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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제' 앞둔 라이브커머스…"나 떨고 있니?"

  • 2021.04.07(수) 09:12

시장 급성장…소비자 피해 대책 마련엔 공감
홈쇼핑식 규제는 반대…산업 육성·발전 고려해야

라이브커머스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자 이에 맞춰 정부의 규제 움직임도 본격화되고 있다. 아직까지 구체적인 법적 기준이 마련되지 않은 만큼 허위‧과장 광고 등에 따른 소비자 피해가 우려돼서다. 업계에서는 일단 큰 방향에서의 규제에 대해서는 동의하고 있다. 다만 기존처럼 규제 일변도에 치중된 것이 아닌 장기적인 관점에서 산업의 성장을 지원하는 방향으로 이뤄지기를 바라고 있다.

◇ 성장할 수록 커지는 '그늘'

라이브커머스 산업에 대한 규제 논의는 국회를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 최근 국회입법조사처는 보고서를 통해 현재의 라이브커머스 산업을 '규제와 산업 진흥 사이에서 고민이 되는 시점'이라고 분석했다. 입법 움직임도 있다. 양정숙 무소속 의원은 지난 2월 '전자상거래 등에서 소비자 보호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법안에는 통신판매중개업자가 통신판매 영상을 녹화·보존토록 하고 있다. 이 영상을 판매자와 소비자가 열람·보존할 수 있도록 해 신뢰도를 높이겠다는 취지다.

현재 라이브커머스 시장은 빠르게 성장 중이다. 교보증권은 지난해 4000억 원 규모였던 라이브커머스 시장이 오는 2023년 10조 원 수준으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곧 시장의 성장 속도와 비례해 향후 소비자들의 입을 피해 규모도 커질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로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최근 5개 라이브커머스 플랫폼의 120개 방송을 모니터링한 결과, 총 30개 방송이 허위‧과장 광고에 해당될 소지가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앞으로 더 많은 소비자들이 유입되면 피해의 규모와 범위는 더욱 커질 수 있다.

하지만 라이브커머스 시장을 제어할 수 있는 규제는 아직 없다. 현행법에 따르면 라이브커머스 사업자는 '통신중개업자'다. 통신중개업자는 판매업자에 대한 정보 제공 의무만을 가지고 있다. 일종의 중개상 역할이다. 콘텐츠 신고에 대한 규정도 없다. 홈쇼핑 등은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심의를 받아야 한다. 반면, 라이브커머스는 정보통신 심의만 받아도 된다. 제재도 폭력성과 혐오감 등 제한된 사례에만 적용되고 있다. 라이브커머스에 따른 피해가 발생할 경우 제도적 지원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인 셈이다.

김여라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현재 상황에서 라이브커머스에 따른 소비자 피해가 발생할 경우 책임 소재가 명확하지 않은 문제가 있는 것은 물론, 표현의 제약도 없어 허위‧과장 광고의 위험이 있다"며 "무분별한 상업적 콘텐츠로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 규제 필요성에는 공감

업계에서는 라이브커머스 규제에 대해 기본적으로는 찬성하는 입장이다. 경쟁이 과열될 경우 지난 2015년 있었던 '가짜 백수오 사태'와 같은 사건이 재발할 수 있어서다. 당시 식약처는 TV홈쇼핑에서 인기를 끌던 백수오 제품을 전수조사했다. 조사 결과 대부분 제품에 백수오가 아닌 부작용이 우려되는 이엽우피소가 함유된 것으로 밝혀졌다. TV홈쇼핑업계에 대한 소비자 신뢰도는 땅에 떨어졌다. 소비자들의 배신감은 생각보다 컸다. 이후 TV홈쇼핑업계에 대한 신뢰는 정부의 규제와 업계의 오랜 자정 노력을 거친 후에야 간신히 회복됐다.

업계에서는 라이브커머스에서도 과거 백수오 사태와 같은 사례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시장의 성장 속도가 눈에 띄게 빠른만큼 경쟁이 과열될 것은 분명하다. 과열 경쟁 이면에는 반드시 부정한 일들이 일어난다. 라이브커머스는 새롭게 주목받는 신생 플랫폼이다. 신생 플랫폼이 오랜기간 성장하기 위해서는 신뢰도 확보가 중요하다. 게다가 최근에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소비자의 요구 기준이 매우 높다. 제2의 백수오 사태가 발생한다면 라이브커머스가 입을 피해는 더욱 클 것이라는 예상이다.

