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정태영 사장은 ‘디자인 경영’이라는 말에 대해서는 손사래를 친다. 그는 “단순히 카드 디자인 예쁘게 해서 성공한 건 아니다”라고 말한다. 디자인 ‘전략’을 쓴 적은 있어도 디자인 경영을 하지는 않는다는 게 정 사장의 주장이다. 디자인은 그저 포장지에 불과하다. 알맹이는 따로 있다. 바로 ‘숫자’다.
사실 그는 어릴 적부터 숫자와 씨름하며 살았다. 수학 교사인 부친은 그에게 늘 수학을 가르쳤다. 그의 부친은 단순 문제풀이식 수학이 아닌, 공리와 정의 등 수학의 핵심 개념을 아들의 머릿속에 심어주려 했다.
정 사장은 “아버지는 A=B=C=D이면 A=D이고, A는 D의 뿌리라는 걸 항상 깨닫게 해 주셨다”고 말했다.
밥상머리 교육 덕분에 정 사장은 수학적인 사고방식을 뼛속 깊이 체득할 수 있었다. 그는 “매사에 A와 B 사이에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지 파악하기 전에는 움직이지 않는 버릇이 있다”고 말한다. 어떤 일이든 ‘왜’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 있어야 실천에 옮긴다는 것이다.
현재 그의 경영 고민의 8할은 숫자에 관한 것이다. 그는 카드업의 본질을 잊지 않는다. 카드업은 금융업이다. 소수점까지 따지며 울고 웃는 게 금융업이다. 정태영 사장은 “금융업이라는 본질이 바뀔 리 없고 그것에 충실했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다”고 강조한다.
정 사장이 나머지 고민의 2할을 디자인에 할애하는 이유도 그래서다. 디자인을 금융에 접목했을 때 상품이 더욱 힘을 얻는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는 디자인에도 수학적인 색채를 입힌다. 회사의 모든 디자인은 군더더기 없는 수학 공식을 그대로 닮았다. 회사 건물, 카드 디자인, 카드 글씨체 등도 그저 예쁘게 만든 것이 아니라 수학적 비례를 적용했다. 수학을 입힌 디자인으로 현대카드는 다른 회사와는 다른 독특한 정체성을 확립할 수 있었다.
▲ 현대카드 전용 서체 디자인 컨셉트 |
정 사장은 창의력도 수학에 기반을 둬야 한다고 주장한다. 엉뚱함과 산만함을 창의력으로 착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창의적인 생각을 하려면 논리력 훈련을 먼저 해야 한다. 그는 “논리가 뒷받침 되어야 현대카드만의 ‘정제된 창의성’을 구현할 수 있다”며 “이것을 어마어마하게 강조한다”고 말했다.
실제 업무도 숫자에 대한 얘기가 대부분이다. 마케팅 부서도 예외가 아니다. 논리학, 수학, 기하학에 기반해 업무를 처리한다. 회의에서 수학과 논리학을 적용해 논의하거나 광고에 사용될 색채를 수치로 환원해 조정하는 식이다.
정 사장은 “겉에서 보는 것과는 달리 우리 회사는 ‘로지컬 컴퍼니’(logical company)다”라고 강조한다.
■ 정태영 현대카드 사장은 서울대 불어불문학과를 거쳐 미국 MIT에서 경영대학원을 졸업했다. 현대종합상사 이사, 현대정공 상무, 현대모비스 전무를 지냈다.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의 둘째 사위로 현재 현대카드, 현대캐피탈, 현대커머셜 대표이사 사장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