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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프의 Pick]'테판'의 만석 행진 비결은 '백반집'이었다

  • 2026.07.20(월) 10:00

배승현 그랜드 하얏트 서울 '테판' 총괄 셰프 인터뷰
계절 따라 한우 산지 바꾸고 백반집에서 영감
"불쇼보다 오래 기억에 남는 한 끼 만들고 싶다"

배승현 그랜드 하얏트 서울 테판 총괄셰프./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셰프의 요리는 종종 예술작품에 비유되곤 합니다. 셰프는 접시라는 캔버스 위에 자신만의 철학과 재료에 대한 경외심을 담아 수만 번의 칼질로 하나의 작품을 만듭니다. 예술가들의 그것과 견주어도 전혀 밀리지 않죠. [셰프의 Pick]은 그들의 이런 노력을 담아냅니다. 국내 호텔 셰프들의 이야기와 요리에 담긴 철학 한 조각을 음미해보려는 시도입니다. 최고의 셰프들이 전하는 화려하고 소박한 이야기를 맛 보실 준비가 되셨나요? 이제 출발합니다. [편집자]

철판 위에서 펼쳐지는 화려한 불쇼. 철판요리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장면이다. 하지만 서울 용산구 그랜드 하얏트 서울의 모던 다이닝 '테판(Teppan)'의 풍경은 조금 다르다. 이곳에서는 화려한 퍼포먼스보다 뜨겁게 달아오른 철판 위에서 식재료를 섬세하게 다루는 셰프의 손놀림이 주인공이 된다.

테판은 약 10년 전 그랜드 하얏트 서울의 대대적인 레스토랑 리뉴얼과 함께 탄생했다. 일식당 '아카사카'에서 시작한 이곳은 현재 배승현 총괄 셰프의 지휘 아래 한식을 철판요리에 접목한 '모던 코리안 테판'의 진수를 선보이고 있다. 계절에 따라 달라지는 로컬 식재료와 사계절 한우 그리고 전통 한식을 현대적인 터치로 풀어낸 메뉴들은 국내 고객은 물론 외국인 투숙객들에게도 새로운 한식 경험을 제공 중이다.

전국 산지와 시장을 직접 누비며 식재료를 엄선하고 익숙한 우리네 맛을 철판이라는 캔버스 위에 새롭게 그려내는 배승현 셰프. 그를 만나 테판이 만석 행진을 이어가는 비결과 그가 철판 위에서 꿈꾸는 지속가능한 한식의 미래를 들어봤다.

계절 따라 한우도 바꾼다

인터뷰 내내 배 셰프가 가장 많이 언급한 단어는 '식재료 본연의 맛'이었다. 화려한 플레이팅이나 퍼포먼스보다 식재료가 가진 맛을 어떻게 가장 잘 끌어낼 것인지가 셰프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배 셰프는 기존 철판요리에 현대적인 한식을 접목하며 지금의 '모던 코리안 테판'을 완성했다. 그는 "익숙하지만 새로운 맛을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며 "전통 한식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본질은 유지하면서 현대적인 방식으로 다시 경험하게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그의 메뉴판은 계절의 흐름에 맞춰 움직인다. 단순히 제철 식재료를 사용하는 데 그치지 않고 가장 좋은 상태의 식재료를 찾아 메뉴를 완성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의 식재료를 향한 철학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재료가 바로 '한우'다.

그랜드 하얏트 서울 테판 여름 메뉴/사진=그랜드 하얏트 서울

배 셰프는 "와규가 지방의 풍미를 즐기는 고기라면 한우는 육향이 매력"이라며 "방목해 키운 한우를 사용하는 것은 기본이다. 계절과 사육 환경에 따라 육향과 지방의 균형이 달라지기 때문에 사계절의 기후 변화에 맞춰 산지를 달리 선택한다"고 설명했다.

