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유통]은 한주간 유통·식음료 업계에서 있었던 주요 이슈들을 쉽고 재미있게 정리해 드리는 콘텐츠입니다. 뉴스 뒤에 숨겨져 있는 또 다른 사건들과 미처 기사로 풀어내지 못했던 다양한 이야기들을 여러분께 들려드릴 예정입니다.
'국민우유 뚱바'
이름 앞에 '국민'이 붙는 상품은 많지 않습니다. 어느 세대에겐 인기가 있어도, 다음 세대로 가면 또 인기가 사라지기 마련인 게 이치죠. 여러 세대에 걸쳐 수십 년간 1위 자리를 놓치지 않고 사랑받아야 하는데, 매일같이 신제품이 나오는 이 세상에서는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 '국민' 칭호를 붙이기 아깝지 않은 제품 중 하나가 바로 빙그레 바나나맛우유, '뚱바'입니다. 1974년에 출시됐으니 내년이면 50살입니다. 진짜 바나나 과즙을 넣고, 노란 색소를 빼는 등 수많은 경쟁자들이 차별점을 내세우며 바나나맛우유의 왕좌에 도전했지만 여전히 '1등'은 바나나맛우유입니다.
바나나맛우유가 오랫동안 '국민 우유'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또 하나의 이유는 가격이었습니다. 편의점에서든 목욕탕에서든 천원짜리 하나면 살 수 있었죠. 시간이 흐르며 가격도 조금씩 올랐지만, 가격 변동이 거의 없는 제품 중 하나가 바로 바나나맛우유였습니다.
실제 바나나맛우유는 2013년 9월 1200원에서 1300원으로 오른 뒤 무려 5년 넘게 가격 인상이 없었습니다. 2018년 1400원으로 오른 뒤에도 3년을 버텼죠. 달력이 바뀔 때마다 가격이 오르던 다른 제품들과 비교하면 '혜자'였습니다.
철 지난 '원가부담' 타령
그러던 '뚱바'가 최근 들어 유난히 가격표를 자주 갈아끼우고 있습니다. 2013년 인상 이후 200원이 오르는 데 8년이 걸렸던 바나나맛우유가 최근 2년 새 300원이 올랐습니다. 2021년 이후 매년 가격 인상에 나섰기 때문입니다.
지난해 200원을 올렸을 때는 소비자들도 어느 정도 이해를 했던 것 같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코로나19로 전세계 물류비가 폭등하고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으로 유가도 급등하면서 거의 모든 제조 기업들이 원가 부담에 시달렸다는 걸 알기 때문입니다.
이번 인상에서도 빙그레는 비슷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원부자재와 인건비, 물류비, 전기세, 가스비 등이 모두 오르면서 원가 부담 압박이 심해져 가격 인상을 하게 됐다는 겁니다. 정말 그랬을까요? 빙그레의 올해 상반기 재무제표를 살펴 봤습니다.
빙그레는 올 상반기 매출 6822억원, 영업이익 590억원을 올렸습니다. 사상 최대 매출 기록입니다. 영업이익률도 8.6%로 제조기업 기준으로 매우 우수합니다. 지난해 상반기 빙그레의 영업이익률은 3.7%였습니다.
원가는 어땠을까요. 올 상반기 빙그레의 매출원가율은 65.8%입니다. 지난해 상반기엔 76.2%, 2021년엔 72.8%였습니다.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에도 빙그레의 원가율은 70% 초반이었습니다. 올해 상반기 빙그레의 원가 부담은 '역대 최저' 수준이라는 이야기입니다.
빙그레 측은 올해 해외에서 사상 최대 실적을 거두면서 이익률이 좋게 나왔을 뿐, 국내만 떼 놓고 보면 실적이 좋은 건 아니라는 해명도 내놨습니다. 실제 빙그레의 올 상반기 수출액은 역대 최고액인 775억원입니다. 하지만 이 숫자가 사상최대실적을 견인할 수 있는 수준인지는 의문입니다. 빙그레의 전체 매출 중 수출 비중은 11%에 불과합니다.
가격 올린 진짜 이유
실적도 좋고, 이익률도 좋고, 원가율도 개선한 빙그레가 갑자기 핵심 제품의 가격을 올린 이유는 뭘까요. 우선, 경쟁 브랜드들이 잇따라 가격을 올리기로 결정했다는 점이 있습니다. 이번에 유제품 가격 인상을 발표한 건 빙그레뿐만이 아닙니다.
이미 서울우유와 남양유업, 매일유업 등 주요 유제품 기업들이 가격 인상을 선언했습니다. 원유가격 인상분을 반영하기 위해서죠. 그런데 이들은 빙그레와 상황이 조금 다릅니다. 매일유업의 올 상반기 이익률은 3.8%입니다. 원가율은 72.1%구요. 남양유업은 상황이 더 좋지 않습니다. 원가율은 80%가 넘고 이익은커녕 224억원 적자를 냈습니다.
이에 업계에서는 빙그레가 경쟁사들의 가격 인상에 '숟가락 얹기'를 시도했다는 평가도 나옵니다. 가격 인상 요인이 많지 않음에도 '남들이 올리니까' 함께 인상에 나섰다는 겁니다. 이 경우 '나홀로 인상'에 나설 때보다 소비자들의 비난이 줄어든다는 장점도 있죠.
물론 제품의 가격은 기업이 결정할 요소입니다. 소비자는 가격과 제품의 품질을 비교해 보고 선택하면 될 일입니다. 하지만, '비싸면 안 사먹으면 되지'라는 말로 넘어가기 어려운 건, 우리가 '뚱바'와 함께 한 시간이 너무 길기 때문일 겁니다. 언젠가는 뚱바가 다시 가성비 넘치는 '국민 우유'로 돌아오길 바라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