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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원짜리 승리? 정부가 가격 통제 나선 '찐' 이유

  • 2023.06.30(금) 07:10

"가격 내리라"는 정부 압박에 인하 도미노
"아직 어렵다"는 업계…눈치보기식 인하율

/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정부의 '가격 통제' 칼날에 식품업계가 바짝 엎드리고 있다. 국제 밀 가격이 내렸으니 제품 가격도 낮추라는 것이 정부의 요구다. 라면, 과자, 빵까지 연일 가격 인하 행렬이 이어지는 중이다. 다만 각사 주력 상품이 빠지는 등 체감 효과는 물음표다.

업계는 인상 요인이 여전하다고 호소하고 있다. 밀가루 가격만 다소 내렸을 뿐 나머지는 큰 변화가 없어서다. 오히려 가격 통제에 대한 역효과 우려가 나온다. 정부가 업계를 물가 안정을 위한 '정치적 희생양'으로 삼았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너도 나도 '인하'

30일 업계에 따르면 라면 업체들은 다음달부터 라면 가격을 내리기로 했다. 농심은 신라면과 새우깡 가격을 각각 4.5%, 6.9% 각각 인하한다. 삼양식품도 순차적으로 삼양라면, 짜짜로니 등 12개 제품 가격을 평균 4.7% 낮출 계획이다. 오뚜기도 스낵면, 참깨라면 등 라면류 15개 제품의 가격을 평균 5% 인하한다. 팔도도 일품해물라면 등 11개 라면 제품의 가격을 평균 5.1% 낮추며 인하 행렬에 동참했다. 

국제 곡물가 추이 / 그래픽=비즈워치

눈치를 보던 제과업체들도 가격 인하에 나서고 있다. 롯데웰푸드(옛 롯데제과)는 다음달부터 빠다코코낫, 롯데샌드, 제크 등 3종의 편의점 기준 가격을 1700원에서 1600원으로 100원 인하하기로 했다. 해태제과도 아이비 오리지널 제품 가격을 10% 내린다고 밝혔다. 가격을 내리지 않은 오리온도 여론의 눈치를 살피는 모양새다. 

밀가루가 주 원료인 제빵업계도 불똥이 튀고 있다. SPC도 다음달 초부터 식빵류, 크림빵, 바게트 등 대표제품 30개 품목을 평균 5% 인하하기로 했다. 파리바게트는 식빵·바게트 등 10종이 100~200원 인하된다. SPC삼립도 정통크림빵 등 20종을 100~200원 인하한다. 뚜레쥬르를 운영 중인 CJ푸드빌도 가격 인하 여부를 검토 중이다.

주력은 다 빠졌네?

다만 각사의 주력 제품은 거의 인하 품목에서 빠졌다. 농심은 너구리, 안성탕면을 제외하고 인하 품목을 신라면과 새우깡으로 한정했다. 삼양식품과 오뚜기도 각각 불닭볶음면과 진라면을 제외했다. 팔도도 비빔면과 왕뚜껑(컵라면)은 조정하지 않았다. 해태제과가 가격 인하 결정을 한 제품은 아이비 단 한 제품에 그친다. 

식품 업체 주요 제품 가격 인하 현황 / 그래픽=비즈워치

업계는 경영상 불가피한 결정이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삼양식품의 불닭볶음면은 매출의 80%가 해외에서 발생한다. 이 때문에 국내 가격을 낮추면 해외 가격도 낮아져 매출 감소 부담이 커지게 된다. 팔도도 그동안 컵라면의 용기 가격이 오른 점을 들었다. 주력 상품은 가급적 낮은 가격을 유지해왔던 영향도 있다. 오뚜기는 지난 10여년간 진라면의 가격을 동결해 왔다. 제과업체도 비슷한 이유를 든다.

무엇보다 인상 요인이 여전히 많다고 지적한다. 제분업계가 밀가루 가격을 내렸다고 해서 이를 곧바로 가격에 적용하기는 어렵다. 이미 비싸게 들여온 재고분을 소진해야 해서다. 인건비와 전기료 등 최근 제반 비용이 상승한 것도 문제다. 라면 업계 관계자는 "사실 밀가루는 라면의 원가 비중의 20~30% 밖에 차지하지 않는다"며 "제품마다 사용하는 원재료도 달라 인하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정치적 희생양' 인가

이 때문에 가격 통제에 대한 불만도 높다. 특히 윤석열 정부는 집권 당시 시장 자율을 강조해왔다. 시장 경제의 선순환으로 기업 경쟁력을 강화한다는 구상이었다. 하지만 일방적인 가격 통제로 이 같은 기대감도 사리진 분위기다. 익명을 요구한 한 식품업계 관계자는 "물가 안정에 대한 취지는 이해하지만 여러 경제적 상황을 봤을 때 지금의 가격 인하 요구는 시기가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고 비판했다.

윤석열 대통령/사진=비즈워치

업계는 정부가 가장 만만한 식품·유통 기업을 희생양으로 삼은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현재 지지율이 답보상태인 윤석열 대통령은 가시적 성과가 시급하다. 곧 총선도 다가온다. 지금의 가격 통제에는 이런 정치적 계산이 다분하다는 얘기다. 업계는 물류비, 임대료, 인건비 등 유통 시장의 구조적 문제 해결이 먼저라고 말한다. 통제식 정책은 단기간에 성과를 내도 장기적으로 역효과를 낳을 것이란 우려다. 

과거 이명박(MB) 정부 시절의 물가 정책이 대표적이다. 지난 2011년 MB 정부는 서민 밀접 품목 50여 개를 꼽아 업계를 전방위적으로 압박했다. 이 품목에는 라면, 쌀, 밀가루, 배추, 쇠고기 등이 포함됐다. 당시 일시적인 가격 인하 효과가 있었지만 3년 새 해당 품목들의 가격이 20% 급등하는 등 오히려 역효과를 낳았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가격 통제와 같은 관치식 정책은 결국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이 문제"라며 "정부 조사 등 정부의 압박에 업계의 가격 인하가 이어지고는 있지만 그 효과가 클지는 의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근본적 문제 해결은 외면하고 과거와 같은 정책에 다시 매달린다면 시장 혼란은 더 커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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