이에 따라 업계에서는 ▲ 방송 녹화 보존 및 소비자 열람 허용 ▲ 부적절한 표현 및 행동에 대한 신고 기능 도입 ▲ 라이브커머스를 통해 판매되는 상품에 대한 책임 명확화 등을 제시했다. 특히 녹화는 반드시 법으로 규정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수 방송이 여러 플랫폼에서 진행돼 실시간 모니터링이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상품 판매 책임은 판매자보다 플랫폼이 져야 할 것으로 봤다. 셀러가 책임을 지는 것보다 플랫폼이 직접 나서 책임을 진다면 소비자 신뢰도를 높일 수 있다는 설명이다.

업계 관계자는 "최근 라이브커머스 방송을 살펴보면 백수오 사태 직전과 비슷한 수준으로 경쟁이 과열되고 있어 조만간 큰 사건이 일어날 것 같다는 불안감이 있는 게 사실"이라면서 "이를 방지하기 위해 업계는 물론 정부 차원에서도 적정선의 규제 방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 '홈쇼핑처럼'은 곤란…산업 성장성 살려야

다만 업계가 우려하는 부분은 규제의 강도다. 업계에서는 국내 라이브커머스에 대한 규제가 '원조'인 TV홈쇼핑과 유사한 방향으로 마련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TV홈쇼핑은 사전 편성 심의 등 엄격한 기준 아래 운영되고 있다. 하지만 라이브커머스 산업은 SNS, 플랫폼을 통한 '게릴라성 쌍방향 방송'을 통해 소비자의 주목을 끌며 성장해 왔다. 업계에서는 만일 플랫폼간 차이점을 고려하지 않고 TV홈쇼핑 규제를 라이브커머스에 적용한다면 산업 경쟁력이 상실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성장 촉진을 위한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라이브커머스는 TV홈쇼핑, T커머스 등과 달리 이용할 수 있는 플랫폼과 아이디어만 있으면 운영할 수 있다. 때문에 한류 콘텐츠 등과 결합해 해외 시장을 공략하는 데 효율적이라는 분석이다. 이 과정에서 중소기업, 소상공인도 수월하게 해외 판로를 개척할 수 있다는 점이 장점이다. 발전 가능성이 큰 산업인 만큼 필요한 규제는 하되, 강점을 살릴 수 있는 지원이 필요하다는 것이 업계의 시각이다.

라이브커머스 선진국인 중국의 사례를 살펴보면 이같은 의견에 힘이 실린다. 2016년 태동한 중국 라이브커머스 시장은 지난해 기준 9610억 위안(약 164조 6500억 원) 규모로 성장했다. 초기 중국의 라이브커머스는 타오바오, 징둥 등 이커머스 플랫폼의 신사업이었다. 시장이 성장하며 소비자 피해가 발생하는 것은 현재 국내와 비슷했다. 하지만 중국 정부는 규제를 마련하는 한편 농산물과 같이 다양한 상품 판매를 허용하는 등 지원 정책을 함께 펼쳤다. 

정부의 정책 지원하에 시장이 안정기에 접어들자, 중국의 라이브커머스 영역도 넓어졌다. 최근 중국의 라이브커머스는 틱톡, 위챗 등 소셜 플랫폼으로 확장되고 있다. 왕홍(인플루언서)를 통한 마케팅도 힘을 얻었다. 지난해 하반기 중국 라이브커머스 총상품 판매액 기준 100위 권 내 왕홍의 총 매출액은 1130억 위안(약 19조 4000억 원)에 달했다. 왕홍 판매 상품이 성과를 내자 이번에는 기업인과 농민이 직접 영상에 등장했다. 소상공인이 플랫폼과의 협업 브랜드를 론칭하기도 했다. 라이브커머스 규제를 준비 중인 우리나라가 참고해야 할 사례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라이브커머스는 플랫폼은 물론 소상공인 등의 성장을 함께 불러올 수 있는 기회인 만큼 초기 시장에서 피해가 발생하더라도 자율규제 측면에서 접근해야 한다"며 "기성 커머스 플랫폼과 같은 선상에 놓고 규제할 경우 산업 성장을 가로막을 수 있다. 신뢰도를 높이는 방향의 규제는 철저히 적용하되 확장성과 신속성 등 산업 핵심 경쟁력에는 넓은 기준을 적용해 산업 육성에 힘써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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