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주상복합은 맨해튼에서도 손꼽히는 고가(高價)입니다. 메이저리그 최고 스타인 뉴욕 양키스 데릭 지터는 이 주상복합 70층(엘리베이터 표시 88층) 503㎡(5425평방피트) 펜트하우스에 살았는데, 2012년 1550만달러(178억원)에 이 집을 팔았던 게 언론에 소개되기도 했죠.
그뿐 아니라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 빌 게이츠, 헐리우드 스타 해리슨 포드, 소피아 로렌 등이 이 주상복합을 거쳤습니다. 현재 방 4개짜리 가장 싼 매물이 1600만달러(184억원)에 나와있는데요. 3.3㎡ 당 평균 시세는 7만8000달러(8965만원)입니다.
당대의 부동산 개발업자에서 미국 제 45대 대통령 당선자로 변신한 도널드 트럼프의 이름을 붙인 건물은 맨해튼에 여럿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이 주상복합은 우리나라 건설사와 오랜 인연을 가지고 있어 눈길을 끕니다.
▲ 맨해튼 트럼프 월드 타워(사진: 대우건설) |
이 건물은 1997년 9월 당시 대우그룹의 건설회사였던 ㈜대우 건설부문(현 대우건설)이 이미 부동산 개발업자로 이름을 날리던 도널드 트럼프의 '트럼프사'와 합작해 지은 것입니다. 기존 유나이티드 엔지니어링 건물을 매입해 철거한 뒤 건설한 것으로 1998년 10월에 착공, 2001년 10월 완공한 사업이죠.
지하 2층~지상 70층(260m), 376가구 규모의 최고급 콘도미니엄(분양 아파트)과 부대시설을 짓는 프로젝트였습니다. 이 사업에는 총 2억4000만~3억달러가 투입된 것으로 전해집니다.
아파트는 벽면 전체를 유리로 덮고 대리석 등 고급자재를 사용한 초호화 사양으로 지어졌고요. 내부에는 헬스클럽, 수영장, 고급식당을 갖추고 있습니다. 지금도 호텔처럼 24시간 발렛파킹, 컨시어지, 케이터링 등 입주민을 위한 초고급 서비스가 제공되고 있다고 합니다.
대우그룹은 당시 현지법인인 대우 인터내셔널 아메리카를 통해 합작법인 'TRUMP-DAEWOO LLP(Limited liability partnership)'를 만들어 사업에 참여했죠. 건설과 사업비용 상당을 대우가 대고, 트럼프는 개발 노하우와 현지 네트워크를 이용해 마케팅을 하는 것으로 업무를 분담한 것으로도 알려지고 있습니다.
현지 교민들 사이에서는 이 프로젝트를 두고 당시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이 사업적으로 트럼프를 도와줬던 사례로 기억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이번 대선 과정에서 불거진 트럼프 탈세 의혹 배경에 트럼프가 1995년 세금신고서에서 9억1600만달러(1조112억원)의 손실을 신고했던 걸 감안하면 시기상 개연성이 없지 않은 이야기죠.
▲ 1998년 대우그룹 초청으로 방한한 도널드 트럼프 당시 트럼프 그룹 회장이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 및 그 부인 정희자 씨와 인사를 나누고 있다.(사진: 리임스튜디오 제공) |
대우건설은 이 사업을, 고급 주상복합 사업을 본격적으로 벌이게 된 계기로 기억합니다. 이 건설사 관계자는 "당시 CM(건설관리) 방식으로 사업을 수주해 공종별 시공자 선정 등 건설 전과정에 걸쳐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한 것으로 안다"며 "한국 건설의 우수성을 선진 미국시장에 입증하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도 큰 의미를 지닌 공사였다"고 설명했습니다.
어쨌든 맨해튼 트럼프 월드 타워 사업을 계기로 트럼프와 대우는 긴밀한 관계를 키우게 됐습니다. 트럼프는 외환위기였던 1998년 6월 대우그룹 김우중 회장의 초청으로 첫 방한해 대우중공업의 거제도 옥포조선소, 대우차 군산 공장, 경기도 포천 아도니스 골프장 등을 둘러보기도 했습니다. 골프장에선 김 전 회장 부인인 정희자 씨가 동반 라운딩을 했다죠.
이듬해인 1999년 5월 두 번째 방한은 대우가 그의 이름을 빌려 주상복합 사업을 벌이면서 이뤄졌는데요. 대우건설은 맨해튼 트럼프 월드 타워를 시공하면서 우리나라에도 최고급 주상복합 아파트의 수요가 늘어날 것을 예상했습니다. 그래서 만들어진 게 '대우 트럼프 월드'라는 이름의 주상복합입니다.
대우는 트럼프사와 제휴해 입지선정, 설계, 공간배치, 인테리어, 입주자서비스 등에 대해 자문을 받아 1999년 5월 첫 사업으로 '여의도 대우 트럼프 월드Ⅰ'을 선보였습니다. 당시 이 주상복합 홍보를 위해 방한했던 트럼프는 "한국의 독특한 양식인 온돌마루나 보안시스템 등이 마음에 든다"며 "미국 뉴욕에도 적용할 수 있겠다"는 등 한국 주거문화에 관심을 드러내기도 했죠.
대우 트럼프 월드Ⅰ는 당시 미국 뉴욕의 재미교포들에게 미리 예약을 받아 40가구를 분양하기도 했습니다. 사전 청약자들을 대상으로 헬리콥터를 띄워 한강 일대를 조망하는 공격적인 판촉 활동도 벌였죠. 또 힐튼호텔에서 클래식 콘서트로 고소득 수요층을 끌어모으기도 했답니다.
▲ 그래픽/김용민 기자 kym5380@ |
트럼프 이름을 단 주상복합은 아파트는 서울 여의도와 용산, 대구·부산 등 전국 7곳에 있습니다. 아파트는 2386가구, 오피스텔은 878실입니다. 대우는 약 5년간 이 이름으로 주상복합 사업을 하다가 이후 '월드마크'로 브랜드를 교체했습니다.
이름을 쓰는 동안 대우는 트럼프 측에 600만~700만달러의 브랜드 사용료를 지불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당시 트럼프의 재정사정이 고려됐는지 사업 규모에 비해 통상적인 수준보다 후한 금액으로 볼 수 있다는 게 건설업계 관계자의 말입니다.
재계에서는 대우그룹이 가졌던 인연이 이어지지 않은 걸 아쉬워 하는 목소리도 나옵니다. 한 재계 관계자는 "트럼프가 워낙 특이한 경력을 가지고 있어 유일하게 끈이 닿은 적이 있는 건 대우그룹뿐"이라며 "대우그룹이 해체되지 않았으면 이번 대선의 상당한 수혜주로 부상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 여의도 '대우 트럼프 월드 2차' 주상복합(사진: 대우건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