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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 스토리]'아, 대우 트럼프월드'…이럴줄 알았으면

  • 2016.11.10(목) 15:50

뉴욕 맨해튼 70층 '트럼프월드타워' 합작 때 도움
이름 빌릴때도 '후한 값'..여의도·용산 등에 주상복합

미국 뉴욕 맨해튼 섬 중심부 동쪽 46번가 1애비뉴에는 동쪽으로 이스트 강과 유엔 본부를, 북쪽으로 센트럴 파크를 내려다보는 지상 70층짜리 주상복합 건물이 솟아있습니다. 2001년 준공 당시 주거용도 건물로는 맨해튼 최고층 기록을 가졌던 '트럼프 월드 타워(Trump World Tower)'죠.

 

이 주상복합은 맨해튼에서도 손꼽히는 고가(高價)입니다. 메이저리그 최고 스타인 뉴욕 양키스 데릭 지터는 이 주상복합 70층(엘리베이터 표시 88층) 503㎡(5425평방피트) 펜트하우스에 살았는데, 2012년 1550만달러(178억원)에 이 집을 팔았던 게 언론에 소개되기도 했죠.

 

그뿐 아니라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 빌 게이츠, 헐리우드 스타 해리슨 포드, 소피아 로렌 등이 이 주상복합을 거쳤습니다. 현재 방 4개짜리 가장 싼 매물이 1600만달러(184억원)에 나와있는데요. 3.3㎡ 당 평균 시세는 7만8000달러(8965만원)입니다.

 

당대의 부동산 개발업자에서 미국 제 45대 대통령 당선자로 변신한 도널드 트럼프의 이름을 붙인 건물은 맨해튼에 여럿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이 주상복합은 우리나라 건설사와 오랜 인연을 가지고 있어 눈길을 끕니다.

 

▲ 맨해튼 트럼프 월드 타워(사진: 대우건설)

 

이 건물은 1997년 9월 당시 대우그룹의 건설회사였던 ㈜대우 건설부문(현 대우건설)이 이미 부동산 개발업자로 이름을 날리던 도널드 트럼프의 '트럼프사'와 합작해 지은 것입니다. 기존 유나이티드 엔지니어링 건물을 매입해 철거한 뒤 건설한 것으로 1998년 10월에 착공, 2001년 10월 완공한 사업이죠.

 

지하 2층~지상 70층(260m), 376가구 규모의 최고급 콘도미니엄(분양 아파트)과 부대시설을 짓는 프로젝트였습니다. 이 사업에는 총 2억4000만~3억달러가 투입된 것으로 전해집니다. 

 

아파트는 벽면 전체를 유리로 덮고 대리석 등 고급자재를 사용한 초호화 사양으로 지어졌고요. 내부에는 헬스클럽, 수영장, 고급식당을 갖추고 있습니다. 지금도 호텔처럼 24시간 발렛파킹, 컨시어지, 케이터링 등 입주민을 위한 초고급 서비스가 제공되고 있다고 합니다.

 

대우그룹은 당시 현지법인인 대우 인터내셔널 아메리카를 통해 합작법인 'TRUMP-DAEWOO LLP(Limited liability partnership)'를 만들어 사업에 참여했죠. 건설과 사업비용 상당을 대우가 대고, 트럼프는 개발 노하우와 현지 네트워크를 이용해 마케팅을 하는 것으로 업무를 분담한 것으로도 알려지고 있습니다.

 

현지 교민들 사이에서는 이 프로젝트를 두고 당시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이 사업적으로 트럼프를 도와줬던 사례로 기억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이번 대선 과정에서 불거진 트럼프 탈세 의혹 배경에 트럼프가 1995년 세금신고서에서 9억1600만달러(1조112억원)의 손실을 신고했던 걸 감안하면 시기상 개연성이 없지 않은 이야기죠.

 

▲ 1998년 대우그룹 초청으로 방한한 도널드 트럼프 당시 트럼프 그룹 회장이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 및 그 부인 정희자 씨와 인사를 나누고 있다.(사진: 리임스튜디오 제공)
 

대우건설은 이 사업을, 고급 주상복합 사업을 본격적으로 벌이게 된 계기로 기억합니다. 이 건설사 관계자는 "당시 CM(건설관리) 방식으로 사업을 수주해 공종별 시공자 선정 등 건설 전과정에 걸쳐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한 것으로 안다"며 "한국 건설의 우수성을 선진 미국시장에 입증하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도 큰 의미를 지닌 공사였다"고 설명했습니다.

 

어쨌든 맨해튼 트럼프 월드 타워 사업을 계기로 트럼프와 대우는 긴밀한 관계를 키우게 됐습니다. 트럼프는 외환위기였던 1998년 6월 대우그룹 김우중 회장의 초청으로 첫 방한해 대우중공업의 거제도 옥포조선소, 대우차 군산 공장, 경기도 포천 아도니스 골프장 등을 둘러보기도 했습니다. 골프장에선 김 전 회장 부인인 정희자 씨가 동반 라운딩을 했다죠.

 

이듬해인 1999년 5월 두 번째 방한은 대우가 그의 이름을 빌려 주상복합 사업을 벌이면서 이뤄졌는데요. 대우건설은 맨해튼 트럼프 월드 타워를 시공하면서 우리나라에도 최고급 주상복합 아파트의 수요가 늘어날 것을 예상했습니다. 그래서 만들어진 게 '대우 트럼프 월드'라는 이름의 주상복합입니다.

 

대우는 트럼프사와 제휴해 입지선정, 설계, 공간배치, 인테리어, 입주자서비스 등에 대해 자문을 받아 1999년 5월 첫 사업으로 '여의도 대우 트럼프 월드Ⅰ'을 선보였습니다. 당시 이 주상복합 홍보를 위해 방한했던 트럼프는 "한국의 독특한 양식인 온돌마루나 보안시스템 등이 마음에 든다"며 "미국 뉴욕에도 적용할 수 있겠다"는 등 한국 주거문화에 관심을 드러내기도 했죠.

 

대우 트럼프 월드Ⅰ는 당시 미국 뉴욕의 재미교포들에게 미리 예약을 받아 40가구를 분양하기도 했습니다. 사전 청약자들을 대상으로 헬리콥터를 띄워 한강 일대를 조망하는 공격적인 판촉 활동도 벌였죠. 또 힐튼호텔에서 클래식 콘서트로 고소득 수요층을 끌어모으기도 했답니다.

 

▲ 그래픽/김용민 기자 kym5380@

 

트럼프 이름을 단 주상복합은 아파트는 서울 여의도와 용산, 대구·부산 등 전국 7곳에 있습니다. 아파트는 2386가구, 오피스텔은 878실입니다. 대우는 약 5년간 이 이름으로 주상복합 사업을 하다가 이후 '월드마크'로 브랜드를 교체했습니다.

 

이름을 쓰는 동안 대우는 트럼프 측에 600만~700만달러의 브랜드 사용료를 지불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당시 트럼프의 재정사정이 고려됐는지 사업 규모에 비해 통상적인 수준보다 후한 금액으로 볼 수 있다는 게 건설업계 관계자의 말입니다.

 

재계에서는 대우그룹이 가졌던 인연이 이어지지 않은 걸 아쉬워 하는 목소리도 나옵니다. 한 재계 관계자는 "트럼프가 워낙 특이한 경력을 가지고 있어 유일하게 끈이 닿은 적이 있는 건  대우그룹뿐"이라며 "대우그룹이 해체되지 않았으면 이번 대선의 상당한 수혜주로 부상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 여의도 '대우 트럼프 월드 2차' 주상복합(사진: 대우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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