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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 스토리]배라의 대항마였는데…'나뚜루'의 예견된 몰락

  • 2026.06.09(화) 07:20

배스킨라빈스에 맞선 롯데의 야심작
잃어버린 정체성으로 흔들린 브랜드
오프라인 전문점 철수, 제품만 남았다

그래픽=비즈워치


2000년대 초반. 대한민국에 웰빙 바람이 불면서 '고급 녹차 아이스크림'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던 브랜드가 있었습니다. 바로 롯데웰푸드(구 롯데제과)가 운영해 온 아이스크림 브랜드 '나뚜루(Natuur)'입니다. 한때 200개가 넘는 매장을 운영하며 배스킨라빈스와 경쟁했던 나뚜루는 찬란했던 과거를 뒤로한 채 28년 만에 오프라인 직영 매장을 전면 철수를 결정했는데요. 나뚜루가 걸어온 길과 그 뒤에는 뼈아픈 역사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토종 자연주의 아이스크림

나뚜루의 역사는 1998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1998년 6월 첫 직영점 문을 연 나뚜루는 이듬해인 1999년 7월부터 본격적인 가맹 사업에 뛰어들었습니다. 당시 국내 프리미엄 아이스크림 시장은 미국의 하겐다즈와 배스킨라빈스 등 외국계 브랜드가 선점하고 있었습니다. 롯데제과는 이에 맞서 "외국계 브랜드를 뛰어넘는 독보적인 토종 브랜드를 만들겠다"라는 포부와 함께 나뚜루를 시장에 론칭했습니다.

나뚜루 아이스크림 제품들/사진=롯데웰푸드

나뚜루가 내세운 핵심 가치는 '자연주의'였습니다. 브랜드명 역시 자연(Nature)을 연상시키는 의미를 담았습니다. 초창기 나뚜루의 성공을 이끈 주역은 녹차 아이스크림이었는데요. 당시로서는 아이스크림과 어울리지 않을 것 같았던 '녹차'를 과감하게 도입한 전략은 신의 한 수가 됐습니다. 웰빙 트렌드와 맞물려 품질이 우수한 제주산 녹차를 활용한 나뚜루의 녹차 아이스크림은 소비자들의 호응을 얻었습니다.

특유의 부드럽고 고급스러운 맛을 살린 녹차 아이스크림은 입소문을 탔고 "녹차 아이스크림은 나뚜루"라는 인식이 형성되면서 매장도 빠르게 늘어났습니다. 나뚜루는 전국의 주요 상권에 로드숍 매장을 빠르게 늘려나가면서 전성기인 2012년에는 전국 매장이 220여 개에 달했습니다.

애매해진 브랜드

하지만 성공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하겐다즈와 비교하면 프리미엄 이미지가 부족했고, 배스킨라빈스와 비교하면 대중성과 트렌디함이 약했습니다. 경쟁사인 배스킨라빈스가 매달 새로운 맛을 출시하고 적극적인 마케팅을 펼치며 매장을 '트렌디한 문화 공간'으로 진화시키는 동안 나뚜루는 여전히 '녹차가 맛있는 집'이라는 과거의 명성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가장 결정적인 패인은 그룹 내에서 사업권이 오가며 컨트롤타워가 계속 바뀐 것이 컸습니다. 제조업 기반인 롯데제과는 외식 프랜차이즈 관리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2011년 롯데리아, 엔제리너스 등을 운영하는 외식 전문 계열사 '롯데GRS'로 나뚜루를 넘겼습니다. 

롯데GRS는 나뚜루의 고유 자산이었던 '자연주의' 대신 '대중성'을 선택했는데요. 브랜드명을 '나뚜루팝'으로 변경했고 매장은 핫핑크와 노란색 등 강렬한 색상으로 꾸몄습니다. 아이돌 그룹 인피니트를 광고 모델로 기용하며 10대 소비자 공략에도 나섰습니다.

나뚜루팝 매장/사진=롯데웰푸드

하지만 결과는 기대에 못 미쳤습니다. 프리미엄 아이스크림의 주요 소비층은 성인이었지만, 가격 부담이 있는 프리미엄 아이스크림을 10대 중심으로 포지셔닝한 전략이 시장과 맞지 않았던 것이죠.

더 큰 문제는 차별화에 실패한 채 경쟁사를 따라가는 모습까지 보였다는 점인데요. 나뚜루팝은 배스킨라빈스와 유사한 제품명을 잇따라 선보이며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습니다. 배스킨라빈스의 대표 메뉴인 '아몬드 봉봉'과 유사한 '아몬드 봉봉쇼'를 비롯해 '베리베리 스트로베리'와 비슷한 '요거요거 블루베리' 등 이름이 비슷한 제품들이 등장했습니다.

