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신라의 장충동 한옥호텔 프로젝트가 다시 꿈틀대고 있습니다. 최근 호텔신라가 2021년 '미정'으로 돌렸던 한옥호텔 부대시설 투자 일정을 오는 2031년~2032년으로 명시했기 때문입니다. 백지화 수순을 밟을지도 모른다는 우려까지 나왔던 이 사업이 재개될 가능성이 생긴 셈인데요. 무려 15년째 표류 중인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의 숙원이 결실을 맺을지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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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충동 한옥호텔은 이부진 사장이 2010년 12월 호텔신라의 대표이사로 취임할 당시부터 추진해온 역점 사업입니다.
당시 호텔신라는 서울 중구 장충동에 위치한 서울신라호텔 내의 신라면세점 부지에 지하 4층~지상 4층짜리 비즈니스호텔을 건립하려고 했습니다. 신라면세점은 주차장 부지로 옮겨 지하주차장을 갖춘 지상 4층짜리 건물로 확장한다는 계획이었죠. 그런데 신라호텔이 위치한 남산 일대는 자연경관지구로 지정돼 있어 호텔을 증축하는 게 불가능한 상황이었습니다.
호텔신라에게 기회가 찾아온 건 2011년입니다. 자연경관지구라 하더라도 자연경관과 조화를 이루는 한옥형 호텔 건물에 한해 제한적인 신·증축을 할 수 있도록 서울시의회가 도시계획조례를 개정하면서입니다. 호텔신라는 이때 일반 비즈니스호텔이 아닌 한옥형 호텔, 즉 '전통호텔'을 짓기로 결정했습니다.
호텔신라는 그해 8월 4개층의 한옥호텔, 3개층의 면세점을 포함해 장충단 근린공원, 지하주차장을 짓는 사업을 구상했습니다. 하지만 호텔신라의 건축안은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를 쉽게 통과하지 못했습니다.
처음에는 주차장이 문제였습니다. 2012년 7월 도계위의 첫 심의에서는 호텔신라의 계획에 기존 호텔의 주차빌딩 건립이 포함돼 있어 '반려' 결정이 났습니다. 자연경관지구 내에 한옥호텔만 심의를 거쳐 지을 수 있으니 주차빌딩 신축은 안 된다는 이유였죠.
도계위는 2013년 7월 전통호텔이 인근의 한양도성과 잘 어울리는지, 공공기여 정도는 적정한지 등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보류' 결정을 내렸습니다. 이어 2015년 3월에는 또 다시 기존 관광호텔 부속 용도의 주차장을 자연경관지구 내에 지을 수 없다는 이유로 호텔신라의 계획을 반려했습니다. 이듬해 1월에는 전통호텔 건축계획, 부대시설 비율, 교통 처리 계획 등의 보완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다시 한 번 허가를 보류했습니다.
팬데믹 직격탄
그리고 2016년 3월. 호텔신라는 마침내 도계위로부터 한옥호텔 건립안에 대한 '가결' 결정을 받아냈습니다. 두 번의 반려, 두 번의 보류를 딛고 한옥호텔 건립의 첫발을 뗄 수 있게 된 겁니다.
그간 호텔신라는 도계위의 권고사항을 받아들여 건물의 구조, 전통 조경 요소, 층수, 높이 등 건축안을 대폭 수정했는데요. 한옥호텔은 당초 계획보다 줄어든 지상 3층, 91실 규모로 확정됐습니다. 또 한양도성과 호텔 부지와의 이격거리는 기존 9m에서 최종 29.9m로 확대됐습니다. 호텔신라는 사업구역 외에도 장충체육관 인근 노후 건물 밀집지역을 매입하고 정비하기로 했고요. 또 호텔 출입구의 산림청 부지와 호텔신라 부지 4000㎡를 기부채납 하기로 했습니다. 탐방로 등 한양도성 주변 환경 개선에도 나서기로 했습니다.
