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색

[르포]90년 된 폐정수장에 고양이도 사람도 다시 발길

  • 2025.02.07(금) 17:21

세종시 첫 우수건축자산 지정 3곳
오래된 정수장·폐공장이 복합문화공간으로
지역 경제 활력 도모…"정부 재정지원 필요"

아무리 역사가 깊은 건축물이라도 방치하면 '흉물'로 전락하기 십상이다. 지역의 경관을 해치고 우범 지대가 될 수도 있다. 이를 보존·관리하는 동시에 활용까지 하면 어떨까. 

지난 6일 둘러본 세종시 우수건축자산들이 그랬다. 건축물의 원형을 최대한 남겨 역사성을 보존하고 있었다. 여기에 외형을 해치지 않는 리모델링으로 복합문화공간을 조성했다. 시민들의 생활에 녹아드는 역사적 장소가 생겨난 것이다. 

국토교통부는 도시 재생 등을 연계해 지역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한 방안을 고심 중이다. 수십 년 동안 방치됐던 건축물들이 지역의 보물로 재탄생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지난 6일 방문한 조치원 문화정원 내 갤러리. 정수장으로 썼던 건물이라 물때가 끼고 벽이 부식돼 있다. 과거 침전기 및 여과기 통로는 고양이가 이용하고 있다./사진=채신화 기자

우수건축자산, '옛날 흔적' 찾아보는 재미

이날 방문한 '조치원 문화정원'은 오래전 지어진 정수장의 원형을 보존한 채 일부 리모델링만 돼 있었다. 저수조였던 전시장에선 벽에 걸린 작품뿐만 아니라 물 때와 부식 현상 등 물이 차 있었던 흔적도 함께 볼 수 있다. 

전시장 한편에 위치한 침전기 및 여과기 통로 출입구도 녹이 슨 채였다. 과거엔 물이 드나들었겠지만 지금은 고양이가 이용하고 있다. 기존 건물의 흔적과 자재를 가능한 한 많이 살려두니 옛날 모습을 찾아보는 재미가 있었다. 

조치원 문화정원은 세종시 제1호 우수건축자산으로 등록된 곳이다. 이날 1927아트센터(2호), 장욱진 생가(3호)도 함께 등록됐다. 이로써 전국 우수건축자산은 총 27개로 늘었다. 서울 13곳, 제주 5곳, 광주 4곳, 경기·전남 1곳 등이 있다.

건축자산이란 '한옥 등 건축자산 진흥에 관한 법률'에 따라 사회·경제, 역사·문화, 경관적 가치를 갖고 있어 건축문화 진흥 및 지역 정체성 형성에 기여하는 건축물 등을 말한다. 

이들 중 체계적으로 관리할 필요가 있는 곳은 건축위원회 심의를 거쳐 우수건축자산으로 등록하고 있다. 우수건축자산은 건폐율, 조경 면적, 부설주차장 설치 등 건축 규제를 완화해 준다. 기존 건물을 보존하면서도 자산을 활용해 지역 거점으로 재탄생할 수 있도록 길을 터주기 위해서다. 

조치원 문화정원은 1935년 정수장으로 지어졌다가 2010년 폐쇄된 시설이다. 2013년부터 방치된 정수장 시설과 주변 근린공원을 통합해 2019년 1만여㎡ 규모의 복합문화공간으로 조성했다. 

조치원 문화정원 내 보존된 침전기 및 여과기/사진=국토교통부 제공

유일한 근대 건축물인 정수장 기계실은 카페로 운영하는데, 옛 건물의 목조 천장 구조와 창틀을 그대로 살렸다. 봄에 벚꽃이 만발하면 그 경치도 함께 즐길 수 있어 찾는 이가 많아진다고 했다.

이어 방문한 조치원 1927아트센터는 산업유산을 재사용한 건축물로, 근현대기 조치원 역사를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이곳은 1927년 섬유공장으로 설립된 뒤 6.25 전쟁을 거쳐 임기 교사, 제지공장 등으로 활용됐다.

