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달부터 소매점의 담배 광고 외부 노출이 금지된다. 이에 담배의 주요 유통 채널인 편의점업계의 반발이 거세다. 담배 업계도 답답함을 호소하고 있다. 업계는 담배라는 상품과 편의점이라는 판매 채널의 특성에 대한 이해 없이, 명분만 앞세운 탁상행정이라는 지적이다. 실효성이 없다는 의견도 많다.
유리창에 시트지 바르는 편의점
최근 유리창을 불투명 시트지로 감싸는 편의점이 늘어나고 있다. 다음달부터 편의점 내부에 설치된 담배 광고를 외부에 노출시킬 수 없게 돼서다. 보건복지부는 이를 어길 시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기로 했다. 이 규제는 10년 전 제정됐지만, 실효성 문제로 실제 시행되지는 않아 온 '낡은 규제'다.
보건복지부는 과거 업계의 의견을 받아들여 규제 시행을 연기했지만 더는 늦출 수 없다는 입장이다. 성인 남성의 흡연율이 위험 수위에 있다는 이유에서다. 실제로 질병관리청의 '2020 지역사회건강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성인 남성의 흡연율은 36.6%였다. 2016년 41.9%에 비해 5.3%포인트 떨어졌다. 하지만 이는 국민 평균 흡연율 19.8%에 비해서는 아직도 크게 높다. 수치상으로는 남성 흡연율을 억제하기 위한 정책 도입이 필요하다.
이러한 취지와 달리 편의점 업계에서는 이번 규제가 현실을 무시한 탁상행정이라는 비판이 더 많다. 편의점은 대부분 통유리 구조를 채택하고 있다. 매장 내부를 노출시켜 기존 유통 채널과 차별화시키려는 의도다. 이 구조가 표준으로 자리잡은 상황에서 이번 규제를 적용하면 매장 구조를 바꿔야 한다. 대부분의 편의점 점포는 담배를 취급하고 있다. 이에 이번 규제가 일부 점포를 넘어 업계 전반에 혼란을 가져올 것이라는 설명이다.
전면 통유리 구조는 24시간 운영하는 편의점 특성상 보안 효과도 있다. 돌발 상황이 발생할 경우 이를 외부에 신속히 알릴 수 있어서다. 서울 시내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는 한 점주는 "9시만 넘어도 취객 손님이 자주 방문해 아르바이트생이 두려움을 호소하는 경우가 제법 있다"며 "내부를 완전히 가려버리면 근무자가 불안감을 더 크게 느낄 수 있다. 업계 현실에 대한 고려가 없는 규제 같다"고 밝혔다.
담배 광고 노출이 금지되면 영세 점포의 수익성이 저하될 것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현재 담배 회사는 편의점주들에게 일정 금액 광고비를 지급한다. 월 평균 금액은 20만~30만원대로 알려졌다. 하지만 시트지 등으로 광고를 가린다면 광고비를 받을 수 없다. 이에 담배 광고비의 매출 내 비중이 낮은 일부 점포에서는 유리창에 시트지를 바르는 대신 담배 광고를 철거하는 사례도 속출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업계 관계자는 "대로변에서 벗어난 소형 편의점일수록 담배와 담배 광고비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이번 규제가 시행되면 영세 규모 편의점이 더 큰 피해를 입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담배 업계 "정책 실효성 의문"
담배 업계에서도 이번 규제 시행에 아쉽다는 반응이 많다. 편의점은 담배업계에게 사실상 유일한 대규모 마케팅 창구다. 현재 담배 광고는 철저하게 규제되고 있다. 온라인 포털과 방송 등에서는 광고를 진행할 수 없다. 지면 매체에서도 남성 독자의 비중이 높은 월간지를 제외한 일간지, 주간지 등에서는 담배 광고가 금지돼 있다. 담배 업계 입장에서는 이번 규제가 시행되면 마케팅 활로가 막히게 된다.
당초 담배 업계는 이번 규제 시행이 다시 한 번 유예될 것으로 기대했다. 코로나19로 타격을 입은 소매점 차원에서의 저항이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실제로 정부는 지난해 담배 광고 외부 노출 금지 규제를 추진하려했지만 소매점주들의 반론을 받아들어 1년의 유예기간을 적용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소매점들이 과거와 달리 규제를 수용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에 일단 정책 도입을 받아들인 후, 추후 문제점을 지적하는 쪽으로 대응 계획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업계 관계자는 "규제 시행이 코앞으로 다가와 마땅한 대응책이 없다. 상황을 지켜본 후 어떻게 움직일지 결정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이번 규제가 현실성·실효성 없는 규제라는 비판은 담배 업계에서도 나온다. 담배는 대표적인 '목적 구매' 상품이다. 담배를 구매하려는 소비자가 광고를 보고 다른 제품을 고를 수는 있다. 하지만 담배 구매 의사가 없는 소비자는 광고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비흡연자가 담배 광고를 보고 흡연을 결심하는 경우는 더욱 드물다. 광고가 보이지 않는다고 흡연자가 담배를 끊을 가능성도 낮다. 담배 광고를 노출시키지 않는 것만으로 흡연율 저하를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이야기다.
이중 규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담배 가격과 과세 등 가격 측면의 규제가 광고·마케팅 등 비가격적 규제와 함께 진행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보건복지부는 올 초 발표된 '제5차 국민건강증진종합계획'에 담배 가격을 점진적으로 8000원까지 인상한다는 계획을 포함시켰다. 하지만 비판 여론이 거세지자 이를 번복했다.
전자담배에 붙는 세금을 둘러싼 논란도 지속되고 있다. 액상형 전자담배는 지난해 부로 이미 세금이 인상됐다. 당시 업계는 다각도에서 액상형 전자담배의 유해성을 검증해야 한다며 항의했다. 하지만 정부는 자체 연구용역 결과 등을 기반으로 이를 묵살했다. 증세는 가격 인상으로 이어졌다. 결국 액상형 전자담배 시장은 급속도로 위축됐다. 최근에는 시장 점유율을 높이고 있는 가향 담배에 대한 규제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업계에서는 금연 정책이 업계와의 소통을 통해 만들어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무조건 금연만을 강조하는 정책 기조에서는 제조·유통업계만 일방적 피해를 입게 된다는 의견이다. 특히 업계가 전자담배 등 위험성 저감 제품을 지속적으로 출시하고 있음에도, 정부는 이를 같은 '담배'로 보고 규제만을 강조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왔다. 지금까지와 같은 방식의 담배 규제가 지속된다면 정책의 진정성 및 실효성에 대한 의문은 끊임없이 제기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업계 관계자는 "정부의 금연 정책 기조는 담배의 유해성을 앞세워 업계의 입을 막고, 일방적인 희생을 요구하는 방식이 대부분이었다. 정책 내용도 단순히 '금연'을 강조할 뿐 담배의 유해성을 낮추고 금연을 유도하는 측면에서는 부족한 점이 많다"며 "업계·소비자와 충분한 소통 없이 마련되는 정책들은 반발과 비아냥만 살 뿐 실제 효과를 내기 어렵다. 금연 정책에 대해 전반적으로 재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