봄에는 육질이 단단하고 담백한 풍미가 좋은 강원도 한우를, 무더운 여름에는 지방이 깔끔하고 균형감이 뛰어난 충청도 한우를 선택한다. 가을에는 육향이 깊고 마블링이 안정적인 경상북도 한우를, 추운 겨울에는 지방의 고소한 풍미와 부드러운 식감이 살아나는 전라도 한우를 사용한다. 국내 각 지역에서 나는 식재료가 가진 고유의 향과 맛을 가장 자연스럽게 담아내기 위해서다.

이렇게 계절별로 엄선한 한우는 코스 메뉴에서 빠지지 않는 대표 메뉴다. 조리법에서도 그의 철학은 이어진다. 좋은 식재료일수록 양념보다 재료 자체의 맛을 살려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배 셰프는 "한식은 짜고 맵고 자극적인 양념이 많다. 하지만 좋은 고기는 간장 맛으로 먹으면 안 된다는 생각 때문에 간장을 쓰지 않는다"며 "과도한 양념 대신 계절마다 다른 채소와 장아찌, 허브 등을 곁들여 고기의 풍미를 살린다"고 말했다.

영감의 원천

그의 한 주는 시장에서 시작될 때가 많다. 매주 월요일이면 경동시장과 가락시장을 직접 돌며 그날 들어온 식재료를 확인한다. 직접 눈으로 확인하지 않은 식재료는 사용하지 않는다는 원칙 때문이다. 토종닭 브랜드를 바꾸거나 산지를 조정하는 일도 직접 결정한다.

최근에는 여름철을 맞아 자연 상태의 단맛과 염도가 뛰어난 생물 갑각류 연구에 집중하고 있다. 최근 리뉴얼을 마친 호텔 뷔페 '더 테라스'에서는 킹크랩 한 마리를 통째로 활용한 메뉴를 선보였고, 현재는 테판 메뉴에 적용하기 위해 블루 랍스터와 블루 새우를 활용한 신메뉴를 개발하고 있다.

배승현 그랜드 하얏트 서울 테판 총괄셰프./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배 셰프가 시장 만큼 많이 찾는 곳은 '백반집'이다. 세련된 호텔 파인 다이닝을 지향하는 테판이지만, 오랜 세월 골목을 지켜온 전통 백반집의 지혜가 그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교과서다.

배 셰프는 "백반집에서 만난 작은 '킥(Kick)'을 제 메뉴에 담는 것을 좋아한다"면서 "화려한 기술보다 된장 한 숟갈, 계절 나물 하나, 제철 식재료를 다루는 방식에서 더 큰 영감을 얻는다"고 했다. 이어 "제주 서귀포의 작은 식당 '토담'에서 많은 영감을 얻었다"며 "토담에서 맛본 곱창김과 회, 간장의 조화는 테판식 세비체 소스로 재탄생했다"고 덧붙였다. 

그는 "메인 요리인 한우 갈비에 곁들여지는 소스는 남미의 치미추리 대신 참나물과 장아찌를 다져 만들었다. 의외의 조합이지만 갈비의 기름진 맛을 부드럽게 잡아준다"면서 "고추장과 치즈, 된장과 버터처럼 익숙한 재료를 새로운 조합으로 풀어내 깊은 감칠맛을 만드는 것이 테판만의 '킥'"이라고 강조했다.

철판 위에서 끓어오르는 곰탕

배 셰프는 자신의 요리 철학을 가장 잘 보여주는 메뉴로 '곰탕'을 꼽았다. 투박한 뚝배기 대신 프랑스식 종이 봉지 조리법인 '빠삐요뜨(Papillote)'를 적용했다. 내열 필름 안에 한우 사골을 세 번 우려낸 묵직한 육수를 붓고 도가니, 아롱사태, 전복, 문어, 낙지, 동충하초를 넉넉히 담아 끓여내는 방식이다.

열전도율이 높은 철판 위에서 필름 내부의 압력을 제어하며 해산물의 부드러운 식감을 살려내고 배추의 단맛을 끌어내는 건 오롯이 셰프의 섬세한 불 조절과 래스팅 기술에 달려 있다. 

터질 듯 부풀어 오른 필름 봉지를 고객의 테이블 바로 앞에서 열어주는 퍼포먼스는 테판이 자랑하는 하이라이트다. 필름이 열리는 순간 공간을 가득 채우는 은은한 인삼 향과 동충하초의 묵직한 흙 내음은 코끝을 먼저 자극하고, 눈과 입으로 이어지는 미식의 설렘을 완성한다.

