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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원이 별건가"…유통업계 '고속승진' 오너 3세들

  • 2024.12.03(화) 11:15

유통업계 오너 3세 연이어 승진
4년간 4번 승진·입사 1년 만에 임원

그래픽=비즈워치

유통·식품업계에 오너 3세 경영이 본격화하고 있다. 1980년대 후반~1990년대생 3세들이 승계 전철을 밟기 위해 줄줄이 임원 자리를 받고 경영 일선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이른 나이부터 다양한 부서를 돌며 경험을 쌓는 게 긍정적이라는 반응이 있는가 하면 오너 일가라는 이유만으로 고속 승진을 통해 임원을 달고 고연봉을 받는 게 부적절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드라마인 줄

롯데그룹은 지난달 29일 정기 임원인사를 단행했다. 가장 관심이 갔던 부분은 역시 오너 3세인 신유열 전무의 승진 여부였다. 신 전무는 1남 2녀를 둔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장남이다. 사실상 롯데그룹의 후계자로 낙점된 인물이다. 

1986년생으로 아직 30대지만 이미 상무보와 상무를 빠르게 지나치고 지난해 인사에서 전무를 달았다. 신 전무는 이번 인사에서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신사업 및 신기술 기회 발굴과 글로벌 협업 프로젝트 추진 등 다양한 업무를 수행해왔다"는 내부 평가를 받았다.  

롯데 타임빌라스 그랜드 오픈 행사에 참석한 신유열 롯데지주 부사장/사진=김아름 기자 armijjang@

1986년생으로 만 38세인 신유열 부사장은 유통·식품업계의 '후계자 라인' 중에는 그나마 나이가 있는 편이다. 담철곤 오리온 회장의 장남인 담서원 상무는 1989년생으로 만 35세다. 신유열 부사장보다 3살이 어리다. 담 상무는 올해부터 오리온의 미래 동력으로 꼽히는 리가켐바이오의 사내이사에도 선임됐다.

신 부사장과 담 상무가 사회에서는 '어린 임원'이지만 식품업계 전체에서 보면 그나마 '형님'에 속한다. 이쪽은 1990년대생 오너 3세들이 줄지어 임원 배지를 달고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기업이라면 이제 갓 대리를 달았을 법한 나이다. 

농심은 올해 정기 임원인사에서 신동원 회장의 장남인 신상열 미래사업실장을 전무로 승진시켰다. 신설된 미래사업실을 맡은 지 1년 만에 승진했다. 신 전무는 1993년생으로 만으로 32세다. 삼양식품의 오너 3세인 전병우 삼양라운드스퀘어 전략총괄 상무는 신 전무보다도 한 살 더 어린 1994년생이다. 전 상무는 앞서 계열사인 삼양애니의 대표이사도 지낸 바 있다. 

부장=인턴

대기업들이 젊은 후계자들을 빠르게 승진시키는 건 당연히 승계를 위해서다. 본격적인 승계에 나서기 전, 자녀를 글로벌 사업부나 미래성장 등 고성장이 기대되는 사업부의 임원으로 배치해 성과를 내게 한 뒤 그 성과를 바탕으로 후계자 자리의 '소프트 랜딩'을 노리는 인사다. 해당 사업부 역시 오너의 자녀가 온 만큼 전폭적인 지원을 받을 수 있고, 회사 내에서의 기대치도 높은 부서가 된다. 

실제로 신유열 부사장은 현재 롯데지주의 미래성장실장을 맡고 있고 신상열 농심 상무의 보직도 미래사업실장이다. 전병우 삼양라운드스퀘어 상무가 맡은 전략기획본부장과 담서원 오리온 상무가 맡은 경영관리담당 역시 그룹의 신성장동력과 전략을 담당하는 보직이다. 

문제는 '속도'다. 회사 내에서 차근차근 업무를 배우거나 단계를 밟는 게 아닌, 입사 직후부터 성과와 관계없이 고속 승진을 이어가는 건 비판의 여지가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신유열 전무는 2020년 부장으로 롯데그룹에 입사한 뒤 2022년 상무보와 상무로 연속 승진했고 지난해 인사에서 전무로, 올해 인사에서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입사한 지 4년이 조금 넘었는데 4번의 승진을 겪었다. 각 보직을 채 1년도 맡지 않은 셈이다. 

전병우 삼양라운드스퀘어 상무/사진=김아름 기자 armijjang@

다른 오너 3세들도 대체로 고속 승진 전철을 밟았다. 신상열 농심 전무는 2019년 농심에 입사해 2년 뒤인 2021년 임원 배지를 달았다. 만 29세 때다. 담서원 오리온 상무도 마찬가지다. 2021년 수석부장으로 입사, 이듬해 상무로 승진했다. 전병우 삼양라운드스퀘어 상무도 2019년 입사할 때부터 부장을 달았고 1년 만에 임원이 됐다.

일반적인 부장이나 임원이라면 승진 후 1년 만에 재승진하는 건 '이례적'인 정도가 아니라 불가능에 가깝다. 공채로 입사한 평사원이라면 20년 이상 일해야 달 수 있는 부장 자리가 이들에겐 임원을 달기 위한 '인턴' 직급이었던 셈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1년 만에 임원 승진을 위한 실적을 쌓았다고 말하는 건 회사가 구축한 인사평가 시스템을 스스로 부정하는 것"이라며 "특히 실적이 좋지 않아 무더기 경질이 이뤄진 해에도 오너일가만 고속승진을 이어가는 건 책임감이 부족한 행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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