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를 말하다]④도전과 실패의 함수를 풀어라

  • 2013.06.20(목) 10:09

관리만으로 한계 분명…과감한 도전과 실패 있어야 성장
금융 전반이 ‘구성의 오류’ 가능성, 새로운 문화 형성 시급

 

과거의 1등은 무너지고 새로운 강자는 나타나게 마련이다. 영원한 것은 없다. 우리 금융업도 마찬가지다. 두 번의 큰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과거 5대 시중은행이라 불렸던 이름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그 밑에서 허리를 받치고 있던 은행들이 현재 우리나라 금융을 대표하고 있다. 이들 은행의 부상을 설명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들은 도전했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운도 따라야 하지만, 운도 능력이다. 어쨌든 그들은 기회를 잡았고, 결과를 만들어냈다.


그것이 지난 10여 년간 대한민국 금융업의 판도를 바꾼 가장 큰 이유다. 제조업이나 금융업이나 근본적인 차이는 없다. 기회가 왔을 때 잡아야 하고 그것이 도전이다. 냉정한 경영 판단하에 결정했다면 강력히 밀어붙이는 뚝심도 필요하다. 말은 쉽지만 현실에선 맘처럼 쉽지 않은 현실이 지금의 차이를 만들어냈다. 우리 금융사회는 이런 도전과 실패를 얼마나 권장하고 있을까? 이것 또한 말 따로 현실 따로는 아닐까?

 

◇ 금융의 도전과 창의는 말로만 "구성의 오류에 빠져"

 

지난 몇 년간 우리는 전 세계적인 금융위기의 시대에 살고 있다. 이런 위기 상황에선 보통 관료의 역할이 커지는 경향을 보인다. 관치(官治)의 범위를 어떻게 설정하든 불이 난 위기에서 소방수는 필요하다. 김석동 전 금융위원장은 ‘불이 나면 확실히 불을 끄는 게 관료의 역할이고, 그것이 관치라면 관치는 필요하다’는 취지의 말을 자주 했다. 그가 관치의 상징이 된 이유이기도 하다.

위기관리의 방식은 항목들을 매우 세밀하게 정하고 각각의 리스크를 체크하며 개별적으로 관리하는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위기를 관리해 들어가면 전체적으로 위기의 총합이 줄어든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위기 상황에서 각각의 위험 요소를 줄이는 효과적인 방법이기는 하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이거나 그 상황에 머무르기만 한다면, 결코 ‘위기=기회’가 될 수 없다.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야 앞선 주자를 따라잡을 수 있다는 것은 상식 수준이다.

축구를 예로 들어보자. 우리보다 훨씬 강한 상대를 만나면 아무래도 수비에 치중할 수밖에 없다. 현실적으로 수비에 치중할 수밖에 없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골을 넣어야 이길 수 있는 축구에서 비기려 하는 것이 아니라면 다른 수단을 내야 한다. 그런 다른 수단을 우리는 가지고 있는가의 문제다. 소위 유틸리티 비즈니스만으로는 비기거나 더 큰 위험에 빠지지는 않을 수 있어도 경쟁에서 순위를 끌어올리기도 어렵다.

시중은행의 한 고위 관계자는 “우리 정부는 위기 상황에서 위기의 모습을 하나하나 짚어가며 위험을 줄이는 데는 탁월한 성과를 보인 것이 사실이지만, 실제로는 더 큰 위기를 잉태하거나 키우는 ‘구성의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런 문제는 그동안 우리의 위기 극복의 과정이 그저 ‘이제 그만, 일시 정지’의 방식으로만 진행됐기 때문이라고 금융계 관계자들은 설명한다. 불을 끄는 데만 효과적이었다는 얘기다.



금융업계도 사실은 비슷하다. 위기를 점검하고 극복보다는 관리에 주력한 결과, 눈을 뜨고 정신을 차렸을 때 경쟁자는 앞서 갔지만, 자신은 제자리에 있는 상황이 자주 연출됐다. 국제 신용평가회사인 피치가 금융위기 이전(2003~2007년)과 이후(2008~2011년)를 나눠 수익이 많은 은행의 경영지표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재밌는 결과를 확인할 수 있다.

보통 상황이 어려우면 비용을 극단적으로 줄이게 마련이다. 그러나 수익이 높은 은행들은 비용을 많이 사용하면서 이익을 더 많이 창출했다. 이들 은행은 자산에서 판관비가 차지하는 비율이 높았음에도 수익성이 더 높아 총이익에서 판관비가 차지하는 비율을 낮은 수준에서 유지했다. 판관비 중 인건비가 차지하는 비율도 영업행태나 수익성 등과 무관하게 53% 수준에서 관리했다.

리스크관리 강도도 전략적인 고려가 필요한 것으로 지적됐다. 부실채권(NPL) 비율이 낮은 10개 은행의 평균 총자산 순이익률(ROA)은 0.70%로 전체 평균 0.55%보다 높았다. 그러나 ROA 상위 10개 은행의 평균 ROA 0.90%보다는 낮아, 리스크 관리가 과도하면 수익력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수익력이 좋은 은행들은 보통의 상식과는 달리 위기에서도 비용을 과도하게 줄이지 않았고, 리스크관리 강도도 신축적이었다는 설명이다.

 

◇ "유틸리티 비즈니스로는 경쟁자 따라잡기 어렵다"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는 이 같은 사실들을 근거로 수익성이 높은 은행의 수익구조 특징으로 ‘고비용 고효율 구조’를 꼽았다. 총이익에서 판관비가 차지하는 비율은 낮지만, 자산 대비 판관비 비율은 높기 때문이다. 이 밖에도 고수익성 은행들은 △예금조달비율이 높아 순이자마진(NIM)이 높은 동시에 NPL 비율이 낮고 △영업행태(평균 대출/자산 비율)는 중립적이지만 비이자 이익률이 높고 자산 건전성을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동시에 대손비용은 보수적으로 처리하는 특징을 보였다.



위기 때 위험을 줄인답시고 단기적인 처방만을 내놔선 중장기적인 성장을 담보할 수 없다는 아주 간명하지만 실천하기는 쉽지 않은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당연히 이들은 위기가 지나가면서 문제 금융회사들을 밀어내고 전 세계 대표 금융회사로 올라서는 기염을 토했다. 끊임없이 새로운 먹거리를 찾아내는 것이 더 중요했다는 사실의 방증이기도 하다. 위기는 기회라는 명제를 실천하는 회사들이 승자가 된다는 사실을 수치로 증명한다고 봐도 큰 무리가 없다.

금융계 한 관계자는 “금융위기가 발생하면서 우리 은행들은 가계부문에 쏠린 영업을 해 왔는데, 리스크가 없을 것 같은 곳만 찾아다니는 이 같은 유틸리티 비즈니스로는 경쟁자를 따라잡기 어렵다”며 “이 현상 자체가 쏠림이고 결국 리스크가 확대된 것”이라고 한탄했다. 다른 금융그룹 고위 관계자는 “금융회사도 조금 까먹어 봐야 배운다, 한 푼도 까먹지 않는 쉽고 당연한 비즈니스라면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라며 “정부도 모범생을 만들려는 감독은 창조금융을 달성하기 어렵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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