빠삐요뜨 조리법으로 만든 곰탕/사진=그랜드 하얏트 서울

이 익숙한 국물 요리의 마지막 간은 소금이나 새우젓이 아닌 '칼루가 골드 캐비어'가 맡는다. 뜨거운 육수와 만난 캐비어가 알알이 터지며 뿜어내는 고급스러운 지방 풍미와 해조류의 감칠맛은 한우의 깊은 육향과 어우러져 맛을 한층 끌어올린다.

배 셰프는 "전통을 존중하되, 익숙한 맛을 새로운 방식으로 경험하게 만드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면서 "시각과 후각, 미각이 동시에 완성되는 경험을 통해 단순히 맛있는 음식을 넘어 기억에 남는 한 접시를 만들고 싶었다"고 강조했다.

이어 "익숙한 한식을 현대적인 감각으로 재해석하고, 최고의 식재료와 조리 기법, 그리고 미식의 즐거움을 함께 전달하는 것. 그것이 이 메뉴가 제 정체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이유"라고 말했다.

"불쇼보다 중요한 건 기억에 남는 경험"

과거 일식당 '아카사카'에서 출발해 대대적인 리뉴얼을 거친 테판은 오랜 단골들의 추억과 소울이 깃든 공간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배 셰프는 철판 요리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화려한 '불쇼'를 지향하지 않는다. 시각적인 자극은 일시적일 뿐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것은 결국 맛과 경험이기 때문이다.

테판은 전채 요리부터 디저트까지 모든 조리 과정을 철판 위에서 라이브로 선보인다. 야채 하나도 미리 염지 처리해 철판 위에서 마이야르 반응을 극대화해 굽는 등 250도에 육박하는 철판 위에서 셰프들이 펼치는 정교한 테크닉 자체가 하나의 공연인 셈이다.

배 셰프는 "공연에도 액션이 있고 퍼포먼스가 있지만 결국 중요한 건 경험"이라며 "계산할 때도 '오늘 즐거운 경험이 되셨나요'라고 꼭 여쭤본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철학은 재방문 고객으로 이어지고 있다. 데이트를 위해 방문했던 고객이 부모님을 모시고 다시 찾고, 단골 고객을 위한 특별 이벤트는 공지 후 5분 만에 마감될 정도다. 현재 테판 예약도 3주가량 차 있다.

배승현 셰프가 테판에서 불을 사용해 요리하는 모습/사진=그랜드 하얏트 서울

배 셰프가 꿈꾸는 한국 미식의 미래는 '지속가능성'에 방점이 찍혀 있다. 인터뷰에서 다시 한번 오래된 백반집 이야기가 나오자 그의 말은 한층 길어졌다. 그는 "유행을 좇기보다 시간이 지나도 다시 찾게 되는 음식이 결국 오래 살아남는다는 믿음이 있다"면서 "사라져가는 백반집의 손맛과 조리의 지혜를 현대적인 한식으로 재해석해 다음 세대에도 이어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이어 "앞으로도 로컬 식재료의 본연의 맛과 향을 살리고 시장과 생산자가 이어온 가치를 현대적인 한식으로 재해석하는 셰프가 되고 싶다"라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테판이 어느 한 명의 스타 셰프에게만 포커싱되는 레스토랑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현재 18명의 셰프들이 팀을 이뤄 함께 메뉴를 개발하고 반복 훈련을 거쳐 테판만의 맛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설명이다.

배 셰프는 "팀원 개개인이 메뉴 개발에 직접 참여하고 본인의 메뉴에 오너십과 프라이드를 가질 수 있도록 틀을 짜주는 것이 제 역할"이라며 "훗날 사람들이 배승현이라는 이름을 떠올릴 때 화려하게 돋보였던 셰프보다는 '최고의 팀원들과 함께 철판 위에서 가장 정직하고 설레는 미식 경험을 선물했던 기획자'로 기억되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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