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T로스만스가 자사 궐련형 전자담배 '글로'의 위해저감성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지난 2020년에 이어 두 번째 위해저감성 발표다. 임상실험 기간도 3개월에서 1년으로 늘렸다. 연초 담배에서 '글로'로 전환했을 때 폐·심장 등 질환의 위험이 대폭 감소한다는 것이 요지다. 앞으로 BAT로스만스는 궐련형 전자담배 등 비연소 제품을 중심으로 사업을 확장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관건은 정부와의 의견차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지난 2018년 '궐련형 전자담배도 연초형 일반 담배만큼 유해하다'는 내용의 발표를 했다. 정부는 여전히 이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이 때문에 연초 담배와 궐련형 전자담배의 규제 수준도 동일하다. BAT 등 담배업계의 최종 목표는 이 '규제' 완화다. 다만 국민의 건강과 직결된 문제인 만큼 관련 논의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금연자 '수준' 개선"
"소비자들에게 비연소 제품의 유해 물질 저감 효과를 알려 소비자 건강을 해치지 않는 미래 사업을 위해 노력하겠다. 일반 연초 담배와 구분 없는 일률적 규제가 아닌 과학적 근거에 입각한 합리적 규제가 필요하다. 앞으로 규제기관과 꾸준히 소통을 강화해 나가겠다"
김은지 BAT로스만스 대표이사는 11일 '글로 위해저감 1년 임상 연구 결과 발표' 기자간담회에서 이같이 말했다. 앞서 BAT로스만스는 23~55세 성인 500명을 △비흡연자 △금연자 △연초 지속 흡연자 △연초에서 글로로 전환한 그룹으로 나눠 1년간 임상 연구를 진행했다. BAT는 이들의 주요 생체지표와 특정 질병의 발병과 연관이 있는 잠재 위험 지표를 매달 검사했다. 연구 결과는 의학학술지 '인터널 이머전시 메디신'(Internal and Emergency Medicine)에 게재됐다.
연초 담배에서 '글로'로 전환할 경우 여러 건강 지표가 개선됐다는 것이 BAT로스만스의 주장이다. 이날 BTA 측은 화학·생물학 검사를 한 결과 글로 흡입 시 나오는 독성이 연초 연기보다 90~95% 낮았다고 밝혔다. 김 대표는 "궐련형 전자담배를 피운 집단이 연초 담배를 끊은 집단과 비슷한 수준의 독성물질 노출 수준을 보였다"며 "흡연 관련 질병을 알 수 있는 염증성 지표와 고밀도 콜레스테롤 수치, 산화 스트레스 지표 등이 감소했다"고 강조했다.
이날 BAT로스만스는 이 같은 연구 결과를 마케팅에 적극적으로 활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 대표는 "글로가 '위해 저감' 제품임을 소비자들이 알 수 있도록 할 것"이라며 "사용할 수 있는 내용은 광고 등에 반영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어 "소비자에게 어떻게 전달할지 고민 중"이라며 "최근 글로의 점유율이 높아진 것도 위해 저감 부분이 알려진 영향이 크다고 본다"고 말했다.
'비연소' 담배 중심
이날 BAT로스만스는 비연소 담배를 중심 사업 전환을 본격화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국내 궐련형 전자담배 시장은 KT&G의 '릴' 제품이 1위를 수성 중이다. 2분기 기준 47%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2위는 점유율 44%의 필립모리스의 아이코스다. 반면 BAT로스만스의 글로는 3위에 그친다. 점유율 12%에 그치는 수준이다. 업계에서는 BAT로스만스가 점유율 반등을 꾀하기 위해 이번 연구 결과를 공개한 것으로도 본다. BAT는 글로 출시 당시부터 '위해저감성'을 강조해 왔다.
