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에선 임영록 KB금융 회장의 관리형 경영스타일이 이번 M&A의 패인으로 작용했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어윤대 트라우마’도 하나의 배경으로 꼽힌다. 유난히 드센 KB금융 이사회의 까다로운 입맛에 맞추려다 보니 임 회장의 선택지가 그만큼 줄어들 것이 아니냐는 설명이다.
◇ 임영록 vs 임종룡, 판박이 회장의 경영능력 시험대
우리투자증권 인수전은 옛 재무부 선후배인 임영록 회장과 임종룡 회장 간 자존심 경쟁으로 관심이 모아졌다. 두 사람 모두 잘 나가는 재무관료였던데다, 올해 나란히 국내 대표 금융그룹의 회장으로 취임하면서 여러모로 비교 대상에 올랐다.
KB금융과 NH농협금융 모두 비은행 부문의 강화가 최대 화두라는 점도 비슷하다. 두 회사 모두 은행 부문에 80% 가까이 집중된 기형적인 수익원을 가지고 있어 우리투자증권은 증권 부문의 비중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매력적인 매물이었다.
그러나 두 임 회장의 접근법은 판이하게 달랐다. 임종룡 회장은 우리금융 측이 요구한 패키지 입찰에 충실하면서 정석을 선택했다. 지분가치가 마이너스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우리아비바생명과 우리금융저축은행에 대해서도 플러스 가치를 매겼다. 대신 우리투자증권의 가격을 깎았다.
반면 임영록 회장은 지극히 당연하지만 우리금융 입장에선 변칙을 선택했다. 영양가가 없는 우리아비바생명과 우리금융저축은행은 포기하고, 우리투자증권 개별 입찰에 훨씬 높은 가격을 써내면서 승부수를 던졌다.
결과는 정석을 택한 임종룡 회장의 승리로 끝났다. 물론 이 과정에서 혼란을 빚기도 했다. 성공적인 민영화를 위해선 패키지 매각이, 공적자금 회수 극대화를 위해선 개별 매각이 더 유리한 입찰 결과가 나오면서 우리금융도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신제윤 금융위원장이 교통정리를 하긴 했지만, 우리금융 이사진의 배임 문제가 거론되기도 했다.
◇ 어윤대 트라우마? KB금융, 또 다시 M&A 잔혹사
애초 재무적인 여력이나 비은행권 강화 의지 등을 고려할 때 KB금융이 여러모로 유리할 것이란 관측이 많았다. 인수준비팀 숫자 역시 KB금융이 6배 이상 많았다.
그럼에도 KB금융이 또 다시 고배를 마시자 시장에선 다양한 분석을 내놓고 있다. 우선 임영록 회장의 경영스타일을 패인으로 꼽고 있다. 꼼꼼하고 신중한 일처리로 위기관리엔 강하지만 공격적인 성향은 부족한 게 아니냐는 평가다.
‘어윤대 트라우마’도 배경으로 거론된다. 어윤대 전 KB금융 회장은 ING생명 인수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이사회와 마찰을 빚었고, 결국 회장직에서 물러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이 과정을 지켜본 임 회장이 지나치게 이시회를 의식하다 보니, 인수 가치가 없는 우리아비바생명과 우리금융저축은행을 포기했고 결국 여기에 발목을 잡혔다는 관측이다.
임종룡 회장도 NH농협금융에 내부지분이 없긴 마찬가지다. 하지만 최원병 농협중앙회 회장을 비롯한 경영진이 전폭적인 지원에 나서면서 상대적으로 훨씬 수월한 게임을 할 수 있었다는 분석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임영록 회장이 지나치게 눈치를 보다가 최근 어수선한 내부 분위기를 추스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놓친 셈”이라며 “KB금융으로선 M&A 잔혹사가 다시 한번 재연됐다”고 평가했다.
이에 대해 KB금융은 "현재 현대증권과 동양증권 등 중대형 증권사 매물은 계속 나오고 있는 상황"이라며 "아깝게 이번 우투증권 인수에 실패했지만 앞으로도 기회는 충분히 있다고 생각한다"는 입장을 내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