궐련형 전자담배는 연초형 일반 담배보다 해로울까
간단한 문제 같지만 적어도 한국에서는 아직 답이 내려지지 않은 문제입니다. 전자담배가 국내에 첫 출시될 때 담배회사들은 '기존 연초형 담배보다 유해물질을 90% 낮춘 제품'이라고 설명했습니다. 90%라면 획기적인 수치입니다. 수많은 애연가들이 연초를 버리고 전자담배로 갈아탔습니다.
하지만 지난 2018년 식품의약품안전처가 '궐련형 전자담배도 연초형 일반 담배만큼 유해하다'는 내용의 발표를 합니다. 논란의 시작입니다. 이후 BAT코리아와 필립모리스 등 궐련형 전자담배를 생산하는 업체의 반발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식약처는 해롭다, 담배회사는 괜찮다, 논란이 끊이지 않는 동안 소비자들은 혼란스럽기만 합니다.
◇ "전자담배, 연초보다 덜 위험한 건 팩트"
5일 서울 더 플라자 호텔에서 BAT코리아의 창립 30주년 기념간담회가 열렸습니다. 담배업계 첫 여성 CEO인 김은지 사장의 취임 100일을 기념하는 자리기도 했습니다.
행사는 학술적인 분위기로 꾸려졌습니다. 메인 행사는 궐련형 전자담배 위해성 과학연구 성과 발표였습니다. 지난해 영국에서 시작된 글로 장기 임상시험 연구의 초기 3개월 분석결과를 브리핑했습니다. 연구가 아직 완전히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중간 결과를 발표하는 것은 이례적입니다.
연구결과는 그동안 다양한 담배회사들이 발표한 내용과 크게 다르지는 않았습니다. 궐련형 전자담배가 연초보다 위험도가 크게 낮다는 결론입니다.
BAT는 이번 결과를 내놓기 위해 지난해부터 전 세계에서 12건의 연구를 진행했습니다. 영국과 일본 등 초기 연구결과가 확인된 곳에서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연초 담배에서 글로로 전환한 사람의 경우 니코틴 등 13개 유해물질 지표가 모두 감소했다고 합니다. 일부 지표의 감소수준은 아예 흡연을 중지하고 금연에 돌입한 피험자와 유사한 수준이라는 설명입니다.
영국에서 진행된 1년 장기 임상연구 결과, 일반 연초 담배에서 글로로 완전히 전환해 단독 사용한 흡연자들은 초기 3개월 만에 담배 관련 유해성분 노출이 현저히 저감됐다고 합니다. 글로의 에어로졸(aerosol : 증기) 유해 성분 수치는 일반 연초 담배 대비 90% 낮고 모든 평가 지표에서 독성물질 및 생물학적 반응지표가 현저히 개선됐다는 결과도 나왔습니다.
또 일반 담배에 노출됐을 때 피부와 벽지 샘플에 착색이 많이 늘어나는 반면, 궐련형 전자담배 노출 시 착색 정도가 일반 대기 노출 수준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고 합니다. 치아의 변색도 마찬가지라는 결과를 내놨습니다.
김은지 BAT코리아 사장은 "궐련형 전자담배에서 연초담배 대비 유해물질이 적다는 것은 그동안 각국에서 진행된 다양한 연구의 결과"라며 "올해 초 출시한 글로프로의 반응이 좋은 것도 소비자들이 유해성 저감 효과를 인식한 덕분이라는 분석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 업계 "식약처, 규제에 과학적 근거 담아달라"
비슷한 연구는 다른 궐련형 전자담배 제조업체에서도 진행되고 있습니다. 지난해 12월 일본에서는 필립모리스와 BAT, JTI 등 글로벌 담배업체 3사는 공동 기자간담회를 열고 "전자담배가 불에 태워 연소시키는 일반 담배와 비교해 유해성이 현저히 줄어든 것은 명백한 사실"이라는 주장도 펼쳤습니다.
담배업계가 경쟁사와 손을 잡으면서까지 한목소리를 내고, 비슷한 연구를 동시다발적으로 진행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솔직하게 말하자면 담배회사가 최종적으로 바라는 것은 규제 완화입니다. 일반 연초든 궐련형 전자담배든 피우지 않는 것이 몸에 가장 좋다는 것은 명확합니다. 이 때문에 담배회사의 주장은 얼핏 말장난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담배의 중독성을 생각한다면 무시할 수만은 없는 주장입니다. 끊을 수 없다면 덜 위험한 것을 선택하는 게 합리적입니다.
정부는 2018년 식약처의 발표를 근거로 궐련형 전자담배에 대해서도 일반 연초와 동일한 수준의 규제를 펼치는 중입니다. 하지만 식약처의 연구결과에서도 궐련형 전자담배가 일반 담배보다 유해물질이 적습니다. 세계보건기구(WHO)에서 줄이라고 권고한 9개 성분 모두 일반 담배보다 적었습니다. 벤조피렌과 같은 발암 물질은 3.3% 수준이며, 포름알데히드와 아세트알데히드 등은 20~28% 정도로 낮았습니다.
문제는 타르 성분입니다. '타르'라고 불리는 특정 단일 물질은 없습니다. 타르는 담배 연기에서 니코틴과 수분의 질량을 뺀 후 남아 있는 고체 및 액체의 총 잔여물을 말합니다. 다양한 물질이 섞여 있는 상태입니다. 궐련형 전자담배에서는 평균 4.8~9.3㎎이 나왔다고 합니다. 일반 담배는 0.1~8.0㎎ 수준입니다. 이에 대해 담배업계는 연구 절차에 문제가 있다는 입장입니다.
일반 연초담배는 ISO(International Organization for Standardization)라고 불리는 공식적인 타르 측정법이 있습니다. 하지만 궐련형 전자담배에 ISO방식을 그대로 적용할 경우 증기 속에 수분을 제대로 포집하기 어렵다는 것이 담배회사의 주장입니다. 게다가 식약처가 실험 과정을 공개하지 않습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담배회사는 각각 따로 연구를 통해 유해물질 저감에 대한 증거를 내놓으며 당국의 규제 완화를 촉구하는 것입니다.
최근 미국 식품의약국(FDA)최근 필립모리스의 궐련형 전자담배 '아이코스'의 인체 유해물질 노출 감소가 공중보건을 향상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며 '위험저감 담배제품(Modified Risk Tobacco Product)'으로 마케팅을 펼치는 것을 인가했습니다. 미국의 소식이 알려진 뒤 국내에서도 궐련형 전자담배에 대해 광고와 세제 등에 대한 규제완화를 기대하는 목소리가 더욱 커지고 있습니다.
이날 발표에 나선 제임스 머피(James Murphy) BAT 위해저감 제품연구 총괄은 "전자담배 논란은 세계 각국에서 정치적으로 진행 중"이라며 "하지만 궐련형 전자담배의 유해성 저감은 과학적으로 확인된 사실"이라고 말했습니다. 배윤석 BAT 북아시아 법무대외협력 부사장도 "과학적인 근거에 입각한 규제가 필요하다"며 "경쟁사와도 필요한 논의를 진행하고 있으며 각국 정부와도 꾸준히 이야기를 진행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