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로운 100년을 시작한 올해는 '진로의 대중화'를 위한 중요한 한 해가 될 것입니다. K컬처의 수많은 인기 아이템 중 하나로 반짝 성장에 그치는 게 아닌 현지 소비자들의 동반자 역할을 하는 게 목표입니다. 주류 시장의 발전을 선도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술이 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김인규 하이트진로 대표이사는 지난 18일 필리핀 마닐라에서 기자 간담회를 열고 이같이 말했다. 단순히 제품을 수출하는 것을 넘어 소비자들의 일상 속에 스며드는 브랜드로 자리매김하겠다는 것이 골자다. 이를 위해 하이트진로는 올해 필리핀 공략에 드라이브를 걸기로 했다. 첫 수출국인 베트남과 함께 '투트랙 전략'을 구사해 동남아 시장 전체로의 확장을 꾀하기 위한 행보로 풀이된다.'일상 속으로'
하이트진로는 2016년부터 진로 소주를 앞세워 필리핀 현지 시장을 공략해 왔다. 하지만 당시 필리핀 시장 내 소주 소비층은 주로 한인이었다. '아는 사람들만 마시는 술'이라는 인식이 강했다는 의미다. 이들을 중심으로 소주의 견고한 수요가 뒷받침됐던 만큼 하이트진로 역시 물량을 제때 공급하는 데 초점을 맞춰 사업을 영위했다.

이랬던 하이트진로가 현지화에 속도를 내기 시작한 건 2018년부터다. 현지인 중심 구조로 탈바꿈하지 않고서는 '글로벌 주류 기업'으로 거듭날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이에 현지 소비자들의 니즈를 반영한 '진로 라이트', '자두에 이슬' 등 도수가 낮은 제품들 위주로 포트폴리오를 강화했다. 이듬해 7월에는 진로 소주를 더 많이 알리기 위해 필리핀 수도인 마닐라에 현지 법인을 설립했다.
유통망을 넓히는 데도 주력했다.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하이트진로의 주요 판매처는 식당과 바(bar)였다. 그러나 코로나19를 거치면서 외출 제한으로 가정 시장의 중요성이 커지자, 접근성이 좋은 편의점과 대형마트 등으로 이를 확대했다. 소비자들이 언제 어디서나 자사 제품들을 쉽게 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게 된 배경이다.

성과도 따라왔다. 하이트진로에 따르면 2022년부터 지난해까지 자사 소주의 필리핀 내 연평균 성장률은 41.7%를 기록했다. 최근 들어 교민 수가 감소하고 있다는 것을 고려하면 현지인의 선호도가 높아졌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싷제로 지난해 대(對) 필리핀 소주 수출액(447만달러·약 62억원) 중 하이트진로 제품 비중은 약 67%를 차지했다.
하이트진로는 자사의 '삼박자 전략'이 현지인들에게 통했기 때문으로 평가한다. 김 대표는 "브랜드 마케팅과 제품 포트폴리오 다변화, 철저한 유통 전략이 어우러진 결과"라면서 "세계적으로 이름 있는 한국 소주가 될 수 있도록 열심히 노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넘어야 할 산
하지만 여전히 풀어야 할 숙제가 남았다. 바로 소주의 경쟁력을 극대화하는 일이다. 실제로 필리핀 주류 시장은 아직 증류주보다 맥주 중심의 소비가 두드러지고 있다. 그나마 30%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는 증류주 카테고리마저 소주가 아닌 브랜디, 럼 등에 대한 수요가 대부분이다. 소주를 대중화시키기 위한 차별화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이야기다.

하이트진로는 한류 열풍이 불고 있는 지금이 진로의 영향력을 확대해나갈 수 있는 적기로 보고 있다. 일상에서 'K컬처'를 중심으로 한 소비가 활발한 대표적인 시장 중 하나가 필리핀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두 배에 달하는 인구 수를 가진 건 물론 알코올 소비가 높은 국가라는 점도 기대감을 끌어올리는 요인이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필리핀은 지난해 아시아 지역 내 1인당 알코올 소비량 8위에 이름을 올렸다.
이에 하이트진로는 '젊은 세대 공략', '지역적 기반 확대', '로컬 아이템 활용'을 올해 주요 키워드로 삼았다. 성장에 탄력을 붙이기 위해선 철저한 현지화 과정이 필수이기 때문이다. 국동균 하이트진로 필리핀 법인장은 "올해는 대학생 동아리 모임, 한류 커뮤니티 활동의 지원 범위를 넓혀갈 예정"이라며 "트렌디한 곳으로 널리 알려진 필리핀 내 세부 지역에서 진행되는 행사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섞어먹는 문화'에 착안해 현지 커피 프랜차이즈와의 협업도 지속한다. 지난해에는 과일 소주를 활용한 '저도주 칵테일'이 핵심이었다면 올해는 일반 소주와 커피를 결합시킬 생각이다. 소주를 부담없이 마실 수 있는 문화를 만들어 진입장벽을 낮추고, 현지 소비자들과 접점을 확대하기 위한 취지다.
국 법인장은 "현재 널리 퍼져있는 스피릿 주종은 브랜디다. 하지만 소주가 브랜디보다 접근성이 좋고 경쟁력도 뛰어나다고 생각한다"며 "소비자들의 자발적인 수요를 만드는 것이 우선이다. 여러 사람들과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소주를 찾게 한다면 충분히 성장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내년 완공 예정인 베트남 공장과의 시너지 효과도 기대하고 있다. 앞서 하이트진로는 지난 2월 'K소주의 세계화'를 위해 베트남 타이빈성(省) 공장 건립에 나섰다. 하이트진로가 해외에 짓는 첫 번째 생산·물류기지다. 해외 수출용 제품을 만드는 것이 주인 만큼 향후 가격 경쟁력 확보가 가능할 전망이다.
김 대표는 "베트남 공장과 필리핀에서 행한 현지화 전략은 동남아 시장의 성장을 이끄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며 "세계적인 경제 위기와 주류 경쟁 심화로 어려움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여기에 연연하지 않고 시장을 늘리고 생산능력을 확대하는 것에 집중하겠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