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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와 정조의 공통점은?

  • 2014.09.10(수) 08:31

강원국의 '직장인의 말하기·글쓰기'(26)
글쓰기가 회사 품격을 좌우한다

글쓰기에 관한 공자 말씀이다.

내용이 되는 바탕(質)이 꾸미는 형식(文)보다 앞서면 거칠어진다(質勝文則野, 질승문즉야). 아무리 바탕이 훌륭해도 잘 꾸미지 않으면 조잡해진다. 즉 꾸밀 필요도 있다는 말씀이다. 또한 형식(文)이 바탕(質)보다 앞서면 공허해진다(文勝質則史, 문승질즉사). 빈약한 바탕을 꾸미기만 하면 겉만 번지르르해진다. 즉 내실이 있어야 한다는 말씀이다.

결국, 촌스럽지도 겉만 화사하지도 않아야 하며, 그러려면 바탕과 형식, 내용과 꾸밈이 조화를 이뤄야(文質彬彬, 문질빈빈) 한다는 얘기다.

사람에게 인품이란 게 있듯이, 조직이나 집단에도 품격이란 게 있다. 사람의 인격이 배운 것, 가진 것과 무관하듯이, 조직의 품격 또한 규모나 부의 크기와 무관하게 존재한다. 그렇다면 집단이나 조직의 수준은 무엇으로 평가하며, 무엇을 보면 알 수 있을까?

어떤 사람은 화장실에 가보면 알 수 있다고 하고, 또 어떤 사람은 구성원들의 표정이나 옷차림새를 보면 알 수 있다고 한다. 그 밖에도 조직의 품격을 보여주는 징표는 많을 것이다.

나는 글쓰기 수준이 조직 수준을 대변한다고 생각한다.

하이데거의 말에 빗대어 얘기하면 ‘언어가 존재의 집’이듯이 ‘글은 회사의 얼굴’이다. 회사에서 쓰는 글이 곧 그 회사다. 글은 곧 그 사람의 생각이고,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집합이 회사니까 그렇다. 그러므로 회사의 깊이는 그 회사가 쓰는 글의 깊이로 나타난다. 회사 수준은 글의 수준을 넘어서지 못한다.

복도나 게시판에 붙어 있는 포스터, 공지 문안, 사내 보고서나 이메일, 사보나 대외 뉴스레터, 그 회사가 만들어내는 제품 매뉴얼, 브로슈어 등등에 나타나는 글의 수준을 보면 그 회사의 수준을 알 수 있다.

어느 회사의 신문 광고 문구를 보고 ‘이 회사는 공연히 돈까지 쓰면서 자기 밑천 드러낸다.’는 생각을 해본 적 없는가? 의도적으로 광고 콘셉트를 그리 잡지도 않았는데, 참을 수 없이 촌스러운 광고 문안을 보면서 말이다.

 

어느 영업직원이 보낸 제품 홍보 이메일을 받고, 아예 그 회사는 거들떠보지도 않게 된 경험은 없는가? 앞뒤 문맥은 물론 오자투성이 메일 내용 때문에 말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대학교 교정에 한 번 가보라. 캠퍼스 곳곳에 있는 게시판을 보면 그 대학의 수준이 대개 보인다.

돈, 속도, 효율을 숭상하는 시대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 그깟 글쯤이야 어찌 쓰든 대수냐, 통하기만 하면 되지. 글을 다듬는 데 들일 시간이 있으면 돈 되는 일에 써라. 실체가 중요하지 겉치레는 필요 없다. 이렇게 얘기하는 분들이 많다.

이런 분들에게 정조대왕의 일화를 전해주고 싶다. 수원 화성을 축조할 당시다. 성의 외관을 어떻게 할 것인지 토론이 벌어졌다. 신하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성은 튼튼하게만 지으면 되는 것 아닌가요? 이에 대해 정조대왕은 ‘아름다운 것이 강하다’고 했다. 그리하여 우리 성곽 문화의 백미로 꼽히는 수원 화성이 만들어졌다.

형식은 내용의 종속물이 아니다. 회사 홈페이지를 생각해보라. 외양이 조잡하면 내용은 들어가 볼 생각조차 안하게 된다. 설사 들어갔다 해도 써놓은 글이 시원찮으면 믿음이 가지 않는다. 내부 구성원도 마찬가지다. 자기가 다니는 회사가 내용적으로 아무리 좋다고 해도 사내에서 접하는 글들이 형편없으면 의식이 그 수준에 맞춰진다. 그 수준만큼 말하고 행동한다.

바야흐로 문질빈빈(文質彬彬)해야 성공하는 시대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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