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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말하면 큰일 나요"…식품업계, 입 꾹 닫는 이유

  • 2024.07.03(수) 07:20

정부, 식품업체들에 가격 인하 요청
"원재료 가격 인하분 제품가에 반영"
업계 "영업이익률 낮아…시장에 맡겨야"

대형마트 식품 진열대 /사진=김지우 기자 zuzu@

CJ제일제당·삼양사·대한제당 등 제당업계가 이달부로 B2B(기업 간 거래) 설탕 제품 가격을 평균 4%가량 인하하기로 했다. 앞서 지난 3월엔 CJ제일제당, 삼양사, 대한제분 등 제분업계도 밀가루 가격을 인하했다. 

갑자기 식품업체들이 줄줄이 가격 인하에 나선 배경은 무엇일까. 당초 식품업계는 올해 가격 인상을 예고했었다. 실제로 많은 업체들이 가격 인상에 나서기도 했다. 산업 특성상 원재료 가격이 상승하면 실적에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는데다, 영업이익률이 워낙 낮은 탓에 가격 인상이 아니면 돌파구를 찾을 수가 없어서다.

하지만 식품업체들은 최근에는 약속이나 한 듯 가격 인하에 동참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쉬쉬하고 있지만 이유는 분명하다. 정부가 나섰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정부가 가격 인하 압박을 줬다는 사실에 대해 언급하기를 꺼려한다. 혹여라도 정부에 밉보일까 두려워서다. 하지만 정부의 가격 인하 압박은 이미 식품 업계에서 공공연한 비밀이다.

실제로 지난달 25일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대한제당 인천제당공장을 방문해 원당 국제 가격이 하향 안정세를 보이고 있다며 국제 가격 하락분이 국내 제품 가격에 반영될 수 있도록 협조해달라고 요청했다. 

농식품부에 따르면 국제 원당 가격은 2022년 6월 파운드당 18.8센트(약 260원), 2023년 6월 파운드당 24.7센트(약 390원)으로 뛰었다가, 지난달 19일 파운드당 18.9센트로 하락했다. 

지난해 7월 농심은 신라면 출고가를 4.5% 인하했고, 삼양식품은 대표 제품 12종의 가격을 순차적으로 평균 4.7% 내렸다. 오뚜기는 15개 제품 가격을 평균 5.0% 인하했다.

정부의 요청으로 가격 인상 시기를 미루는 경우도 있다. 롯데웰푸드(옛 롯데제과)는 코코아 가격이 급등해 지난 5월 초콜릿 제품 가격을 인상하기로 했다. 하지만 실제 가격 인상은 6월에 진행했다. 정부 요청에 따라 당초 계획보다 가격 인상 시기를 한 달 늦춘 것이다.

/그래픽=비즈워치

사실 소비자 입장에서 '원재료 가격이 내려갔으니 제품 가격을 내려라'는 것은 반가운 말이다. 식품업체들의 올해 1분기 영업이익이 증가한 것을 보면 가격을 내려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것도 자연스러워 보인다. 주요 식품사 17개 중 3곳(남양유업, 농심, 샘표식품)을 제외하곤 전년 대비 영업이익이 늘었다. 적게는 4%에서 많게는 236%까지 증가했다. 

하지만 식품업계에서는 다른 업계에 비해 영업이익률이 낮은  업종이라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고 말한다. 식품업체들의 영업이익률은 대부분 한 자릿수다. 더불어 올 1분기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증가한 데는 기저효과가 있다는 것이 업계의 주장이다. 지난해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로 국제 원자재 가격이 급등하면서 수익성이 악화했다.

식품업계는 정부의 가격 개입은 지나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대놓고 목소리를 높일 수는 없다. 조심스럽다. 정부 눈치 보기다. 식품업계도 할 말은 있다. 원재료 가격이 내려가더라도 인건비, 유류비, 물류비 등의 제반비용이 상승하기 때문에 정부의 가격 정책에 대한 압박이 부담스럽다는 것이 업계의 설명이다.