실제로 시장의 대세는 ‘전자담배’다. 국내 담배시장에서 전자담배가 차지하는 비중도 계속 증가세다. 업계에 따르면 지난 2017년 약 2.2%에 불과했지만 지난해 12.4%까지 치솟았다. 연초 담배 판매량은 계속 감소하고 있지만 궐련형 전자담배 판매는 늘고 있다.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2021년 담배 시장 동향'에 따르면 연초 담배 판매량은 31억5000만갑으로 전년 대비 2.0% 감소했다. 전자담배 판매량은 4억4000만갑으로 전년 대비 17.1% 증가했다.
궐련형 전자담배 점유율 확대를 노리는 업계의 경쟁도 더 치열해질 전망이다. KT&G는 하반기 '릴'의 신제품인 '솔리드 2.0'을 선보일 가능성이 높다. 한국 시장에서 궐련형 전자담배 사업을 철수했던 JTI코리아도 하반기 신제품으로 재도전할지도 관심이다. 필립모리스는 아이코스4로 불리는 '아이코스 일루마' 출시를 공식화했다. BAT로스만스도 신제품 출시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이날 김 대표는 씹는 담배, 머금는 담배 등 비연소 담배 제품에 대한 확대 계획을 내비쳤다.
'실험' 믿을 수 있나
다만 업계의 기대가 순탄히 이뤄질지는 미지수다. 정부가 여전히 궐련형 전자담배의 유해성을 강조하고 있어서다. 근거는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의 지난 2018년 연구 결과다. 당시 식약처는 '궐련형 전자담배도 연초형 일반 담배만큼 유해하다'는 내용의 발표를 했다. 연초 담배보다도 많은 타르 성분이 검출됐다는 것이 주 내용이었다. 타르는 담배 연기에서 니코틴과 수분의 질량을 뺀 후 남아 있는 고체 및 액체의 총 잔여물을 말한다. 니코틴 함유량도 연초 담배와 유사하다고 봤다.
이를 두고 담배 업체들이 비판이 거셌다. 일반 연초담배는 'ISO(International Organization for Standardization)'라고 불리는 공식적인 타르 측정법이 있다. 하지만 궐련형 전자담배에 기존 방식을 그대로 적용하면 증기 속에 수분을 제대로 측정하기 어렵다는 것이 담배 회사들의 주장이었다. 오히려 업계는 객관적이지 않은 실험으로 소비자의 전자담배 전환을 막고 있다고 항변했다. 이를 두고 논란은 한국 필립모리스와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소송전으로 비화되기도 했다.
정부가 빠르게 변하는 담배 시장에 속도감 있게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정부는 2018년 발표 이후 별다른 시험 결과를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전자담배의 위해 저감성을 두고 혼란스러워하는 소비자도 늘고 있다. 정부가 '딜레마'에 빠졌다는 분석도 많다. 궐련형 전자담배를 위해 저감성을 인정하면 여러 문제가 생긴다. 자칫하면 전자담배가 안전하다는 인식을 심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담배업체들의 실험 결과를 무시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담배업계의 한 관계자는 "전자담배의 위해 저감성 논란은 세계 각국에서도 정치적인 문제다. 국민의 건강과 복지가 걸려 있는 만큼 규제 해제 등의 논의는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한다"면서도 "다만 궐련형 전자담배의 유해성 저감에 대한 과학적 데이터가 쌓이고 있다. 축적된 근거에 입각해 논의가 이뤄지기 시작하면 정부 차원에서도 긍정적 변화가 나타날 것으로 기대한다"고 내다봤다.
다만 보건복지부 측은 이번 BAT의 실험 결과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제3자가 아닌 담배 회사의 자체적 일방적 연구는 객관성을 담보하기 힘들다"며 "전자담배는 일반 연초 담배와 다른 유해 성분이 많이 들어간다. 현재는 이 유해 성분 보고에 대한 법적 기준도 마련되지 않은 상태"라고 했다. 이어 "궐련형 전자담배에 대한 혼란이 이어지는 것을 알고 있다"며 "내년 쯤 식약처 등 관련 부서에서 관련한 연구를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