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재벌 소유의 보험사나 카드사 등 제2금융사에서도 오너가 최고경영자(CEO) 등 임원에 대한 인사권을 마음대로 휘두르는 게 어려워질 전망이다. 오는 6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와 본회의 통과를 앞둔 '금융사 지배구조법' 때문이다.
국회 정무위원회는 지난달 30일 여야 합의로 '금융회사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 제정안을 의결했다. 이 제정안에는 그동안 은행과 저축은행 도입됐던 대주주 적격성 심사를 보험·증권·카드사 등 제2금융권으로 확대하는 내용이 담겼다.
또 지난해 말 금융권에서 논란이 됐던 임원후보추천위원회(임추위) 설치 등 이사회 권한을 강화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법안 통과 시 임추위는 CEO와 사외이사, 감사를 선임하게 된다. 여야의 큰 이견 없이 정무위를 거친 만큼 법사위와 본회의에서도 무리 없이 통과할 것으로 전망된다.
◇ "법적 근거 없다" 비판에 지배구조법 논의 점화
금융사 지배구조법은 정부가 지난 2012년부터 제정을 추진해왔지만, 국회에서 3년 가까이 제대로 논의되지 않고 표류해왔다.
3년 묵은 제정안에 대한 논의가 점화된 것은 지난해 말 정부가 금융사 지배구조 모범규준을 만들면서부터다. 금융위는 당시 'KB금융 사태'로 금융사 지배구조의 취약성에 대한 지적이 제기되자 법률 제정 이전에 일종의 가이드라인(모범규준)을 내놨다. 경영진을 보다 투명하고 공정한 절차에 따라 뽑자는 취지다.
하지만 은행 위주의 모범규준을 만들다 보니 주인이 분명한 보험사나 카드사에 맞지 않는 규정인 데다가 '경영권 침해' 소지가 크다는 비판이 제기했다. 특히 제2금융권 임추위 설치에 대한 재계의 반발이 컸다. 재계는 당시 '모범규준'의 법적 근거도 없다고 꼬집었다. 금융위는 결국 한발 물러서야 했다.
재계의 날 선 비판은 오히려 잠자고 있던 국회의 논의를 재점화했다. 당시 야당은 금융위의 모범규준이 재벌의 입김에 밀려 후퇴했다며 원내대표까지 나서서 본격적인 법제화 논의를 공언했고, 결국 4개월여 만에 법안을 처리했다.
◇ 금융 전문성 등 CEO자격 기준 마련에 '고심'
이번 금융사 지배구조법 논의에 대한 재벌 금융사들의 관심은 '제2금융권 대주주 적격성 심사'에 쏠렸다. 대주주 적격성 심사에 적용하는 법률의 범위와 제재 방식 등은 정하기에 따라 전체 그룹사의 경영권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이다.
실제 통과된 법률안에 재계의 의견은 상당 부분 반영됐다. 심사 대상은 최대주주 1인으로 축소됐고 적용 법률에 횡령, 배임 등은 빠졌다. 또 적격성 심사요건 미충족 시 받게 되는 제재에는 '주식처분명령'이 포함되지 않았다.
이에 따라 재벌 계열 금융사들은 임추위 등 이사회 권한 강화 방안까지 반대하기 어려운 입장에 처했다. 오히려 이번에 통과한 대주주 적격성 심사제도가 '앙꼬 없는 찐빵'이라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어 노심초사하는 모습이다. 한 대형 보험사 관계자는 "지난해 말 모범규준에 반발했던 것은 임추위 설립에 상위법 근거가 없다는 것이지 내용 자체를 반대한 것은 아니었다"며 "국회에서 법률이 마련된 만큼 그에 따르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했다.
이들은 대신 이사회의 '최고경영자 승계계획' 등에 CEO 자격 규정이나 후보군을 어떤 식으로 적용할지를 고심하고 있다. 예를 들어 CEO 요건으로 금융 관련 전문성을 '포괄적으로' 정하거나, 각 계열사의 부사장단을 일괄적으로 후보군으로 정하는 등의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그룹 차원의 인사 시스템을 흔들지 않는 최적의 방안을 찾고 있는 셈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이와 관련 "최고경영자 승계계획 등 지배구조 정책수립의 세세한 내용은 각 금융사가 정하면 된다"며 "대신 해당 절차 등을 투명하게 공개하라는 것이 정부의 입장"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