이후 호텔신라의 한옥호텔 건립 계획은 착착 진행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호텔신라는 2017년 3월 설계사를 선정해 계획설계를 완료했습니다. 같은해 10월부터는 건축 관련 인허가 절차에 돌입했습니다. 2019년 서울시 건축위원회의 건축 심의를 통과했고 2020년 7월에는 관할구청인 중구청으로부터 착공 허가도 받았습니다.
그 사이 호텔신라는 부대시설 투자도 본격화했습니다. 2020년 2월 이사회를 열고 한옥호텔 부대시설을 짓는 데 총 2318억원을 투자하기로 결정했는데요. 이 투자금액은 2019년 말 호텔신라의 자기자본의 30.3%에 해당하는 큰 금액입니다. 호텔신라는 우선 면세점, 주차장, 사무실 등의 부대시설을 지은 후 한국전통호텔 공사를 진행한다는 계획이었습니다. 부대시설 건립 기간은 2020년 3월부터 2023년 1월까지 35개월로 정했죠.
문제는 이때 코로나19 팬데믹이 터졌다는 점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중국의 '한한령' 이후 호텔신라의 캐시카우였던 면세점이 흔들리기 시작한 상황에서 코로나19까지 겹치며 호텔신라는 직격탄을 맞았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수천억원의 대규모 투자를 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했습니다.
아직 포기 안 했다
결국 호텔신라는 부대시설 투자 계획을 발표한지 8개월만인 2020년 10월 이 계획을 2021년 8월까지 10개월 보류하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코로나19 위기가 계속되자 호텔신라는 2021년 8월 투자 보류 기간을 '미정'으로 변경했습니다. 공사 보류 기간을 미정으로 바꿨다는 건 결국 공사 일정을 무기한 연기하겠다는 뜻이었죠. 이후 2023년 팬데믹 위기는 끝났지만 면세시장의 어려움이 지속되면서 호텔신라가 다시 한옥호텔을 추진하기는 어려워보였습니다. 일각에서는 호텔신라의 한옥호텔 건립 계획이 사실상 백지화 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죠.
호텔신라는 아직 한옥호텔에 대한 의지를 접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호텔신라는 지난달 29일 공시를 통해 한옥호텔 부대시설 투자 계획을 다시 한 번 변경했습니다. 미정이었던 투자 보류 기간을 2030년 말로 확정하고 투자를 2032년 말 종료하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즉 2031년부터 2032년까지 한옥호텔 부대시설을 짓겠다는 의미입니다. 이 투자 계획을 무기한 연기한지 4년만의 일입니다. 물론 호텔신라는 "단순히 투자 재개 시기를 명시했을 뿐"이라고 선을 긋습니다. 그래도 호텔신라가 아직 한옥호텔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걸 알 수 있는 대목이죠.
다만 호텔신라가 2031년 한옥호텔 건립을 다시 재개할 수 있을지에는 의문 부호가 붙습니다. 호텔신라의 주력 사업인 면세점이 아직도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호텔신라는 지난해 52억원의 영업손실을 내며 전년 대비 적자로 돌아섰습니다. 팬데믹이 한창이던 2020년 1853억원의 영업손실을 낸 후 4년만의 일인데요. 면세점을 운영하는 TR부문이 697억원의 적자를 냈기 때문입니다. 호텔신라는 올 상반기에도 영업이익 62억원을 내는 데 그쳤습니다. 지난해 상반기와 비교하면 무려 84.4%나 감소한 수치입니다.
다행히 최근 우리 관광사업이 높은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만큼 호텔신라 역시 다시 날갯짓을 하는 날이 올 수도 있습니다. 앞으로의 시장 환경이 어떻게 변화할지, 또 호텔신라가 사업과 재무건전성을 어떻게 정비할지가 이 숙원사업의 성패를 가를 변수가 될 전망입니다. 호텔신라가 꿈꾸던 한옥호텔이 마침내 완공되는 날이 올 수 있을지 지켜봐야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