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가 시내 모든 지상 철도를 지하로 내리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국토교통부가 추진하는 철도 지하화 통합개발 사업에 선도 사업지로 선정돼 2034년 지하화, 2050년 지상 개발까지 마치는 게 목표다. 이번 계획엔 국가철도만 포함됐다. 서울 지하철 2호선 등 도시철도는 빠졌다.
지상으로 달리는 도시철도 역시 생활권을 단절하고 소음·진동을 발생시켜 주민 불편을 야기해왔다. 낙후된 시설과 주변 지역 슬럼화로 지역 이미지를 악화하는 것도 문제로 지적됐다. 하지만 도시철도 지하화는 근거법 마련부터 사업성 확보까지 갈 길이 먼 상황이다.
2·3·4·7호선 지상철도도 불편해
서울시는 지난 23일 서울 시내 지상철도 전체 구간을 지하화하는 '철도 지하화 통합개발 계획'을 발표했다. 경부·경인·1호선 서울~석수, 구로~오류동, 청량리~도봉산 등과 경의·중앙선 가좌~서울, 효창공원앞~양원 및 경춘선 망우~신내역 등 구간이다.
서울시는 이 구간을 지하화하는 데 25조6000억원의 사업비가 소요될 것으로 추산했다. 상부공간 개발 예상이익 31조원을 통해 사업비를 충당할 계획이다. ▷관련기사: 서울 모든 철길 내리고 '공원+복합개발'…완성은 2050년(10월23일)
이번 계획엔 경부선과 경원선, 경인선, 경의선, 경춘선, 중앙선 등 국가철도만 담겼다. 올해 1월 제정된 '철도 지하화 및 철도부지 통합개발에 관한 특별법(철도 지하화 특별법)'에 국가철도만 명시됐기 때문이다. 국가가 소유권을 갖고 지하화 사업을 추진하는 국가철도와 달리, 도시철도는 소유와 운영의 주체가 지방자치단체다.
서울 도시철도 가운데 지상을 지나는 구간은 2호선이 가장 많다. 한양대~잠실, 성수~신답, 합정~영등포구청, 신도림~신림 등이다. 3호선은 옥수~압구정, 4호선은 이촌~동작 및 쌍문~당고개, 7호선은 건대입구~청담역 등이다. 대부분 하천이나 도로 위를 지나는 교량형으로 이뤄졌다.
신도림역 인근 아파트에 사는 A씨는 "신도림동과 구로동을 갈라놓은 1호선만큼은 아니지만 도림천을 따라 지나는 2호선도 역사 근처에선 소음·진동 문제가 있다"며 "지하철역 출구를 통해 이동하는 것도 불편하다. 얼른 공원이 조성돼 자유롭게 연결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특히 지하화 요구가 거센 곳은 한양대~잠실, 성수~신답역 등 총 12.59km 구간이다. 이를 위해 광진구와 성동구, 송파구는 지난해 말 '도시철도 2호선 지상 구간 지하화 공동 대응' 업무협약(MOU)을 맺기도 했다. 광진구에 따르면 MOU 이후 지난달까지 3개 자치구가 모여 3차례 실무회의를 진행했다.
건대입구역 인근 아파트 소유주인 B씨는 "건대역 사거리 쪽 고가선로 때문에 동네가 번잡하고 지저분한 느낌"이라며 "2호선 지하화는 20년 넘게 선거철에만 반짝 나오는 이슈로 진척되는 게 하나도 없는 것 같다. 소음만이라도 해결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사업성 없는 개발…지자체가 비용 보조?
이런 노력에도 사업이 지지부진한 건 경제적 타당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지난 2016년 '2호선 지상 구간 지하화 기본구상 및 타당성 조사 용역' 결과, 2호선 지상 구간 전체에 대한 비용 대비 편익(B/C)은 0.09로 기준치(1)에 훨씬 못 미쳤다.
용역 보고서에 따르면 2호선 지하화 총사업비는 3조8844억원으로 추산됐다. 이에 반해 철도 환승 시간 절감, 도로 통행시간 절감 등 예상 편익은 연 957억원에 불과했다.
용역수행기관은 "경제성 측면에서 사업성이 없는 것으로 분석돼 단기적인 지하화 사업 실행은 어렵다"면서도 "경제성 외에 공공성, 환경개선 등 정책적 목표를 고려해 구간별, 단계별로 지하화 사업 시행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평가를 내렸다.
국가철도가 예비타당성 조사 통과가 불가능한 구조를 극복한 것처럼 도시철도 역시 특별법에서 돌파구를 찾았다. 고민정 의원 등 15인은 지난 6월 '도시철도 지하화 및 도시철도부지 통합개발에 관한 특별법(도시철도 지하화 특별법)'을 발의했다. 개발 비용은 사업시행자가 부담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지방자치단체가 비용의 일부를 보조하거나 융자할 수 있도록 한 게 골자다.
법안은 지난 8월 국토교통위원회 심사 후 계류된 상태다. 국가철도 특별법이 상부 개발이익을 지하화 사업비로 활용함으로써 국가재정 투입 없이 사업을 추진하는 것과 달리, 도시철도 특별법은 지자체 재정 투입을 전제로 하고 있다.
법안에 대해 국토부는 "도시철도 지상 구간은 대부분 교량 구간으로 이미 일정 수준 개발이 이뤄져 사업성 확보가 사실상 어려울 것"이라며 "지자체 중심으로 새로운 모델을 개발해야 할 것"이라는 입장을 냈다. 서울시는 "지하화 사업 비용 보조 주체로 지자체만 명시하는 건 불합리하므로 국가도 포함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서울시 도시공간전략과 관계자는 "희망적인 상황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도시철도 지상 구간은 대부분 하천이나 도로 위를 지난다. 지하로 내린다 한들 도로를 끊고 건물을 세울 수 없으니 사실상 개발 용지가 없다"며 "계류 법안이 통과된다 해도 개발이익을 기대할 수 없는 구조라 결국 사회적 공감대를 확보한 뒤 재정사업으로 하게 될 것"이라고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