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느냐 안 파느냐
최근 건강기능식품 업계에서 가장 핫한 기업은 제약사도, 건기식 제조사도 아닌 유통 기업 '다이소'입니다. 다이소가 지난달부터 일부 제약사들과 손잡고 200여 개 매장에서 건기식을 팔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판매를 시작한 게 논란은 아니겠죠. 문제는 '가격'이었습니다. 다이소는 늘 그렇듯 3000~5000원에 다양한 비타민과 루테인 등의 영양제를 판매했는데요. 이에 대해 약국에서 영양제를 판매 중인 약사들이 거세게 반발했습니다. 비슷한 영양제를 약국에선 몇 만원에 팔고 있어서입니다.

일각에서는 다이소에 입점한 제약사들의 제품을 받지 않겠다며 '불매운동' 조짐이 보이기도 했습니다. 이에 일양약품은 다이소 입점을 철회하기로 했습니다. 1500개 남짓한 다이소에서 제품을 팔려다가 2만개가 넘는 약국을 잃을 수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소비자들은 반발했습니다. 약사들의 집단 이기주의라는 이야기가 쏟아져 나왔죠. 그간 약국이 폭리를 취한 것 아니냐는 비판도 이어졌습니다. 겉보기에 비슷해 보이는 비타민 한 통 가격이 다이소에선 3000원이고 약국에서는 3만원이라면 그런 의심이 들 법도 합니다.
결국 공정거래위원회가 나섰습니다. 약사회가 다이소의 건기식 판매를 막기 위해 제약사들을 압박했는지 조사하기 위해서입니다. 공정거래법 제 51조는 사업자 단체가 특정 사업자의 사업 활동을 부당하게 제한하는 행위를 금지합니다.
다 똑같은 영양제 아니다
어쩌다보니 공정위 조사까지 받으며 공공의 적이 된 약사들 역시 억울하긴 마찬가지입니다. 다이소에서 5000원짜리 영양제를 출시하니, 소비자들은 약국이 3000원에 팔아도 되는 영양제를 10배나 되는 가격에 팔고 있다고 오해하고 있습니다.
한 예를 들어 볼까요. 다이소에서 판매 중인 대웅제약의 '칼슘·마그네슘·비타민D' 제품은 30정에 5000원인 반면, 약국에서 판매하는 '칼슘마그네슘디'는 60정에 3만4900원입니다. 1정당 가격이 각 167원과 582원으로 3배 이상 차이가 납니다.

약사들은 이에 대해 주요 성분의 함량, 주요 성분의 원활한 흡수를 돕는 보조 성분의 유무 등 차이가 많다고 지적합니다. 실제로 약국 제품엔 칼슘 흡수를 돕는 비타민K2가 들어있는 반면 다이소 제품엔 없습니다. 두 제품은 당연히 공급가에도 큰 차이가 있습니다. 이유없이 비싼 건 아니었던 겁니다.
다만 일각에선 약사들의 '불매 압박'이 문제라고 지적합니다. 두 제품의 성분과 효능이 다르다면 약국에서는 다이소 영양제보다 약국 영양제가 '더 좋은 제품'인 이유를 알리는 마케팅을 펼쳐야지 싼 제품을 팔지 못하게 압박해선 안 된다는 겁니다. 식품업계나 뷰티업계에서 프리미엄 제품이 출시된다고 판매를 막지는 않죠. 자연스럽게 가성비 제품과 프리미엄 제품군이 나뉩니다. 영양제 역시 그래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다이소는 시작일 뿐
시작은 다이소였지만 '가성비 영양제'의 불길은 이제 편의점으로까지 번질 전망입니다. 편의점 CU는 이달 중순 건기식 특화점을 확대하겠다는 계획을 밝혔습니다. CU는 작년 10월 전국 매장 3000점을 건강식품 진열 강화점으로 선정하고 40여 종의 상품과 특화 진열대를 도입했는데요. 성과가 나쁘지 않았습니다.
CU를 운영하는 BGF리테일에 따르면 2021년 5.3%, 2022년 27.1%, 2023년 18.6%였던 건강식품 매출 신장률은 '건기식 강화점'을 도입한 지난해 137%로 급증했습니다. 이에 CU는 올해 상반기 내 건강식품 특화점을 5000점까지 확대하기로 했습니다.
편의점은 다이소와 사업 규모에서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다이소가 전국에 1500여 개 매장을 운영하는 반면 편의점은 CU만 해도 1만8000개가 넘고요. GS25, 세븐일레븐, 이마트24 등 4대 브랜드를 합치면 5만5000여 개에 달합니다. 접근성도 다이소나 약국에 비할 바가 아닙니다. 약국 찾기 힘든 동네는 있어도 편의점 하나 없는 동네는 없으니까요.

결국 건기식의 판매처 확대는 이제 대세가 됐습니다. 한국건강기능식품협회에 따르면 국내 건기식 시장 규모는 2023년 6조2022억원에서 지난해 6조440억원으로 역신장했습니다. 그나마 전체 판매의 70%가 온라인에 의존합니다. 제약사·건기식 제조사들로서는 새로운 판로가 절실합니다. 그들에게 편의점과 다이소라면 더할나위없는 파트너입니다.
아마 조만간 모든 제약사들은 다이소에서 3000원짜리 영양제를 팔게 될 겁니다. 편의점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럼 약국이 택할 길은 어떤 길일까요. 다이소처럼 3000원짜리 영양제를 판매하는 걸까요, 아니면 약사들의 전문 지식을 이용해 가격이 다소 높더라도 효능이 확실한 '프리미엄 영양제' 시장을 개척하는 걸까요. 답은 이미 나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