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말뿐인듯하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금융당국이 강조해온 기업 구조조정도 그렇고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 과당경쟁 자제 경고도 마찬가지다.
진웅섭 금융감독원장이 또다시 선제적인 기업 구조조정을 강조하고 나섰다. 정작 시장에서는 기업 구조조정을 하라는 것인지 지원을 하라는 것인지 헷갈릴 정도라는 지적도 나온다.
▲ 사진=금융감독원 |
◇ 구조조정 독려보단 기업 애로사항 청취
금융당국은 구조조정이 이슈로 부상한 이후 통상 주채무 계열을 대상으로 한 정기신용위험평가를 앞두고 은행 임원들을 부른다. 구조조정 방향을 설명하고 독려하기 위한 자리다. 이번엔 좀 달랐다. 어제(7일) 열린 '기업 구조조정 간담회'는 은행 쪽에선 4개 은행 부행장만 참석했고, 현재 구조조정이 진행 중인 기업 대표 23명을 초청했다.
이 자리에 참석한 은행 한 임원은 "이날은 구조조정 기업들의 애로사항을 청취하는 자리였던 것 같다"며 "잘 해줘서 고맙다는 얘기도 있었지만 추가 대출을 잘 안해주려고 한다거나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등의 얘기들이 많았다"고 전했다.
은행 관계자들도 "기업 구조조정을 강조하려했다면 은행 사람들만 불렀겠지만 이날은 기업의 현황이나 의견을 들어보기 위한 행사나 목적이 짙었던 것 같다"고 꼬집었다.
실제 진 원장도 사전에 배포한 모두발언을 통해 "옥석을 가린후 회생시키기로 결정했다면 과감하고 신속한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고 채권은행에 당부했다. 또 "정상화가 가능한 기업에 대해 지원을 미루는 사이 기업은 정상화의 기회를 놓치거나 구조조정 비용이 눈덩이처럼 불어나 더 큰 부담으로 돌아오지 않도록 각별히 유의해야 한다"고도 주문했다.
과감한 옥석가리기보다는 과감한 지원에 방점이 찍힌 듯한 분위기다. 그동안 그러했듯 금융당국의 구조조정 강조가 선언적인 수준이라는 것이다. 조선 해운 철강 등의 구조조정을 강조했던 게 불과 몇달전인데 그때나 지금이나 뚜렷한 성과가 보이지 않고 있다. 현대상선 정도만 자율협약을 추진하고 있지만 이 역시 조건부 협약이고, 용선료 협상이나 사채권자들의 만기 연장 등에 가시적인 성과는 없다.
◇ 버젓이 이뤄지는 ISA 출혈경쟁
말뿐인 것으론 ISA도 마찬가지다. 같은 날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은행 일임형 ISA 출시를 앞두고 10개 은행 담당 임원을 불렀고 오늘(8일)도 실무자를 대상으로 한 설명회를 열었다. 과당경쟁을 자제하고 불완전판매 예방을 당부하는 자리다.
그러나 이런 당국의 제스처에도 은행들은 버젓이 출혈경쟁을 벌이고 있다. 신탁형에서 실적이 뒤쳐졌던 은행들이 더 센 경품을 들고 나왔다. 국민은행은 신규 가입 이벤트로 현금 5000만원을 내걸었다. 추첨을 통해 1등 2명에게 500만원씩 주는 등 당첨자에게 나눠 주는 식이다. SC제일은행은 연 8%의 ISA전용 예금상품을 내놨다. 1년 만기 정기예금 연 2%에 매월 추첨을 통해 당첨자에게 6%포인트의 우대금리를 얹어준다. 고수익 투자상품에서나 나올법한 금리다.
출혈경쟁은 이미 신탁형 ISA 출시때부터 시작됐다. 은행에선 보기 드물게 자동차 경품이 등장했고, 은행 영업점의 불가능한 하루치 계좌 유치 실적 등을 볼 때 불완전판매 가능성과 실명확인 여부에 대한 논란도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당국은 선언적인 경고만 날렸다. 현장점검 등의 강력한 대응은 여전히 계획하지 않고 있다. 은행 관계자들 사이에선 금융당국이 ISA 흥행을 위해 사실상 방조하고 있다는 분위기마저 팽배하다. 이것이 출혈경쟁 2라운드를 유발했다. 은행권 관계자는 "신탁형은 주로 예금상품이니 큰 탈이 없지만, 일임형은 아직 전산도 완벽하지 않고 준비가 미흡한 상태여서 미끼상품 등을 내세워 가입시키는 게 더욱 위험해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