.
빈소는 광주광역시 서구 매월동 소재 VIP장례타운에 마련됐다. 발인은 5일 오전 7시다. 전남 화순 개천사에 임시 안장된 뒤 장지는 유가족 뜻에 따라 추후 알려질 예정이다.

▲정창선씨 별세, 안양임 남편상, 정원주(중흥그룹 부회장·대우건설 회장)·정원철(시티건설 회장)·정향미씨 부친상, 이화진·윤지연씨 시부상, 김보현(대우건설 사장)씨 빙부상, 정정길·정민식·정준식·정서윤 조부상, 김이석·김이준·김이열 외조부상
-일시: 2026년 2월2일(월)
-빈소: 광주광역시 서구 VIP 장례타운 301호
-발인: 2026년 2월5일 목 오전 7시
-장지: 화순 개천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