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회사가 이익을 많이 낼수록 모회사의 손실이 커지는 회사가 있다. 2011년 세계적인 골프용품회사인 아큐시네트(타이틀리스트)를 인수한 휠라코리아 얘기다.
휠라코리아는 올 상반기 529억원의 영업이익을 냈다. ‘휠라’ 등 브랜드가 국내에서 고전하고 있지만, 여전히 500억원대의 영업이익을 유지하는 견고한 실적을 낸 것이다. 하지만 당기순이익을 보면 상황은 완전히 달라진다. 휠라코리아의 올 상반기 당기순손실은 612억원. 작년 한해 순이익(604억원) 넘는 ‘어닝쇼크’에 가깝다. 500억원대 영업이익을 내고도, 순이익에서 어닝쇼크를 기록한 이유는 뭘까?
어닝쇼크 진원지는 관계회사인 알렉산드리아 홀딩스(Alexandria Holdings, 이하 알렉산드리아)다. 알렉산드리아가 올 상반기 1187억원의 손실을 냈고, 휠라코리아는 이를 지분법손실로 반영했다. 휠라코리아의 영업이익을 알렉산드리아 홀딩스가 다 갉아먹은 셈이다.
알렉산드리아는 2011년 휠라코리아가 ‘타이틀리스트’ 등을 보유한 세계적 골프용품 회사 아큐시네트를 인수하기 위해 만든 중간 지주회사다. ‘휠라코리아-알렉산드리아-아큐시네트’로 지배구조가 이어진다. 결국 휠라코리아의 대규모 지분법 손실은 아큐시네트에서 시작됐다는 얘기가 된다.
(사진 = 타이틀리스트 페이스북) |
하지만 아큐시네트는 올 상반기 686억원 순이익(자료 한국투자증권)을 냈다. 2011년 휠라코리아가 인수한 이후 사상최대 실적이다. 휠라코리아 어닝쇼크 원인이 아큐시네트가 아니란 얘기다. 오히려 휠라코리아가 아큐시네트 덕분에 수백억원대의 지분법 이익을 내야 할 상황이다.
그렇다면 어닝쇼크의 진짜 원인은 뭘까? 휠라코리아 IR 관계자는 “아큐시네트의 실적이 좋고 기업가치가 커질수록, 휠라코리아는 더 많은 손실을 인식하게 되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자회사의 실적이 좋을수록 모회사의 실적은 나빠진다는 얘기다.
이 ‘희한한 구조’을 이해하기 위해선 복잡하게 꼬인 아큐시네트 인수방식부터 알아야 한다. 휠라코리아는 2011년 미래에셋PEF·산업은행 등과 함께 아큐시네트를 12억2500만달러에 인수했다. 휠라코리아는 알렉산드리아 주식에 1억달러를 직접 투자했고, 미래에셋PEF는 알렉산드리아가 발행한 신주인수권부사채(BW)·전환사채(CB)·전환상환우선주(RCPS)를 사는 방식으로 6억2천500만달러를 조달했다. 나머지 5억달러는 산업은행에서 빌렸다.
이중 BW·CB·RCPS가 휠라코리아 어닝쇼크의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BW·CB·RCPS는 만기때 상환의무가 있는 금액만큼 부채로 처리하고 있는데, 이 부채에서 대규모 평가손실이 발생했다. 평가손실이 발생하는 이유는 BW·CB·RCPS에 보통주로 전환할 수 있는 권리가 붙어있기 때문. 내년에 상장을 앞둔 알렉산드리아의 가치가 오를수록, 알렉산드리아 보통주로 전환할 수 있는 BW·CB·RCPS ‘몸값’이 뛰게 되는 것이다.
즉 아큐시네트 실적이 오르면 알렉산드리아 보통주로 전환할 수 있는 BW·CB·RCPS 가치가 오르게 되고, BW·CB·RCPS를 부채로 인식하고 있는 알렉산드리아의 부채평가손실이 늘어 모회사인 휠라코리아에 지분법 손실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나은채 한국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올 2분기 알렉산드리아 부채평가손실이 1000억원 이상 발생했다”고 분석했다. 여기에 알렉산드리아는 BW·CB·RCPS에 대한 이자비용으로 매년 5000만 달러를 쓰면서, 재무구조는 더욱 악화됐다.
다만 아큐시트네가 내년에 상장을 준비하고 있어, 내년부터 부채평가손실은 발생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회사 관계자는 “내년에 상장을 하게되면, 부채평가손실 등은 모두 없어지게 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