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량판이라고 다 같은 무량판이 아닙니다."
인천 검단 아파트 주차장 붕괴 사고에 이어 한국토지주택공사(LH) 발주 아파트 철근 누락 사태가 잇따라 터진 뒤 무량판 공법에 대한 공포심이 빠르게 확산했는데요. 논란이 커지자 곳곳에서 '우리 무량판은 다르다'는 주장이 터져 나오면서 관심을 끌었습니다.
먼저 문제가 된 LH의 경우 무량판 공법과 관련한 특허 3개를 보유했다는 사실이 알려졌는데요. 이 공법이 다른 민간 아파트에 적용하는 방식과는 다소 다르다는 주장이 이어졌습니다. 서울주택공사(SH)와 부산도시공사(BMC) 역시 LH와는 다른 무량판 구조를 적용해 왔다고 강조하기도 했고요.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런 주장에 회의적인 입장을 내놓고 있습니다. LH가 적용한 무량판 공법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입니다.
드롭 패널 적용한 '무량판'은 안전하다(?)
LH 발주 아파트 곳곳에서 철근이 누락한 것으로 밝혀지면서 파장이 커지자 다른 기관들의 발걸음이 분주해졌는데요. 각 지방자치단체는 물론 민간 건설사들이 제각각 자체 조사에 나섰습니다.
특히 SH와 BMC의 경우 자체 조사 결과 철근 누락 등의 부실시공 사례가 없었다고 신속하게 발표했는데요. 이와 함께 자사에서 적용한 무량판 공법이 LH와는 다르다는 점을 강조해 눈길을 끌었습니다.
김헌동 SH 사장은 기자설명회에서 "SH는 지하주차장 기둥 상단부에 '드롭패널(Drop Panel)'이 형성된 무량판 구조”라며 "LH와 비교할 때 슬래브에 구멍이 뚫리는 '펀칭 현상' 방지에 유리하다"고 주장했습니다.
BMC 역시 보도자료를 통해 "부산도시공사에 적용된 무량판 구조는 LH에서 적용한 무량판 구조와 다르게 기둥 상부에 뚫림파괴 방지를 위해 지판(드롭패널)과 전단보강근이 보강 적용돼 구조 안전성을 확보했다"고 강조했습니다.
실제 무량판 구조는 세부적으로 두 가지 종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플랫 플레이트 슬라브(Flat plate slab)' 구조와 '플랫 슬라브(Flat slab)' 구조입니다.
플랫 플레이트 슬라브의 경우 지판 없이 기둥만으로 천장을 지지하는 형식을 의미하고요. 플랫 슬라브의 경우 기둥과 천장 사이에 넓고 평평한 형태의 지판(드롭 패널)이 설치된 방식입니다.
이렇게만 설명하면 SH나 BMC의 무량판 공법이 LH보다 훨씬 안전한 게 아니냐는 생각이 들 수 있는데요. 하지만 반대 의견도 있습니다.
사실 LH 역시 드롭패널 기능을 하는 지판을 기둥에 설치했다고 합니다. 다만 SH의 경우 기둥마다 별도로 설치를 했고, LH의 경우 일체형으로 설치를 했다는 점이 다를 뿐입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건축구조 전문가는 "SH가 기둥별로 드롭 패널을 적용했다고 해서 더 안전하다는 얘기는 무량판 공법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 나온 이야기"라며 "LH의 공법에도 드롭 패널 기능이 없었던 게 아니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SH나 BMC가 적용한 드롭 패널 구조 역시 LH처럼 철근이 누락했다면 위험하긴 마찬가지"라고 꼬집었습니다.
부실시공 시 붕괴 더욱 취약…"공법 이해도 높여야"
다만 무량판 공법 자체에는 문제가 없다고 하지만 위험성이 전혀 없는건 아닙니다.
설계와 시공, 감리가 제대로만 진행된다면 문제가 없었겠지만 이를 조금만 소홀히 해도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다소 생소하고 까다로운 공법이었다는 점도 지적됩니다.
전문가들은 무량판 공법의 경우 슬래브와 기둥을 연결하는 부위를 철근 등으로 탄탄하게 설계·시공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를 소홀히 할 경우 수평 하중에 취약해 기둥이 슬래브를 뚫고 무너질 위험성이 있다는 지적인데요. 이를 펀칭 현상이라고 합니다. 펀칭 현상은 삼풍백화점이 붕괴되기 바로 전날 백화점 옥상에서 발견되기도 했습니다.
더욱이 이처럼 까다로운 무량판 공법을 비용 절감 차원에서 도입했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됩니다.
이한준 LH 사장은 이번 사태와 관련한 브리핑에서 "기둥식(라멘) 구조는 균열과 처짐을 막는 데는 유리하지만 무량판 구조는 라멘에 비해 인건비가 적고 층고가 낮아서 비용 절감 차원에서 도입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이런 기조가 LH 건설 현장 전반에 적용됐을 가능성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그간 일반적으로 적용해왔던 벽식 구조의 경우 현장의 이해도가 높지만, 무량판 공법은 전문성이 부족한 업체나 인력이 많아 시공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을 거라는 지적입니다. 더욱 철저한 관리와 교육 등이 필요한데 이를 제대로 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도 있고요.
이런 맥락에서 한 민간 건설사의 공법이 주목받기도 했는데요. 무량판 구조가 내재한 위험성을 방지할 수 있는 기술이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DL이앤씨는 지난 2016년 입체 트러스 전단보강재를 개발해 특허를 획득했는데요. 기존 방식은 작업자가 일일이 철근 보강근을 하나씩 설치하는 방식이라면, 이 방식은 전단보강재를 공장에서 미리 제작해 현장에서 간편하게 설치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작업자의 실수 등으로 보강재를 빠뜨릴 가능성을 최소화한 겁니다.
전문가들은 무량판 공법 자체를 도외시하기보다는 이번 사고를 계기로 이해도를 더 높이고 관련 지침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하고 있습니다.
안형준 건국대학교 건축공학과 교수는 "무량판 구조 장점이 많은 대신 제대로 설계하고 시공해야 하는 공법"이라며 "정부와 정치권이 무량판 구조에 대한 과한 공포심을 심기보다는 앞으로 무량판 구조에 대한 설계 및 시공 지침서 등을 도입해 철저히 관리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