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유통]은 한주간 유통·식음료 업계에서 있었던 주요 이슈들을 쉽고 재미있게 정리해 드리는 콘텐츠입니다. 뉴스 뒤에 숨겨져 있는 또 다른 사건들과 미처 기사로 풀어내지 못했던 다양한 이야기들을 여러분께 들려드릴 예정입니다.[편집자]
먹어는 봤나 우지라면
이번 주 식품업계에서 가장 '핫'한 소식은 누가 뭐라해도 삼양식품의 신제품 '삼양라면1963'의 출시 소식일 겁니다. 1989년 우지 파동으로 인해 자취를 감춘 우지 라면(소기름으로 튀긴 라면)이 다시 출시된다는 소식, 비즈워치가 '[단독]삼양식품, '우지라면' 명예 회복…'삼양라면1963' 출시' 기사를 통해 가장 먼저 알려드렸습니다.
사실 기사를 준비하면서 약간 우려하기도 했습니다. 우지라면이 다시 나온다는 게 소비자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기사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아마 이 기사를 읽는 분들 중 상당수는 우지 라면을 드셔보신 적이 없을 겁니다. 저도 없고요. 그야말로 어른들의 추억 속에만 남아 있는 라면인거죠. '별 것도 아닌 제품 하나 나온다고 기사를 쓰네'라는 댓글이 달릴까봐 걱정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우지라면에 대한 관심은 예상 외로 높았습니다. 많은 분들이 우지라면의 출시를 기다려 오셨고, 우지라면을 접해보지 못한 분들도 우려보다는 기대감을 더 표시해 주셨던 것 같습니다. 신제품 출시 관련 기사에 기업을 응원하는 목소리가 이렇게 많이 담긴 건 처음 보는 일이었습니다.
아마 삼양식품도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을 겁니다. 우지라면 출시에 대한 반응이 긍정적이지 않았다면 모처럼의 대형 신제품 출시가 악재로 작용할 수도 있으니까요. 내부적으로도 우지라면 출시를 두고 많은 격론이 있었을 겁니다. 삼양식품 내부엔 아직도 우지 파동 당시 받은 상처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삼양식품은 결국 '도전'을 선택했습니다. 트렌드를 따른 신제품도, 세상에 없던 '뉴 웨이브'도 아닙니다. 이미 흘러간 역사를 다시 꺼내왔습니다. 그렇다고 '레트로'를 노리는 것도 아닙니다. 삼양라면1963은 편의점가 기준 1900원(봉지면)에 판매될 예정입니다. 농심의 프리미엄 라면 '신라면 블랙'과 같은 가격입니다. 레트로 콘셉트의 추억팔이라기엔 지나치게 고가입니다. 삼양식품은 왜 '프리미엄 우지라면'을 내놓은 걸까요.
바닥 치고 돌아왔다
삼양식품은 1961년 식용유를 만드는 '삼양제유'로 시작했습니다. 같은 해 '삼양공업'으로 사명을 바꾼 뒤 일본 묘조식품(明星食品
·현재는 닛신식품 소속)에서 인스턴트 라면 제조 기술을 전수받아 라면 기업으로 거듭납니다. 삼양라면을 처음 출시한 196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는 삼양식품의 독주였죠. 하지만 1980년대 들어 강력한 경쟁자가 나타납니다. 바로 농심입니다.
1970년대 '농심라면'으로 나름의 입지를 구축한 농심은 1980년대 '황금의 5년'을 보냅니다. 1982년 육개장 큰사발, 1983년 너구리와 안성탕면, 1984년 짜파게티, 1986년 신라면으로 이어지는 라인업은 지금 봐도 이런 게 매년 출시되는 게 말이 되나 싶을 정도의 제품들이죠.
이 다섯 제품은 지금도 국내 라면 시장 '톱 10'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1985년 농심은 당시 라면 시장 1위였던 삼양식품을 끌어 내리는데 성공합니다. 우지 파동 4년 전의 일입니다. 우지 파동이 벌어졌던 1989년 양 사의 점유율은 이미 더블 스코어였죠.
