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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 스토리]현대차가 GBC '반토막' 내는 몇 가지 이유

  • 2024.02.28(수) 12:28

10년 전 10조 들여 산 한전부지에 '55층안' 제시
서울시, '중대 변경' 판단 땐 건축허가 다시 해야
현대건설·엔지니어링도 공사비 부담 더는 '묘수'

현대자동차그룹이 서울 강남구 삼성동 글로벌비즈니스센터(GBC)를 최고 105층이 아닌 55층으로 낮춰 짓기로 방향을 틀었습니다. 2014년 한국전력 부지를 사들여 그룹의 초고층 통합사옥을 세우겠다고 발표한 지 10년 만의 결단이죠.

일단 최근 공사비 급등으로 사업 추진이 녹록지 않은 상황에서 '가성비'를 택한 것이란 분석이 나옵니다. 송파구 롯데타워(123층)가 이미 '국내 최고' 타이틀을 선점한 만큼 초고층을 고집할 이유가 사라진 점이나 모빌리티 산업에 새로 등장한 도심항공교통(UAM)이라는 방향성도 현대차가 '실용'을 택한 배경으로 꼽히죠.

서울 강남구 삼성동 현대차 신사옥인 글로벌 비즈니스 센터(GBC) 부지 일대 /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55층 설계 바꾸기로…市 "건축허가 변경 가능성"

현대자동차그룹은 이달 7일 서울시에 GBC 건립 사업의 설계변경을 신청했습니다. 105층(높이 569m)짜리 타워 1개동과 저층 건물 4개동을 세우려던 계획을 55층 2개동을 포함한 6개동으로 바꾸는 것이 골자죠.

앞서 현대차그룹은 2014년 한전 부지를 10조5500억원에 매입하고 GBC를 건축하기로 했습니다. 이 초대형 투자 결정에는 정몽구 명예회장(당시 회장)의 의지가 강하게 담겼던 것으로 알려져 있어요.

현대차는 여기에 초고증 배경업무시설(사옥)과 함께 관광숙박, 전시, 공연 등의 부대시설을 계획했어요. 2019년 1월 정부 심의 마지막 단계인 '수도권정비위원회 심의'를 최종 통과했고요. 같은해 11월 서울시 건축허가도 받았죠. 이듬해 5월 착공에 돌입했지만 현재까지 굴토공사를 진행할 정도로 지지부진합니다. 공정률은 4%대 그치죠.

현대차그룹이 초고층 설계안을 백지화하면 인허가 절차도 다시 밟아야 합니다. 서울시에서 이 프로젝트 사전협상을 담당하는 동남권사업과 관계자는 "설계변경이 접수돼 경미한 변경인지, 중대한 변경인지를 검토하고 있다"며 "경미한 변경이라면 공고만 해도 되는데, 중대한 변경으로 판단되면 도시건축공동위원회 심사를 거쳐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건축허가 부서인 건축기획과 관계자는 "2019년 건축허가, 2020년 착공 후 변경사항 없이 공사가 진행 중인 상태"라며 "층수 변경을 위해서는 지구단위계획을 변경한 뒤 건축법에 따른 건축허가 변경 절차를 진행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현대차그룹은 초고층 상징성을 포기하는 대신 도심항공교통(UAM) 이착륙장을 구축해 내실을 높이는 방향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업계 관계자는 "이 프로젝트는 부동산 개발이 아닌 모빌리티 산업이 핵심"이라며 "초고층 사옥이 기업가치에 본질적으로 기여하지 않는다는 오너의 판단으로 보인다"고 해석했어요.

현대차그룹의 오너십은 땅을 샀던 10년 전에는 정 명예회장에게 있었지만, 세월이 흐른 지금 정의선 회장에게 있습니다. 정 회장은 수석부회장 시절부터 이 사업부지를 실용적으로 활용하는 방향으로 재검토할 것을 주문했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여태껏 GBC 건립공사가 본격적으로 이뤄지지 않은 배경이죠.

글로벌비즈니스센터(GBC) 조감도 /서울시 제공

비싸고 복잡한 초고층 대신 실리 챙기나

최근 공사비 급등에 따른 부담은 설계를 바꾸기로 한 결정타로 꼽힙니다. 2016년 2조원대로 추산됐던 공사비가 5조원을 넘길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입니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건설공사비지수는 153.26포인트로 2016년 1월(100.35) 대비 약 52.7% 상승했어요.

특히 100층짜리 초고층 건물을 짓는 사업은 평균적인 물가 상승 비율보다 더 높은 비율로 공사비가 뜁니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초고층 건물을 시공할 때는 반드시 강풍과 지진에 대비해 특수공법을 적용하고 피난안전구역도 마련해야 한다"며 "점성이 강한 콘크리트로 타설할 경우 품질 저하 문제가 발생할 수 있어 고도의 시공 기술을 요하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앞서 토지를 나눠 매입한 현대차·기아·현대모비스는 2020년 현대차 계열의 두 건설사인 현대건설, 현대엔지니어링과 총 2조5604억원에 시공계약을 맺었습니다. 각각 1조7923억원, 7681억원으로 7대 3의 비율이죠.

하지만 층수를 낮추는 설계 변경과 함께 이 비율이 바뀔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옵니다. 알려져 있다시피 현대엔지니어링은 정의선 회장이 지분 11.7%를 직접 쥐고 있는 계열사이기도 합니다.

현대차그룹 2024년 신년회에서 정의선 회장이 임직원과 인사하고 있다./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또 설계가 바뀌면 현대건설과 현대엔지니어링 입장에서는 높아진 공사비를 감내하면서 최초 설계 그대로 사업을 진행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룹 주력 계열사를 상대로 공사비 증액 협상을 해야 하는 부담에서도 벗어날 수 있죠. 설계 변경과 함께 비교적 자연스럽게 공사비 재산정에 들어갈 수 있어섭니다.

완공 후 실용성 측면에서도 초고층보다 50~60층대가 유리하는 의견이 많습니다. 이태희 한국건설산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초고층은 전망이나 상징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오피스로서의 효용성은 떨어질 수 있다"며 "건축비도 많이 들고 대피층 등 안전 보강이 필요할 뿐만 아니라 두꺼운 구조 탓에 내부 활용 공간이 줄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부분 매각이나 임대 등에서 선택지가 늘어나는 효과도 있답니다. 송승현 도시와경제 대표는 "층수를 높이는 것보단 연면적을 넓히는 게 활용도가 높다. 삼성동 주변 건물 높이와 조화를 고려할 때도 55층이 현실적으로 바람직하다"며 "상가 임대 시 1~2층이 잘 나가는 만큼 초고층 하나보다 고층 여러 개가 나을 수 있다"고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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