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심과 오뚜기, 삼양식품, 팔도 등 이른바 '라면 빅 4'가 일제히 주요 제품 가격을 인하했지만 소비자들이 느끼는 체감 물가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하림과 풀무원 등 최근 인기가 높은 '건면'을 내세운 브랜드들은 가격 인하에 동참하지 않은 데다 가격을 내린 기업들도 핵심 제품은 제외하는 등 '꼼수'를 썼다는 평가다.
가격 내렸다더니…'진짜'는 다 뺐다
갑작스런 라면값 릴레이 인하의 시작은 정부였다. 지난당 18일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한 방송에 나와 "2022년 9~10월에 많이 올렸는데, 지금은 국제 밀 가격이 내린 만큼 다시 적정하게 가격을 내렸으면 하는 바람"이라며 라면 업계를 압박했다.
눈치를 보던 라면업계에서 가장 먼저 총대를 맨 건 농심이었다. 이달부터 신라면의 가격을 약 4.5% 내리기로 한 것이다. 업계 1위가 나서자 오뚜기, 삼양식품, 팔도 등 나머지 기업들도 줄줄이 "가격 인하"를 외쳤다.
다만 가격 인하에 나선 기업들도 '꼼수'를 썼다. 농심의 경우 가격 인하에 나선 제품이 신라면과 새우깡 2종 뿐이다. 인하율은 각각 4.5%와 6.9%로 지난해 인상분에 미치지 못한다.
오뚜기와 삼양식품, 팔도도 마찬가지다. 라면 15종의 가격을 5% 내리겠다고 밝힌 오뚜기는 진라면을 인하 품목에서 제외했다. 진라면은 오뚜기의 전체 라면 매출의 30% 이상을 차지한다. 삼양식품도 라면 12종의 가격을 4.7% 인하했지만 '불닭볶음면'은 예외였다. 팔도 역시 '팔도비빔면' 가격은 내리지 않았다.
정부의 압박에 가격을 내리는 시늉은 하되 수익성이 훼손될 수 있는 주력 제품의 가격은 동결한 것이다. 사실상 소비자들이 가장 많이 찾고 가격 인하를 체감할 수 있는 라면들의 가격은 전혀 내리지 않은 셈이다.
인하폭 역시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4개사 모두 4~5%대 가격 인하에 나섰지만 지난해 인상률은 평균 10%대였다.
안 내리곤 못 배긴다? "우린 예외"
하림과 풀무원은 선도 업체들의 릴레이에 반응하지 않았다. 이번 부총리발 가격 인하의 주요 쟁점이 지난해 밀 가격 폭등과 가격 인상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가격 인상을 하지 않은 두 기업으로서는 가격 인하에 동참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실제 풀무원은 지난 2021년 4980원(4개입 멀티팩 기준)이었던 정백홍 라면을 5450원으로 9.4% 인상한 후 지난해와 올해에는 가격을 올리지 않았다. 하림 역시 2021년 더미식라면을 2200원(봉지면 1개 기준)에 출시한 뒤 지금까지 같은 가격에 팔고 있다.
반면 농심은 2021년 8월과 지난해 9월 신라면 등 주요 제품 가격을 각각 7.6%, 10.9% 올렸다. 1년 2개월 사이에 신라면 가격(대형마트 기준)은 676원에서 807원으로 19.3%나 올랐다. 하림과 풀무원의 "가격 인하 거부"에 나름의 이유는 있는 셈이다.
하림과 풀무원의 라면 시장 점유율이 미미한 것도 가격 동결에 나설 수 있었던 요인이다. 양 사의 시장 점유율은 1% 미만으로 추정된다. 장바구니 불가 부담을 덜기 위한 라면값 인하 압박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는 이야기다.
다만 상대적으로 고가인 라면을 팔고 있는 하림과 풀무원이 가격을 내리지 않으면서 상대적으로 '더 비싼 라면'이 됐다는 건 고민거리다. 소비자들이 가격을 내린 신라면, 삼양라면과 가격을 내리지 않은 더미식라면, 정백홍라면의 가격 차이를 더 크게 느낄 수 있다는 설명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시장을 선도하는 브랜드가 많이 제외된 가격 인하인 만큼 눈에 띄는 효과는 없을 것 같다"면서도 "가격을 내리지 않은 브랜드들은 상대적으로 '더 비싸졌다'는 인식을 줄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