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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금융보복?]①22년전 트라우마

  • 2019.08.07(수) 16:47

일본 금융보복 가능성에 민감한 여론
"IMF외환위기 촉발원인은 일본은행 자금회수" 영향 커

[글 싣는 순서]①22년전 트라우마 ②내구력 강해진 한국 금융 ③가능성 낮지만 파급력 크다

최근 호사카 유지 세종대 정치학 교수는 언론 인터뷰에서 "일본은 한국에 '제2의 IMF외환위기'를 일으키는 것이 목표"라는 일부 일본 우익인사의 주장을 전달했다.

백색국가(수출우대국가) 제외 등 한·일간에 경제전쟁이 일어난 가운데 호사카 교수의 발언에 여론은 민감하게 반응했다. 호사카 교수에 따르면, 이 발언이 본인의 의견으로 오해를 사면서 다양한 곳에서 연락이 왔다.

최종구 금융위원장도 직접 호사카 교수에게 전화를 걸어 "잘못된 정보에 기초한 잘못된 판단"이라고 반박했다고 한다.

호사카 교수는 다른 언론 인터뷰에서 "한국의 금융권이 일본보다 신뢰도가 높은 곳이 상당히 많다"고 했지만, 여전히 일본의 금융제재에 대비해야한다는 목소리는 존재한다.

한국이 일본의 금융제재에 극도로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는 뭘까. 시계를 1997년으로 돌려보자.

1997년 IMF 외환위기의 원인은 여러가지다. 경상수지 적자 누적, 은행의 건전성 악화, 재벌의 과잉투자 등이 동시다발적으로 터졌다.

치명타는 '단기외채의 증가'였다. 성태윤 연세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2010년 펴낸 '금융위기와 구제금융' 논문을 통해 "외환위기 가장 큰 원인으로 외채의 증가, 그 중에서도 단기외채의 증가를 꼽는 시각이 많다"고 분석했다.

이 논문은 "정부의 암묵적인 지급보증 하에 은행은 장단기외채를 유치하는데 앞장섰고 기업은 부채를 늘려 규모를 키웠다"며 "태국·인도네시아에서 시작된 아시아 경제위기가 전파되자 외국인은 만기가 도래한 외채를 서둘러 인출했고, 금융기관의 지급불능 상태로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서둘러 외채를 인출한' 외국인은 누구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이제민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이 2016년 쓴 '한국 외환위기의 성격과 결과'에서 찾을 수 있다. 이 논문은 "외환위기를 촉발시킨 직접적 원인은 1997년 여름 일본은행들이 자금을 회수하기 시작한 것"이라며 "갑작스러운 자본 유출은 한국의 은행이 감당할 수 없는 사태였다"고 분석했다.

1999년 한국은행이 IMF 환란 조사특위 보고자료로 발표한 '1997 외환위기의 상황과 경과'에서도 위기진행과정 중에 일본이 있다고 지목했다. 1997년 1월 일본 단자회사가 일본에 있는 한국계 금융기관 지점의 자금공여를 중단했고, 3월말 결산을 앞둔 일본계 은행들이 자금을 회수하면서 국내 금융기관의 자금사정은 악화되고 외환보유액은 큰 폭으로 감소했다는 것이다.

일본 은행이 자금 회수에 나선 이유는 뭘까. 1997년 재정경제부가 발표한 '1997년 경제위기의 원인, 대응 및 결과'는 "일본계 상업은행들은 국제결제은행(BIS) 비율 8%를 맞추기 위해 기존 대출을 회수할 수 밖에 없었다"고 분석했다.

지난달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이 발간한 '일본 금융자금의 회수 가능성 및 파급영향 점검' 보고서는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 상황에서 일본계 금융기관의 자금 회수가 국제 자본유출의 촉발 계기(trigger)로 작용한 사례"라고 표현했다. 일본이 외환위기의 방아쇠를 당겼다는 얘기다.

김효상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해외 자금중 일본 비중이 40%가 넘을 정도로 의존도가 높았다"며 "일본이 자금을 먼저 회수하면서 다른 외국계은행도 자금을 빼기 시작했다. 당시 서든스탑(sudden stop, 급격한 자본유출)은 일본에서 시작됐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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