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국내 면세점 업계의 키워드는 단연 '사드'였습니다.
한국 내 사드 배치를 반대했던 중국이 보복을 가하면서 중국인 단체 관광객들이 순식간에 발길을 끊었는데요. 당연히 관광객을 대상으로 장사를 하는 면세점은 큰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 유커 사라졌는데 중국인 매출 확대
그런데 최근 의외(?)의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국내 대형 면세점 업체들이 지난해 글로벌 시장에서 좋은 성적을 거뒀다고 합니다. 롯데면세점과 신라면세점은 기존 세계 2위와 5위의 자리를 굳건하게 지켰고요. 신세계면세점의 경우 순위가 올라 12위를 차지했습니다.
면세점 업체들의 매출 중 중국인들이 차지하는 비중은 70%가량인데요. 그런데도 사드 보복에 따른 충격은 전혀 없어 보입니다. 다른 호재가 있었던 게 아닌가 싶기도 한데요.
특히 국내 면세점 매출 중 중국인들이 차지하는 비중은 되려 높아지기까지 했습니다. 실제로 국내 1위인 롯데면세점의 경우 지난 2016년 70%가량이던 중국인 매출 비중은 올해 1분기 73.5%까지 상승했습니다.
◇ 면세점 먹여 살리는 따이공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요.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면세점 업체들의 실적을 이끄는 건 바로 중국 따이공들입니다. 따이공(代工)이란 국내 면세점에서 물건을 구입해 중국에 다시 파는 보따리상을 지칭합니다.
따이공의 규모가 어느 정도기에 국내 대형 면세업체들을 '먹여 살리고' 있는 걸까요. 또 이들은 왜 우리나라에 와서 물건을 대량으로 사가는 걸까요.
국내 면세점 따이공들은 쉽게 말해 '한국 면세점 구매 대행업자' 정도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사드 보복이 있기 전 중국인들이 한국에 관광을 오는 가장 큰 이유는 '쇼핑' 때문이었는데요.
한국에 가기 어렵게 되니 '면세품 쇼핑'을 도와주는 중간 상인 역할을 하는 겁니다. 중국 내 화장품 등은 여전히 짝퉁이거나 가짜일 가능성이 높아 한국 면세점 제품을 선호하고 있는데요. 따이공들은 이런 점을 활용해 돈을 벌고 있습니다.
◇ 대부분 개인형…알바생까지 동원
사실 면세점에서 대리 구매를 하거나 재판매를 하는 건 불법입니다. 그런데 따이공들은 여러 우회 경로를 통해 장사를 하고 있어 현실적으로 이들을 막기는 어렵다고 합니다.
따이공은 주고 개개인으로 움직입니다. 기업형 따이공이 있긴 하지만 전체 매출 규모의 5% 안팎에 불과하고 대부분 '개인형'입니다. 이들은 여행객으로 가장해 국내에 장기간 머물면서 아르바이트를 대동하는 등의 방식으로 물건을 대량 구매합니다.
따이공들이 가장 선호하는 화장품을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중국 현지 가격은 우리나라보다 10% 정도 더 비싸다고 합니다. 따이공들은 면세점에서 기존 소매 가격의 60%가량으로 물건을 구입해 중국 내 소비자들에게 현지 판매 가격보다 20%가량 더 싸게 팔고 있습니다.
◇ 매출 늘었지만 수익성 악화
따이공들이 많이 늘어난 이유는 돈벌이가 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여행사들이 중국의 사드 보복 이후 따이공 투어 상품을 만든 영향도 있습니다.
국내 면세점 업체들도 따이공들을 외면할 수는 없습니다. 당장 지난해 매출 구조만 보더라도 외면은커녕 의존하고 있는 경향까지 보입니다.
올해 상반기 국내 전체 면세점 매출은 9조 1000억원 가량입니다. 지난해 같은 기간 6조 6000억원을 크게 뛰어넘으며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습니다. 국내 면세점 매출의 70~80%가 중국인이고, 이 중 80~90%가 따이공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들의 '힘'이 대단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만 면세점 업체들이 따이공들을 마냥 반기지만은 않습니다. 면세점들은 구매력이 큰 따이공을 유치하기 위해 물건을 조금 더 싸게 팔거나 이들을 알선한 여행사들에 수수료를 주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따이공 매출 비중이 높아질수록 수익성은 오히려 나빠집니다.
◇ 갈림길에 선 국내 면세점 업체
무엇보다 우려하는 것은 중국인들이 한국에 오지 않고 따이공을 통해 쇼핑만 하는 구조가 고착화하는 것입니다. 면세점의 수익성은 점점 더 안 좋아질 가능성이 크고 결국 장기적으로 국내 관광객도 줄어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반면 최근의 사드 보복 완화로 따이공이 점차 줄어들 것이라는 긍정적인 전망도 있습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여행사들이 따이공보다는 단체 관광객을 더 선호한다는 점이 꼽힙니다. 여행사 입장에서는 일반 단체 관광객들의 수수료가 더 높기 때문입니다.
박종대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지금은 따이공 협상력이 너무 강해 여행사에 떨어지는 수수료가 1~2%에 불과하다"며 "중국인 (일반) 관광객이 회복되면 전략적으로 여행사들이 따이공 패키지 판매를 줄일 것이고, 이 경우 따이공들은 한국면세점과 중국 판매가격 격차 축소로 마진이 줄면서 시장이 위축될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습니다.
국내 면세점 업체들은 갈림길에 서 있습니다. 따이공에 의존하는 지금의 구조가 고착화할지, 아니면 과거 호황을 다시 누리게 될지 관심 있게 지켜볼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