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유통]은 한주간 유통·식음료 업계에서 있었던 주요 이슈들을 쉽고 재미있게 정리해 드리는 콘텐츠입니다. 뉴스 뒤에 숨겨져 있는 또 다른 사건들과 미처 기사로 풀어내지 못했던 다양한 이야기들을 여러분께 들려드릴 예정입니다.[편집자]
책임지신다면서요
아무래도 길게 갈 것 같습니다. 네. 쿠팡 개인정보 유출 사태 이야기입니다. 이슈가 시작된 지 2주가 지났지만 아직 해결된 건 하나도 없습니다. 실권을 쥐고 있는 김범석 이사회 의장은 어디에 있는지도 알 수 없습니다. 보상안은커녕 '앞으로 어떻게 하겠다'는 내용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 와중에 새로울 것 없는 기사들만 쏟아져나왔습니다. 혼란 속의 보름이었습니다.
이를 틈탄 범죄 시도도 잇따르고 있습니다. 한국인터넷진흥원에 따르면 쿠팡 개인정보 유출 피해를 보상하겠다며 피싱을 시도하는 사례가 발견됐다고 합니다. 이것까지 쿠팡의 잘못이라고 할 수는 없는데, 개인정보가 유출되지 않았다면 벌어지지 않았을 일이니 책임이 아예 없다고 하기에도 애매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갑자기 쿠팡은 '대표 교체'라는 카드를 꺼내들었습니다. 박대준 쿠팡 대표가 "한국 법인 대표로서 끝까지 책임을 지고 사태를 해결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한 지 채 열흘도 되지 않아서입니다. 박 대표는 지난 10일 사임 소식과 함께 "최근의 개인정보 사태에 대해 국민께 실망드린 점에 대해 매우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이번 사태의 발생과 수습과정에서의 책임을 통감하고 모든 직위에서 물러나기로 했다"고 말했습니다.
책임을 지겠다는 게 사표를 내고 회사를 떠나는 거라면 직업을 잃은 한 직장인으로서는 책임을 졌다고 할 수 있겠지만, 한 회사를 운영하는 CEO의 입장에서는 책임을 방기하고 회피했다고 봐야 한다는 비판이 나옵니다. 더욱이 박 대표는 오는 17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청문회 출석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이미 사임한 만큼 이 자리에 나타날 리가 없겠죠.
새 책임자
이미 떠난 사람이야 어쩔 수 없습니다. "내가 책임지겠다"며 빈 자리로 온 사람에 집중해야 할 겁니다. 쿠팡은 해롤드 로저스(Harold Rogers) 미국 쿠팡 Inc. 최고관리책임자 겸 법무총괄(CAO & General Counsel)을 임시 대표로 선임했습니다. 사태 수습에 여념이 없던 한국 법인이 아니라 미국 법인의 고위 간부가 왔다는 게 인상적입니다.
로저스 임시대표는 1977년생으로 하버드대 로스쿨을 졸업했습니다. 1978년생인 김범석 의장도 하버드대를 졸업한 뒤 경영대학원(MBA) 과정 중 쿠팡을 창업했으니 '동문'인 셈입니다. 쿠팡에는 지난 2020년 합류했습니다. 쿠팡 내에서는 김 의장에 이은 '2인자', 혹은 '실세'라고 불릴 만큼 영향력이 있는 인물로 알려졌습니다.
로저스 임시대표의 선임을 두고 업계에서는 의견이 갈립니다. 긍정적으로 보는 측은 쿠팡의 실세가 온 건 그만큼 '해결 의지'가 있기 때문이라고 해석합니다. 미국 본사의 핵심 인사가 전권을 갖고 한국에 와 빠르게 사태를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라는 설명입니다. 박대준 대표를 비롯한 한국 법인이 초기 대응에 실패했기 때문에 사태가 악화됐다는 판단이죠.
비판적인 시선도 많습니다. 2인자를 보냈다는 건, 이 선에서 해결을 보겠다는 사인입니다. 김 의장은 지난 2015년에도 국정감사 증인으로 채택됐지만 '농구를 하다가 아킬레스건이 파열됐다'며 출석하지 않았죠. 이번에도 로저스 임시대표를 보내고 본인은 등장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재미있는 건 2015년 농구를 하다 다친 김 의장 대신 국회에 출석한 게 이번에 사표를 낸 박 대표(당시 정책실장)였다는 겁니다.
그때완 다르다
물론 2015년과 지금은 사안이 크게 다릅니다. 2015년엔 쿠팡이 협력업체에 '경쟁사와 동일한 조건으로 판매하지 않는다'는 계약을 한 게 문제였습니다. 이른바 '최혜대우' 계약입니다. 쿠팡만 걸린 게 아닙니다. 티몬, 위메프 등 경쟁사들도 비슷한 계약을 하다가 함께 증인 출석을 요구받았죠. 또 박은상 위메프 대표와 신현성 쿠팡 대표는 모두 출석했습니다. 김 의장이 없어도 될 만한 상황이었죠.
이번엔 어떤가요. 유출된 개인정보가 무려 3370만건입니다. 흔한 말로 '단군 이래 최대 규모'입니다. 전국민의 절반 이상이 피해자가 됐습니다. 정치권에서도 강한 어조로 질타하고 있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2일 국무회의에서 "과징금을 강화하고 징벌적 손해배상도 현실화하라"고 말했습니다.
현 개인정보보호법 상 개인정보 유출 기업은 매출의 최대 3%에 달하는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습니다. 매출 41조원 기업인 쿠팡이라면 최대 1조2000억원이 넘는 과징금 부과가 가능하다는 이야기입니다. 현실적으로 그만한 과징금을 부과하기는 어렵겠지만 그만큼 정치권과 국민들이 이번 사태를 심각하게 바라보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책임자'가 갔으니 됐다는 식의 인사는 지나치게 안일합니다. 일각에선 로저스 임시대표가 법무총괄이라는 점을 들어 쿠팡이 이번 사태를 법적인 관점에서만 다루려는 것이 아니냐는 의심도 나옵니다. 쿠팡 관계자들은 억울할 수도 있습니다. 사태를 최대한 해결해 보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데 자꾸 안 좋은 방향으로만 호도한다고 할 수도 있겠죠.
김범석 의장이 틈만 나면 하는 말이 있죠. "쿠팡 없이 어떻게 살았을까". 네. 이제 우리는 쿠팡 없이 살 수 없습니다. 누구보다 빠른 배송을 이뤄낸 쿠팡의 힘입니다. 저는 여기에 한 마디를 덧붙이고 싶습니다.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 자신이 얻은 힘에 우쭐대던 피터 파커를 진짜 '히어로'로 만든 한 마디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