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이 금융회사가 핀테크기업에 투자·인수할 수 있는 길을 확 열었다. 지난 4일 발표된 '금융회사의 핀테크 투자 가이드라인'을 통해서다.
그간 금융회사는 은행법·금융산업구조개선법·금융지주회사법 3중 규제 탓에 비금융회사에 투자할 수 없었다. 2015년 금융위는 전자금융업·전자금융보조업·금융전산업·신용정보업·금융플랫폼업에 한해 출자 제한을 풀어주는 유권해석을 내렸다.
하지만 '원칙 금지, 예외 허용'이라는 포지티브 방식은 한계가 있었다. 이한진 금융위 전자금융과장은 "그때(2015년)와 지금의 핀테크는 많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이번에 발표된 가이드라인은 '원칙 허용, 예외 금지'라는 네거티브 방식이다. 원칙적으로 금융회사가 핀테크기업에 출자하거나 핀테크기업을 자회사로 소유할 수 있게 됐다.
구글·아마존 등 빅테크기업이 금융산업에 진출하고 골드만삭스 등 기존 금융회사가 핀테크기업을 인수하는 등 급변하는 세계금융시장에 뒤처진 국내 금융사가 플랫폼 경쟁력을 키울 발판이 마련된 것이다.
정부가 뒤늦게나마 규제를 푼 것은 다행이지만 아쉬운 대목도 보인다. 일본을 따라 규제를 푸는 방식이다.
정보통신기술, 그 밖의 디지털 신기술을 활용해 금융산업 또는 금융소비자에 기여하거나 기여할 것으로 예상되는 사업.
금융위와 금감원은 이번 가이드라인을 통해 핀테크기업에 대해 이렇게 정의했다. 기여가 예상되는 사업까지 포함한 것은 적극적으로 규제를 풀겠다는 정부의 의지다. 하지만 그 의지는 일본 법에서 찾을 수 있다.
정보통신기술 기타 기술을 활용해 은행업의 고도화 또는 은행 이용자의 편의성 향상에 기여하는 업무 또는 기여한다고 예상되는 업무를 수행하는 회사를 소유 가능(일본 은행법 제16조의2).
일본 은행법은 2017년 6월 개정됐다. 한국 정부가 일본법을 참고해 몇몇 단어만 바꿔 가이드라인을 만든 셈이다.
금융위는 보도자료에도 '일본 은행법 제16조의2' 조항을 실었다. 지난 4일 브리핑에서 이한진 과장은 "항상 일본보다 3~4년씩 늦는다"며 "법개정이 어려워 이번에 가이드라인으로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일하지 않는 국회' 때문에 고민하는 모습이 엿보인다.
일본은 독일법을 빌려 썼고, 한국은 일본법을 빌려 썼다. 한국법을 보면 아직 일본법의 잔재가 많이 남아있는 것도 현실이다.
김한균 형사정책연구원 연구실장은 지난해 한 방송에 출연해 이렇게 말했다.
"우리 형법에 모병이적(제94조) 죄가 있다. 적국을 위해 병사를 모집해 반란을 일으킨 사람을 처벌하는 것이다. 1940년 일본 전시내각이 일본 법무성에 조선이 광복군을 모집해 중국과 편들어 일본에 대적할 수 있으니 이 조항을 꼭 넣어 달라했다." 광복군을 처벌하기 위한 조항이 아직 국내 형법에 남아있는 것이다.
이런 잔재가 남아있으니 금융위도 아무렇지 않게 보도자료에 '일본 법' 조항을 넣고 가이드라인을 만들때 참고했을 지 모른다. 안타까운 일이다.
시대가 바뀌면 새로운 법이 필요하다. 핀테크기업 정의 하나 내리지 못한채 일본 법전만 뒤지고 있을 수 없다. 변화에 빠르게 대응하고, 대응 방안을 치열하게 고민하고, 사회적 합의를 통해 답을 찾아야 한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최근 일본의 수출규제 관련 "국내 금융은 일본 의존도가 크지 않다"며 "자금조달 대체가 가능하고 외환 보유는 충분하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하지만 최 위원장의 자신감과 달리 아직 국내 금융당국은 일본에 많이 의존하고 있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