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 1.75, 1.7, 1.6, 1.55, 1.5
무슨 암호냐구요? 아닙니다. 현대자동차와 국민카드 간 자동차 복합할부금융 가맹점 수수료율인데요. 양 측의 협상과정에서 나왔던 숫자들입니다. 가맹점 계약 만료일이 지난달 말 끝나고 협상 기한을 두 차례나 연장할 정도로 양측의 입장이 팽배했었는데요. 결과적으로 금융감독원이 마지노선으로 정한 1.5%로 정해지면서 가맹점 계약 해지라는 최악의 상황은 모면했습니다. 금융감독원 덕분(?)인데요.
처음부터 금감원은 이번 건에 깊숙이 개입했습니다. 복합할부금융 25%룰 도입, 검찰 및 공정거래위원회 제소 등 초강수를 띄우며 현대차를 압박하는 방식으로 말이죠. 그런데 사실, 잘 먹혀들지를 않았습니다.
현대카드·현대캐피탈을 맡고 있는 정태영 사장에게 현대차를 설득해보라고도 했습니다. 정 사장은 아시다시피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의 사위가 아닙니까 . "(정태영 사장은) 스타 사위 아닙니까?. 안되더라고요. 이원희 현대차 재무담당 사장한테는 안 되는 것 같더라고요." 양측의 합의 발표 직후 금융당국 한 고위관계자의 얘깁니다. 금융당국으로선 감독하에 있는 현대카드·캐피탈을 눌러서라도 빨리 마무리 짓고 싶었겠지만 잘 안됐다는 겁니다. 같은 이유로 윤종규 KB금융 회장 내정자도 이원희 사장을 만나러 갔었고요.
현대차는 애초 기존 수수료율 1.85%를 0.7%로 낮춰달라고 요구했다가 나중에 1.0~1.1%로 수정제안 했습니다. 국민카드는 1.75%까진 내려줄 수 있다고 했지만 협상은 더는 진전돼지 않았습니다. 현대차는 오히려 협상을 한 차례 더 연장하면서 계약 해지 가능성을 거론했지요. 이게 지난주 초 얘기인데요.

그러다 지난 주말 협상이 급진전하면서 1.55% 얘기까지 나왔습니다. 그리곤 협상 만료일이었던 어제(17일) 아침, 금융당국은 "1.5% 정도로 합의가 된 것 같다"며 "계약서 작업만 남은 것으로 안다"고 말했습니다. 이상한 일입니다. 통상 이런 일은 당사자 간 합의 사항이어서 금융당국에서는 말을 아끼는 편인 데 친절하게 수수료율까지 알려주면서 합의가 됐다고 얘기해주니 말이죠.
더 이상한 것은 정작 당사자는 이런 사실을 알지 못했다는 겁니다. 당국의 언급과 달리 국민카드 쪽에선 "아직 협의 중"이라는 겁니다. 어제 저녁까지 도요. 그러다 밤 9시가 다 돼서야 1.5%로 합의됐다고 발표를 했고요. 이 시간 동안 국민카드는 현대차와 협상을 한 게 아니라 금융당국과 협상(?)을 했던 게 아닐까요. 1.5%로 낮추자는 당국과, 그건 좀 힘들다며 버텨보고자 했던 국민카드.
물론 금융당국이 나섰기 때문에 그나마 가맹점 계약 해지와 그에 따른 카드 소비자들의 불편이라는 최악의 상황은 막을 수 있었지요. 그것을 부인하는 것은 아닙니다. 금융당국도 어쩔 수 없었을 겁니다. 이 일이 더 커져서 득 될게 없으니까요. 다만 미봉책이 아니길 바랄 뿐입니다. 당장의 계약해지를 막으려다가 자칫 일을 더 키우는 결과를 초래하지 않을까 하는 노파심입니다.

국민카드 측에선 그동안 적격비용 이하라 수수료율을 낮추기 어렵다는 입장이었지요. 당국은 이 적격비용을 산출하는 근거가 됐던 '방법서'를 뜯어보겠다고 합니다. 정말 적격비용에 문제가 있는지 보겠다는 것이지요. 수수료가 0.35%나 낮아지면서 카드사 입장선 상품 운영에 대한 메리트가 크지 않고, 캐피탈사 입장에서도 복합할부의 금리경쟁력을 낮추는 요인이 될 것이라고도 보고 있습니다.
또 기존 카드거래 수수료율은 그대로 1.85%를 유지하되 복합할부에 대해서만 다른 수수료를 적용하는 것 역시 논란의 소지가 있어 보입니다. 여신전문금융업법 감독규정엔 가맹점의 특수성을 고려해 적격비용을 차감 조정할 수 있다고 나와 있긴 합니다. 다만 그동안 당국과 카드사가 한 가맹점에 대해 한 개의 수수료 체계를 가져가야 한다는 원칙을 강조해왔던 점에 비춰보면 당국의 입장변화는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카드사들은 걱정입니다. 앞으로 대형가맹점이나 영세가맹점들이 유사한 요구를 할 때 반박논리가 약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또 내년 2월과 3월에 현대차와의 계약만료일이 다가오는 신한카드와 삼성카드도 마찬가지이고요. 사실 국민카드의 복합할부 취급 점유율은 지난해 말 기준으로 4% 수준밖에 안된다고 합니다. 신한카드와 삼성카드는 각각 14%, 26% 수준이고요. 이들 카드사들의 타격이 더 크겠지요.
지난 2012년 신 가맹점 수수료체계를 만들 때로 돌아가봅니다. 당시 정치적인 필요에 따라 영세가맹점의 수수료를 낮추고 대형 가맹점의 수수료 부담을 높이는 구조가 만들어졌죠. 그 때 김석동 금융위원장은 "가격은 시장에서 정해져야 한다"며 신 가맹점 수수료체계에 반대를 하기도 했습니다. 첫 단추를 잘 못 꿰어서일까요. 시장의 가격문제에 당국이 개입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만들어지고, 또 원칙에는 다소 어긋나는 결론이 나오고, 이런 상황들이 앞으로도 되풀이 되지 않을까 걱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