그렇다고 우지 파동이 아무 영향도 주지 못한 건 아닙니다. 우지 파동 당시 주요 라면 제조사 중 유일하게 우지를 쓰고 있던 삼양식품은 집중적으로 공격받았습니다. 20%대를 유지했던 시장 점유율도 10%대로 떨어졌습니다.
청보식품을 인수하며 라면업계의 신흥 강자로 떠오른 오뚜기에도 따라잡히며 업계 3위로 밀려납니다. 1990년대와 2000년대는 삼양식품에게 암흑기였습니다. 오너일가를 비롯한 경영진들도 틈만 나면 '우지 파동'을 언급합니다. 그만큼 분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점유율이 10%대 초반까지 떨어지며 신라면과 진라면의 라이벌리를 구경만 해야 했던 삼양식품에게 기회가 찾아온 건 2012년입니다. 바로 '불닭볶음면'의 등장입니다. 출시 당시만 해도 마니아층을 겨냥한 제품이었지만 유튜브의 시대, 먹방의 시대가 오면서 기적같은 반등이 시작됩니다. 전세계가 '불닭 챌린지'에 빠진 겁니다.
이제 삼양식품은 매출의 70%를 불닭볶음면으로 벌어들이는 '불닭식품'이 됐습니다. 영원히 내준 것만 같던 '라면 1위'도 가시권입니다. 외부 요인 탓에 몰락했던 기업이 외부 환경의 변화로 제 2의 전성기를 맞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만들어진 겁니다.
명예 회복
삼양식품은 지금 창립 이래 최고의 호황을 맞고 있습니다. 올해 매출은 사상 첫 2조원 돌파가 확실시되고 시가총액도 10조원에 육박합니다. 라이벌 농심의 4배에 달합니다.
하지만 삼양식품에도 고민거리는 있습니다. 바로 '불닭'의 뒤를 이을 제품이 필요하다는 점입니다. 이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들고나온 제품이 바로 '삼양라면1963'이라는 건 의미심장합니다. 그동안 삼양식품을 옥죄왔던 트라우마를 해소하기 위해 다시 한 번 '우지라면'을 꺼내든 것처럼 보이거든요.
사실 우지라면은 리스크가 큰 제품입니다. 현재 국내에서 우지라면을 만드는 곳은 한 곳도 없습니다. 소기름에 대한 대중의 인식도 좋지 않습니다. 건강에 좋지 않은, 나쁜 기름이라는 인식이 보편적입니다. 무죄 판결이 났다고는 하지만 '우지 파동'이 계속 언급되는 것도 껄끄럽습니다. 심혈을 기울인 신제품이 부정적인 이슈로 묘사되면 좋을 게 없죠.
그럼에도 삼양식품이 우지라면을 내놓기로 한 데는 '맛에 있어서는 우지라면이 낫다'는 확신이 있기 때문일 겁니다. 실제로 제가 만났던 삼양식품 관계자들은 입을 모아 "맛에서 확실한 차이가 있을 것"이라고 자신합니다.
차별화된 맛이 있으면 소비자들이 선택해 줄 거라는 믿음이 있는 겁니다. 다름아닌 불닭볶음면의 성공으로 쌓은 자신감입니다. 불닭볶음면 출시를 밀어붙인 김정수 부회장의 승부사적 기질이 이번 '우지라면' 출시에서도 드러난 것 같습니다.
소비자 입장에서야 라면의 종류가 늘어나는 건 좋은 일입니다. 삼양라면1963이 성공하면 다른 라면 제조사들도 하나둘 우지라면을 내놓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부먹·찍먹 논쟁이 우지·팜유 논쟁으로 넘어올 지도 모르죠. 라면 마니아로서는 생각만 해도 즐거운 상상입니다.
물론 이 모든 가정은 곧 출시될 삼양라면1963이 '맛있어야' 이뤄질 수 있습니다. 삼양라면1963은 보름 후인 11월 9일 출시됩니다. 편의점으로, 마트로 달려갈 준비 되셨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