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권단이 지난 2013년부터 2014년 2월까지 4조 5000억 원에 달하는 신규자금 지원을 결의했는데 이 가운데 집행하지 않고 남은 돈이 4500억 원이다. 이 돈을 투입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신규지원이 아니라는 게 금융당국과 산업은행의 설명이다.
또 실사결과 4500억 원을 지원하면 1년 후에 채권단 익스포져는 오히려 그보다 큰 5000억 원 이상 줄어든다는 것이 지원 논리이다.
◇ 신규지원 아닌 듯, 신규지원인 듯
산업은행은 STX조선을 지원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조만간 채권단회의를 열어 이런 실사 결과와 4500억 원 지원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이 4500억 원은 애초 채권단 신규지원액 4조 5000억 원 결의 당시 중국 대련조선소 청산 과정에서 선수금환급보증(RG) 콜 이행 등 보증채무와 손해배상비용 등의 용도로 쓰일 돈이었다. 하지만 예상보다 적게 들면서 실제 집행되지 않고 남은 돈이다.
결의해 놓고 안 쓴 돈이니 신규자금 지원보다 부담이 덜하다. 언뜻 보면 신규지원이 아닌 것도 같다. 그동안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란 비판을 받아온 산업은행으로선 그나마 부담을 덜 수 있기도 하다. 이미 한차례 결의를 했던 사안이어서 채권단 입장에서도 완전한 신규자금 지원보다는 추가 의사결정도 수월할 수 있다.
하지만 용도가 달라졌고, 결국엔 새롭게 돈이 나가면서 대출이 일어나는 것이어서 결국 '눈 가리고 아웅'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 1년 후 대출 잔액 4500억 이상 감소하니 더 낫다?
산업은행이 지원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은 실사 결과 4500억 원을 지원하면 1년 후 회수되는 금액이 더 많다는 논리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실사 결과 1년 후 투입자금(4500억 원)보다 더 많은 5000억 원 이상의 대출 익스포져(RG 포함)가 줄어드는 것으로 나왔다"며 "지금 법정관리 가서 RG를 물어주는 것보다 채권단 입장에서 더 나을 수 있다는 게 산업은행의 생각"이라고 말했다.
내년에 건조를 끝내고 인도하는 선박들이 대거 몰려있어서 자금 지원을 통해 건조만 이뤄지면 RG 잔액을 중심으로 익스포져가 줄어든다는 얘기다.
▲ STX조선 3분기 분기보고서 기준 |
◇ '눈 가리고 아웅'식 지원에 1년짜리 호흡기
하지만 이 돈이 중장기적인 회생 가능성을 보고 지원되는 게 아니라 내년 한 해를 버틸 수 있는 '1년 짜리 호흡기'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역시 논란의 불씨를 남기고 있다.
채권단 관계자도 "앞으로 방향성이 없는 상태에서 1년 연명시키는 지원에 불과하다"고 꼬집었다. 내년 이후 똑같은 상황이 되풀이될 수 있다는 우려다. 금융당국 관계자도 "대우조선의 경우 돈만 넣으면 살아날 수 있는 상황이지만, STX조선은 100% 산다는 보장이 없다"면서 "그것은 내년이 지나봐야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일부 은행에서 반대매수청구권을 행사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우리은행의 경우 관련 채권 4000억 원을 고정이하여신(회수의문)으로 분류, 충당금을 많게는 100%까지 쌓아놓은 상태다. 털고 나와도 충당금 등의 부담이 거의 없는 상태다. 채권 금액이 많지 않고 여신분류를 보수적으로 한 은행들이 선택할 수 있는 카드다.
산업은행이 정확한 의결권 비율을 공개하지 않고 있지만, 3분기 말 STX조선 여신(RG 제외) 현황을 기준으로 보면 산업은행, 수출입은행, 농협은행 세 곳의 채권비율은 79%에 이르기 때문에 75% 이상 동의로 이뤄지는 안건 통과는 어렵지 않은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