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장의 남은 임기 3개월. 이맘때면 언제나 산업은행의 앞길은 흐릿하다. 내부 인사들이 후계자로 거론되는 다른 은행과 달리 외부 인사가 새 수장으로 오고, 누가 올지도 가늠할 수 없어서다.
이번엔 총선과 새 수장 선임 시기가 겹친다. 정부와 정치권 내 역학관계가 급변하는 시기에 누가 산업은행 회장 자리에 앉을지 더욱 오리무중이다. 안개에 미세먼지까지 더 해져 시야가 답답한 형국이다.
◇ 차기 회장 손발 맞출 인사 마무리
박근혜 정권 출범과 함께 산업은행 수장으로 취임한 홍기택 회장. 이제 곧 임기 3년을 채우는 그는 요즘 '마지막 과제'를 수행하고 있다. 조직 개편과 임직원 인사다. 얼마 전 조직 개편안을 내놨고, 최근 임원 인사 구상을 마쳤다. 다음 주까지 임원과 부서장, 직원 인사를 마무리할 계획이다.
이번 인사는 홍 회장 본인과 일할 이들이 아니라, 차기 회장과 함께할 진용을 짜는 작업이다. 그렇다고 해도 홍 회장의 의중이 가장 중요하다. 김수재·이해용·민경진 등 세 명의 부행장이 임기를 마쳐, 큰 폭의 인사가 이뤄진다. 합병 전 정책금융공사에서 넘어온 나성대 간접금융부문 부행장의 경우 3년 간 임원으로 지냈지만, 이번엔 자리를 유지할 전망이다.
이번 인사에선 특히 조직을 본부에서 부문으로 격상한 '구조조정부문' 부행장이 누가 되느냐에 관심이 쏠린다. 정부가 올해 기업구조조정 가속화를 공언한 만큼, 새 수장과도 가장 많이 손발을 맞춰야 할 자리다.
◇ 지난해부터 '정권 실세' 거론
당장 관심은 임원 인사에 쏠려 있지만, 사실 올해 산업은행의 가장 큰 변수는 바로 신임 회장이다. 'MB맨' 강만수 전 회장과 '친박 핵심' 홍 회장의 면면에서 알 수 있듯, 산업은행 회장에는 정권의 핵심 인물이 내려온다.
이미 지난해부터 새 수장 후보군으로 현오석 전 경제부총리나 정찬우 금융위원회 부위원장 등 정권 '실세'들이 거론돼 온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물론 정부와 정치권 인사들이 총선 출마 여부 등을 확정하지 않은 상황이라 아직 '뜬소문'에 불과한 얘기들이다. 관가에서도 유일호 경제부총리가 취임하면 기획재정부와 금융위원회 등에서 고위급 인사가 연쇄적으로 일어날 예정이어서 잠재후보군이 더욱 늘어난다.
◇ 구조조정 전문 인사 필요 목소리
홍 회장은 임기 내내 STX조선과 대우조선 등 기업 구조조정 문제로 홍역을 치렀다. 그가 금융회사 실무 경험이 없는 '교수 출신' 인사라서 이런 문제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는 평가도 나왔다. 이에 따라 다음 수장은 구조조정 이슈를 원활하게 이끌어 갈 수 있는 인사가 와야 한다는 얘기가 많다.
실제 산업은행은 올해 정책금융 공급 목표를 줄이고 영업점별 잔액 목표를 폐지하는 등 구조조정 전열 정비에 나서고 있다. 산업은행의 한 임원은 "올해는 부실기업 증가가 예상돼 산업은행 역시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며 "자금 공급보다는 관리에 방점을 찍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산업은행 안팎에서 우려하는 것은 이런 와중에 느닷없이 전문성 없는 '정무형' 인사가 내려오는 것이다. 정권 임기 말 자리 챙겨주기 등의 변수를 고려하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그만큼 정권 후반기로 가는 길목에서의 산업은행장 인사는 오리무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