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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격 통제에 화 삭이는 식품사들…눈치보기 언제까지?

  • 2023.12.04(월) 06:50

정부 압박에 너도나도 가격 인상 '철회'
업계 "호실적은 착시"…'역효과' 우려도

식품업계가 줄지어 가격 인상 철회에 나서고 있다. 정부가 가격 인상 자제를 압박하자 부담을 느껴 꼬리를 내렸다는 분석이다. 정부는 최근 식품업계가 호실적을 기록한 점, 원재료 가격이 떨어진 점 등을 들어 업계의 추가 가격 인상은 곤란하다는 입장이다. 

다만 업계는 정부가 물가의 유동성을 고려하지 않은 처사라고 비판한다. 호실적은 해외 사업 선전, 기저 효과에 따른 착시라고 반박한다. 오히려 인건비와 공공요금 등 인상요인이 여전하다고 주장한다. 가격 통제에 따른 역효과 지적에도 나서고 있다.

너도나도 '인상' 철회

4일 식품업계에 따르면 오뚜기는 이달부터 편의점에서 파는 카레와 케첩 등 주요 제품 가격을 인상할 예정이었으나 이를 철회했다. 풀무원도 편의점에서 판매하는 '초코그래놀라', '요거톡스타볼', '요거톡초코 필로우' 등 요거트 제품 3종 가격의 인상 계획을 취소했다. 롯데웰푸드 역시 소시지 제품인 '빅팜'의 편의점 가격 인상 계획을 접었다. 

라면 3사 3분기 실적 변화 / 그래픽=비즈워치

편의점 업계도 불똥이 떨어졌다. PB(자체브랜드) 우유가격을 그대로 유지하기로 했다. GS25는 이달부터 PB가공유 '춘식이우유 시리즈 500㎖'의 가격을 인상할 예정이었으나 정부의 물가안정 동참 권고를 따라 이 같은 계획을 무산했다. CU도 '헤이루 우유 500㎖' 제품의 가격 인상을 검토했지만, 최종적으로 가격을 인상을 취소하기로 결정했다. 

최근의 이 같은 가격 인상 철회는 정부 눈치를 본 영향이다. 실제로 농림축산식품부는 최근 실무 국장들을 주요 생산 유통기업으로 보내 "가격안정에 적극 협조해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아울러 정부는 중앙부처 차관을 물가안정책임관으로 지정하는 등 특별물가안정체계를 가동해 빵·과자·우유 등 28개 품목 가격을 매일 점검한다는 계획이다. 

업계도 할 말은 있다 

정부는 최근 식품업계가 호실적을 거둔 만큼 추가적인 가격 인상은 적절치 않다고 보고 있다. 대표적으로 농심은 지난 3분기 매출 8559억원, 영업이익 557억원을 거뒀다. 전년 동기 대비 각각 5.3%, 103.9% 상승했다. 같은 기간 삼양식품, 오뚜기, 오리온, 빙그레 등도 영업이익이 각각 124.7%, 87.6%, 15.6%, 154% 증가해 호실적을 기록했다. 

/ 사진=비즈워치

다만 업계는 착시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는 가격 인상의 효과가 아닌 해외 사업 성과, 제조 원가 반영 시차 등이 반영된 것이라는 설명이다. 실제로 삼양식품의 3분기 매출은 3352억원으로, 전체의 약 72%인 2398억원이 해외 매출이었다. 농심도 3분기 영업이익의 절반 이상을 해외에서 거뒀다고 밝혔다. 오리온도 3분기 영업이익 중 1000억원 가량을 해외에서 올렸다. 같은 기간 빙그레도 해외 사업 영업이익이 20% 증가했다. 

기저 효과도 이유로 든다. 지난해 식품업계는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 당시 수익성이 한차례 악화했던 바 있다. 이 때문에 최근의 상승폭이 더 커 보일 수 있다는 얘기다. 제조 원가 반영 시기가 보통 3~6개월 뒤에야 나타난다는 문제도 있다. 당장 밀가루 가격을 내렸다고 곧바로 제품 가격을 낮출 순 없다. 식품업계 관계자는 "재고분이 소진되어야 하는 등 문제가 있고, 이외에도 인건·에너지 비용 인상도 감안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물가 통제 '체감' 있을까

식품업계에선 정부의 가격 통제에 한숨을 내쉬고 있다. 특히 윤석열 정부는 집권 초부터 시장 자율을 강조해왔다. 시장 경제의 선순환을 통해 기업이 경쟁력을 갖추도록 한다는 논리였다. 지금의 행보는 이와 정 반대라는 볼멘소리다. 총선을 앞두고 지지율 끌어올리기에 나섰다는 분석도 있다. 식품업계를 '정치적 희생양'으로 삼고 있다는 얘기다.

사진=비즈워치

실제로 현재 윤석열 정부는 지지율이 연일 하락세다. 여론을 반전시키기 위해서는 가시적 성과가 절실하다. 물가 통제는 좋은 수단이 될 수 있다. 고물가의 책임을 기업에 전가시키는 것은 물론, 정부가 민생에 팔을 걷고 있다는 이미지를 심어줄 수 있다. 다만 업계는 물가 통제의 실질적인 체감 효과는 크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시장의 구조적 문제 해결을 제쳐놓은 지금의 통제식 방법으론 역효과가 클 것이란 우려다.  

지난 2008년 이명박 정부도 강력한 물가 통제를 펼친 적이 있다. 당시 정부는 서민 밀접 품목 50여 개를 꼽아 가격 인하를 압박했다. 쌀과 라면 밀가루, 배추, 쇠고기 등이 품목에 포함되어 있었다. 이는 일시적으로 가격 인하 효과를 내는 듯 했다. 하지만 이후 해당 품목들의 가격이 오히려 급등하는 부작용을 초래했다. 실제로 최근 식품업계에서도 가격은 그대로 두고 제품 용량을 줄이는 '슈링크플레이션' 등이 나타나고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건비도 오르고 에너비 비용의 상승폭도 큰 상황"이라며 "정부가 먼저 업계의 어려움을 고려하고 지원 방안을 내놓은 후 인상폭을 억제하도록 나서는게 맞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본질적 문제 해결은 외면한 채 보여주기식 정책을 지속한다면 오히려 부메랑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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