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색

[기자수첩]세대갈등 청약제도? 답은 정해져 있다

  • 2020.07.28(화) 15:44

무주택자 위한 가점제로 젊은 층 당첨 확률 희박
특별공급 확충하자 4050 불만…집값 불안 잡을 공급대책 관건

#2016년 경기도의 한 분양단지. A씨 가족은 청약 통장을 들고 있는 본인과 자녀(아들‧딸) 모두 청약을 넣었는데 미혼에 30대 초반인 아들이 당첨됐다. 이후 A씨는 다른 분양 단지에서 청약 당첨이 됐고 다시 청약통장을 만들어 1년 후 또 청약에 도전, 딸과 본인 모두 당첨이 됐다. 2년이 채 안 되는 시간에 A씨 가족은 3개의 분양권을 소유한다.

당시 정부는 청약 1순위 완화(청약통장 가입 2년→1년) 등 전면적인 부동산 규제를 풀면서 시장 활성화를 유도했다. 이로 인해 주택시장 진입 장벽이 낮아졌고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집을 살 수 있었다. 운 좋게 분양권을 3개나 갖게 된 A씨 가족의 집은 분양가 대비 족히 5억~6억원 이상(3채) 오른 상태다.

수도권 대다수가 규제지역으로 지정돼 청약 가점제가 적용되는 지금과 달리 당시는 당첨제였다. 집이 없는 사람이나 무주택 기간이 짧고 부양가족이 없는 사람(청약 가점이 낮은 사람)부터 A씨 같은 유주택자까지 청약한 사람은 누구나 분양 받을 수 있는 확률이 같았다.

결과적으로 이들로 인해 오랜 기간 세입자로 떠돌며 많은 가족을 돌봤던 사람들은 내 집 마련 기회를 운에 밀려 A씨에게 내주고, 더 비싼 돈에 다른 집을 샀거나 여전히 세입자로 전전긍긍하며 살고 있을 것이다.

/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수도권에 거주하는 30대 직장인 B씨는 지난해 자그마한 아파트 한 채를 매입했다. 분양하는 단지마다 청약을 넣어봤지만 턱 없이 낮은 가점에 당첨을 기대하기 어려웠다. 정부가 기준을 완화한 신혼부부 특별공급도 '하늘에 별 따기'였다. 멈추지 않고 오르는 집값에 마냥 분양 당첨을 기다리기보다 최대한 받을 수 있는 은행 대출금을 더해 집을 샀음에도 끊임없이 흔들리는 집값에 마음 한켠 불안감을 지울 수 없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과 함께 느슨해진 부동산 규제부터 손본다. 청약시장에 대해선 투자수요가 지속적으로 유입되고 있는 것으로 판단, 전매제한기간을 늘리고 청약1순위 자격도 강화했다.

특히 서울과 수도권 대부분을 규제지역으로 지정, 청약 가점제를 적용하면서 무주택자에게 분양 기회를 주기로 했다. 여기에 당첨제 물량(전용면적 85㎡ 초과)도 무주택자를 우선 당첨 대상으로 하고, 예비당첨자 비율도 확대하는 등 청약시장의 모든 환경을 무주택자를 우선으로 하고 있다.

여기서 갈등이 생겼다. 가점제는 무주택 기간이 길고 부양가족 수도 많은 4050 이상 세대에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30대 뿐 아니라 내 집이 필요한 20대에게 청약 가점제는 분양받지 말라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이들이 분양가 통제로 가격이 저렴한 신규 분양 대신 무리하게 빚을 내 오래된 아파트라도 사는 것은 이런 이유다.

그렇다고 정부가 젊은 세대를 외면한 것은 아니다. 주거 문제가 저출산의 가장 큰 원인으로 보고 청년‧신혼부부를 위한 임대주택을 비롯해 신혼희망타운 등을 공급한다. 신혼부부 특별공급 기준도 낮추고 최근 7.10대책을 통해서는 생애최초 내집마련 특별공급을 민영주택에도 적용하면서 젊은 세대에게 분양 기회를 조금이라도 더 주기로 했다. 그럼에도 젊은 세대가 만족하기에는 턱 없이 부족한 환경이다.

그러자 이번엔 무주택 4050세대가 반발한다. 거주 수요가 많은 수도권에선 평균 당첨 가점이 48.8점(2020년 상반기, 직방)에 달하고, 청약 경쟁률(상반기 수도권 평균 34.5대 1, 직방)도 높아 웬만해서는 당첨을 기대하기 힘들다. 분양 단지에선 가구 수 하나가 소중한데 그마저 젊은 층을 위한 특별공급을 위해 줄인다고 하니 화가 날 만도 하다. 이들은 '우리도 오랜 시간 세입자(무주택자)로 전전하며 기다린 만큼 지금의 젊은 세대도 순서를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일견 틀린 말도 아니다.

#무주택자를 위해 청약 제도가 개선됐음에도 오히려 청약시장 과열은 지속되고 있다. 정부가 낮은 규제 장벽으로 분양시장에서 차익을 보려는 투기수요 유입이 많다고 지적했던 2017년 서울의 청약 경쟁률은 11.7대 1 수준이었다. 올 상반기 기준 서울 평균 청약경쟁률은 75.6대 1을 기록하며 7배 가량 상승했다. 청약시장에서 투기수요는 없앴을지 몰라도 실수요자 입장에선 내 집 마련 기회가 가점제 적용 이전보다 더 어려워진 게 현실이다.

최근 개선된 청약제도에 대한 불만이 쌓이고, 이 과정에서 세대 갈등이 발생하는 것도 결국은 이런 상황 때문이다. 어디까지 오를지 모르는 집값으로 시장 진입이 어려운데, 그나마 저렴하게 새 아파트를 살 수 있는 기회인 청약시장에서 세대를 막론하고 나 아닌 다른 사람은 집 한 채를 얻기 위한 경쟁자일 뿐이다.

지금의 상황에서 모든 세대에게 공평하게 기회를 주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다만 이들이 조금이라도 내 집 마련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더 갖고, 청약시장 과열을 막아 당장 집이 필요한 실수요자의 당첨 확률을 높이려면 주택 공급을 늘려 집값을 안정시키는 게 최우선이다.

정부도 이를 위해 규제를 통한 수요 억제와 주택 공급 확대라는 투트랙 전략을 총동원하고 있다. 관건은 시장이 만족할 만한 방안을 만들 수 있느냐다.

당장의 과열을 막기 위해 임시방편적 공급대책을 만드는 게 아니라 구체적인 사업 추진 계획과 현실 가능성이 높은 밑그림을 그려야 한다. 그래야 실수요자들이 조급하게 시장 진입을 시도하는 것보다 주택 공급 확대가 이뤄지는 시점에 내 집 마련을 계획할 수 있고, 과열된 시장도 잠잠해질 수 있는 까닭이다.

결국 열쇠는 정부가 쥐고 있다. 이번 주 발표될 주택 공급 확대 방안에 온 시장의 관심과 기대가 쏠리는 이유다.

naver daum
SNS 로그인
naver
facebook
goog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