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 원가 상승의 여파가 공공주택 문턱까지 왔다. 일반 정비사업뿐만 아니라 공공이 지원하는 정비사업에도 분양가상한제를 적용하지 않는 방안이 추진된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민간사업자를 위한 공사비 현실화 계획을 세울 계획이다.
분양가, 공사비 책정 과정에서 사업이 중단될 가능성을 막고 주택 공급을 원활히 하려는 조치다. 다만 무주택자 등 공공분양 수요자들의 부담이 증가할 수밖에 없다. 주거복지 성격이 강한 공공분양마저 서민 주거 안정을 위협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공공주도 분양가상한제 폐지 논의
천준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최근 '도심 공공주택 복합지구'와 '주거재생혁신지구'에 대한 분양가상한제 의무 적용을 폐지하는 내용의 주택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정부가 지난달 1·3대책에서 이같은 규제를 폐지하겠다고 밝혔는데, 국회가 이어받은 것이다.
이들 지구에서는 공공이 주도하는 정비사업이 이뤄진다. 토지 등의 소유자에는 용적률 상향, 기부채납 제한 등의 혜택이 제공된다. 정부는 새로운 토지 확보가 어려운 도심에서 주택 공급을 확대하고, 공공분양 주택 등을 확보할 수 있다.
관련 규정에 따라 도심복합사업 주택의 70% 이상을 공공분양 주택으로 공급한다. 분양주택에는 분양가상한제가 적용된다. 당시 정부는 공공주도 사업인 만큼 "실수요자에게 저렴하게 주택을 공급할 수 있도록" 분양가상한제를 적용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런데 사업지 곳곳에서 토지 등을 소유한 권리자 분양가가 일반 분양가를 앞지르는 '역전 현상'이 발생했다. 분양가상한제로 일반 분양가가 제한되면서 권리자들의 부담이 증가했다.
서울 강북 수유12구역의 경우 권리자 우선 분양가(추정)는 3.3㎡당 2523만원이지만, 일반 분양가(추정)는 3.3㎡당 2308만원이다.
권리자들의 반발이 거세자 정부는 지난 1·3대책에서 도심복합사업과 주거재생혁신사업에도 분양가상한제를 적용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국회는 이같은 내용을 담은 주택법 개정안을 논의 중이다. 개정안이 통과되면 이들 사업의 분양가가 지금보다 상승할 것으로 보인다.
LH, 공사비 조정…'민간 참여' 독려
도심복합사업, 주거재생혁신사업 외 공공주택도 분양가가 상승할 조짐이다. LH는 최근 기준공사비에 물가상승분을 충분히 반영하고, 분양경비 등 기타 공사비를 현실화하는 등 사업비를 재구조화하겠다고 밝혔다. 민간사업자의 참여도를 높여 주택 품질을 개선하겠다는 취지다.
사업비 증가는 분양가 상승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다만 LH는 분양가상한제가 적용되는 만큼 상승 폭이 크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구체적 요율 등에 대해선 민간건설사의 의견을 반영해 다음 달 중 세부 추진계획을 마련할 계획이다. 본격적인 민간참여사업 공모는 4월부터 시작한다.
LH 관계자는 "기존에 반영되지 않던 비용들이 공사비에 들어가면 기본적으로 분양가가 상향하는 방향으로 갈 수는 있지만, 어쨌든 분양가상한제가 적용된다"며 "모든 비용을 분양가에 100% 반영하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결국 무주택자 등 실수요자 부담은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분양가, 공사 원가 상향에 따른 실익이 크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주택시장 침체로 미분양 우려가 커진 가운데 건설사들은 사업 수주에 더욱 까다롭게 나서고 있다.
서진형 공정주택포럼 공동대표(경인여대 MD상품기획비즈니스학과 교수)는 "공공분양은 말 그대로 공공성을 띄고 있어 실수요자들이 저렴한 가격에 내 집을 마련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바람직하다"며 "분양가상한제를 적용하지 않거나 원가를 올린다고 해서 사업 참여가 활발해지기 어렵고, 공급이 늘 것이란 보장이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