아이스크림 케이크 역시 여러 가지 맛을 한 번에 즐길 수 있는 배스킨라빈스의 '와츄원'과 유사한 형태의 제품을 출시하며 독자적인 브랜드 색깔이 희미해졌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나뚜루가 자신만의 정체성을 강화하기보다 경쟁사의 성공 공식을 뒤쫓는 데 집중하면서 브랜드 존재감이 더욱 약해진 셈이죠.

결국 매장 수는 급감하기 시작했습니다. 2016년에는 매장 수가 100개 아래로 떨어졌고 폐점률도 20%를 웃돌았습니다. 결국 제품 포트폴리오 확대와 브랜드 경험 강화 모두에서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했고 소비자 기억 속에서도 서서히 잊혀지며 포지셔닝이 애매해졌습니다.

다시 돌아왔지만

결국 나뚜루는 론칭 20주년을 맞은 2018년 6월. 친정인 롯데웰푸드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7년 만에 다시 '자연주의' 정체성을 회복한 나뚜루는 오프라인 매장을 과감히 정리하는 동시에 브랜드 재건을 위해 다양한 실험적 리뉴얼을 단행했습니다.

2021년에는 서울 마곡에 디저트 카페 형태의 '나뚜루 시그니처'를 선보였는데요. 아이스크림뿐 아니라 크로플, 아포가토 등을 판매하며 카페형 브랜드로 변신을 시도했습니다. 같은 해 신촌에는 맞춤형 아이스크림 케이크 전문 매장인 '마이케이크하우스 바이 나뚜루'를 열며 MZ세대 공략에도 나섰습니다.

그러나 이런 노력도 이미 기울어진 판세를 바꾸기엔 역부족이었습니다. 2018년 77곳이던 매장은 2019년 57개로 줄어들었고, 급기야 2022년 9월에는 나뚜루의 상징이자 최장수 매장이었던 '신촌점'이 매출 부진 끝에 17년 만에 문을 닫았습니다.

나뚜루 가맹점 수는 2022년 34개에서 2023년 25개, 2024년 19개로 매년 눈에 띄게 줄었습니다. 그리고 지난 3월. 롯데웰푸드는 마지막 직영 매장마저 철수했습니다. 현재 남아 있는 가맹점은 전국 8곳 수준입니다. 롯데웰푸드는 신규 가맹 계약을 중단하고 기존 매장 역시 계약 종료에 맞춰 순차적으로 정리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사실상 아이스크림 전문점 사업의 막을 내린 셈입니다.

나뚜루 신촌 마이케이크하우스 바이 나뚜루 매장 전경/사진=롯데웰푸드

이 같은 결정의 배경에는 롯데웰푸드의 수익성 문제도 자리하고 있습니다. 롯데웰푸드는 지난해 매출 4조2000억원으로 역대 최대 실적을 기록했지만 영업이익은 1095억원으로 전년 대비 30% 이상 감소했습니다. 이후 대표이사 교체와 2년 연속 희망퇴직 등 사업 구조 재편에 속도를 내고 있습니다. 업계에서는 만성 적자 상태였던 나뚜루 매장 사업이 구조조정 과정에서 우선 정리 대상으로 꼽힌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물론 나뚜루 브랜드 자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롯데웰푸드 관계자는 "브랜드를 종료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파인트, 바(Bar) 등 완제품 중심으로 마트와 편의점, 이커머스 채널에서 판매를 이어갈 예정"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다만 의미는 적지 않습니다. 소비자와 직접 만나는 오프라인 접점을 포기하고 제조·유통 중심 사업으로 무게중심을 옮긴 것이기 때문입니다. 한때 배스킨라빈스와 매장 경쟁을 벌이던 브랜드가 이제는 리테일 채널에서 판매되는 제품 브랜드로 역할이 축소된 셈입니다.

나뚜루의 28년은 국내 프리미엄 아이스크림 시장의 변화와 부침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자연주의'라는 차별화된 가치로 출발해 소비자들의 사랑을 받았지만 브랜드 정체성이 흔들리면서 경쟁력을 잃었습니다. 뒤늦게 돌아온 자리에는 크게 변한 시장만 남아있었습니다.

경영 전략의 실패로 오프라인 무대에서 사실상 퇴장하게 된 나뚜루가 앞으로 리테일 시장에서 하겐다즈 등 글로벌 프리미엄 브랜드와 경쟁하며 '토종 프리미엄 아이스크림'의 명맥을 이어갈 수 있을지 주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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