그간 물가 모니터링은 기획재정부와 공정거래위원회를 중심으로 진행돼 왔다. 우윳값, 라면 등 국민 생활과 밀접한 분야의 물가가 잇따라 오르자, 정부는 지난 2021년 물가 감시를 강화하기 위해 범부처를 동원하기로 했다. 농림축산식품부·산업통상자원부·국토교통부·해양수산부·행정안전부 등 모든 부처가 물가 모니터링에 동참하기 시작했다. 농식품부는 가공식품을 맡았다. 여기에 지난해 11월부터는 각 부처 차관에 물가안정책임관 역할을 부여하고 현장 대응을 강화하는 범부처 특별물가안정체계를 출범했다. 

식품업계에서는 농식품부가 모니터링을 시작하면서 가격 관리·감독이 한층 강화됐다고 말한다. 업계 관계자는 "예전에는 한 업체의 경영 상황을 살펴보고 가격 인상을 용인해주고, 그 다음 동종업계에 있는 업체도 가격을 올리는 구조였다"며 "하지만 이제는 가격 인상을 하려면 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가격 인상을 단행할 경우 공정위를 통해 압박이 들어온다는 말까지 나온다는 설명이다.

송미령 농식품부 장관이 지난달 25일 대한제당 인천제당공장을 방문해 업계 애로사항 청취 및 설탕 가격 동향을 점검하고 있다 / 사진=농림축산식품부

식품업계가 정부의 가격 인하 요청에 곤혹스러워하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제품 하나에 수십 가지 원부자재 포함 △그동안의 제조원가 감내 △투자 및 배당 위한 수익성 제고 필요 등이다. 우선 한 제품에는 하나의 원재료가 아닌 수십 가지의 부재료가 들어간다는 점이다. 원재료 하나의 가격이 내려갔다고 해서 가격을 인하하는 것은 무리라는 설명이다. 물론 원재료가 주 재료인 식용유, 밀가루 등은 정부의 말처럼 원재료 가격이 크게 하락했다면 가격을 내릴 수 있다.

또 그동안 원재료비, 인건비, 유류비, 전기세 등이 오르더라도 곧바로 제품 가격을 인상하지 않았다는 것이 업계의 입장이다. 기업들도 시장 내 입지와 소비자 반발 등을 고려해 경영상 감내하기 어려운 시점이 됐을 때 가격 인상을 결정한다. 원재료 가격 인하에 맞춰 당장 가격을 인하하라는 것은 역설이라는 주장이다. 업체들은 통상 원부재료를 짧게는 3개월에서 길게는 6개월치를 일정 단가에 미리 계약한다. 따라서 원부재료의 시세가 바뀐다고 해서 곧바로 판매가를 조정할 수 없다는 설명이다.

임직원 급여 인상·처우 개선, 연구개발, 재투자 등을 위한 자금도 남겨둬야 한다. 하지만 원재료 가격에 연동해 가격을 인하할 경우 산업 발전에 한계가 생긴다는 주장도 나온다. 여기에 업체들이 원재료 가격 인상 시에는 제품 가격을 인상하면서 반대로 해당 원재료 가격이 하락 시에는 가격 인하에 나서지 않는다는 주장에도 대해서도 할 말이 있다는 입장이다.

업체들은 "원재료 가격 상승 시 제품 가격을 인상해야 나중에 원가가 인상될 때 감내할 수 있는 기반이 된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업계에서 대부분의 기업이 제품 가격을 인상할 때, 어떤 기업은 가격을 동결할 수 있는 비결은 일정 수준의 이익이 그간 누적된 덕분이라는 설명이다.

정부가 법 등을 통해 직접적으로 식품업체들의 가격 정책에 개입할 수는 없다. 하지만 기업 입장에서는 정부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일각에서는 현재 기업 관계자가 업계의 분위기를 전하며 정부의 가격 정책에 대한 부정적인 멘트를 할 경우 담당 공무원이 색출에 나선다는 이야기가 돌기도 한다. 

기업의 궁극적인 목적은 이윤 추구다. 정부의 역할은 시장을 건강하게 유지시키는 데에 있다. 우리는 이미 정부가 기업을 압박했을 때 나타나는 부작용을 경험한 바 있다. 시장경제체제에서 기업의 재투자와 일자리 창출 등의 선순환이 이뤄지기 위해선 정부가 개입하기보다는 시장에 가격 결정을 맡기는 것이 맞지 않을까. 정부의 식품 가격 조정 개입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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