이후 2000년 중반에 운영을 중단하고 물류창고로 사용하다가 방치됐다. 지역 내 흉물처럼 버려졌던 공장 부지를 2017년 세종시가 매입해 2022년 8월 공연장·전시장·카페를 갖춘 문화 공간으로 재개장했다. 

근현대 공장에서 전형적으로 쓰인 목조 트러스 구조 등이 남아 있다. 대형 스크린 등을 활용할 수 있는 카페에는 이날 오전에도 젊은 청년들이 모여 함께 공부를 하고 있었다. 

심재걸 조치원 1927아트센터 대표(PD)는 "과거 공장이 번성할 시기엔 이 일대가 부흥했지만 이후 공장 문을 닫고 건물이 방치되면서 흉가처럼 됐다"며 "복합문화공간으로 조성한 현재는 조치원 도시 재생에 기여하고 있다"고 말했다.  

조치원 1927아트센터 외관/사진=채신화 기자

 '한국판 미테랑' 되려면…"예산 지원 필요"

제3호 세종시 우수건축자산은 장욱진 화백 생가다. 1905년 세워진 한옥으로 건축한 지 120년이 지났지만 주택의 안채 원형이 잘 보존돼 문화·역사적 가치가 높은 것으로 평가받았다.

이자은 대전세종연구원 세종연구실 연구위원(박사)은 "디귿(ㄷ)자 모양의 안채가 있고 일자 모양의 대문채가 있는데 대문채는 철거했고 안채를 재생하려고 한다"며 "생가 복원 및 기념관 건립 사업이 세종시 중점 사업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제도 활성화를 위해선 재정 지원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우수건축자산은 소유자가 신청하면 심의를 거쳐 시도지사가 등록하는 구조인데, 정부의 재정 지원이 없어 지자체들이 적극적이지 않은 측면이 있어서다. 

국토부 관계자는 "우수건축자산 정비나 주변 활성화 명목으로 편성된 정부 예산이 없다"며 "지금까지 했던 건 대부분 지자체 예산이라 활성화가 더디다"고 설명했다. 

이어 "우수건축자산이 한 곳도 등록되지 않은 광역시도 꽤 있기 때문에 지자체들과 건축자산을 체계적으로 보존하고 활용할 수 있도록 예산 등을 협의해 보려고 한다"고 말했다. 

조치원 1927아트센터 내 문화공간/사진=채신화 기자

특히 도시재생 등과 연계하는 사업을 검토한다는 방침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도시재생이 연계되면 국토부의 도시재생사업, 지역활력사업 등의 예산을 받을 수 있다"며 "해당 내용을 3차 기본계획에 반영하려고 준비중"이라고 설명했다. 

국토부는 전국 6624곳 건축자산의 체계적 활용과 보전, 미래 우수건축자산 창출을 위해 올해 '제3차 건축자산 진흥 기본계획(2026∼2030년)' 수립에 들어간다. 내달 기본계획 용역을 발주해 연내 수립할 예정이다.

3차 계획에는 우수한 건축자산을 지역 도시건축·문화·관광의 거점을 만들 수 있도록 제도 개선 방안을 담는다. 손은신 건축공간연구원(auri) 건축문화자산센터장은 "법안이 만들어질 때(2015년)보다 사회 경제적 여건이 많이 변화했기 때문에 실효적 방안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국토부 내 다양한 사업들과 연계할 방안을 모색하고, 현시점에 맞는 건축 자산 및 정책 추진 전략을 도출하는 게 기본 계획의 주요 내용과 목적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국토부는 이를 통해 '한국판 미테랑' 프로젝트를 내다보고 있다. 미테랑 프로젝트는 프랑스 미테랑 대통령 시기의 대규모 문화건축 프로젝트를 말한다. 루브르 박물관의 유리 피라미드가 대표적이다.

장우철 국토부 건축정책관은 "우수건축자산에 도시재생 프로그램을 연계하면 더 강한 인센티브가 돼 지역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을 것"이라며 "한국판 미테랑(프랑스), 한국판 산토리니(그리스) 등을 거쳐 나아가 한국판 메디치(이탈리아) 가문이 나올 수 있도록 제도를 마련하겠다"고 강조했다.

naver daum
SNS 로그인
naver
facebook
goog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