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속담은 이미 잘못된 뒤에는 손을 써도 소용없다는 뜻이지만, 어찌보면 현실적인 문제 해결법이다.
미리 외양간을 튼튼하게 만들어 소를 잃지 않으면 좋겠지만 대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예상치 못한 위기가 닥쳐서야 문제점이 보이기 마련이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튼튼한 외양간에서 소를 잃어버렸을 때다.
"투자자 보호 체계는 훌륭했다."
지난 5일 더불어민주당 김병욱 의원이 주최한 'DLF(파생결합펀드) 사태로 본 설계·판매과정의 소비자보호 문제 토론회'에서 전문수 변호사(법무법인 로고스)가 한 말이다.
그가 이번 DLF 사태를 계기로 관련 법령을 자세히 살펴본 결과는 "2009년 자본시장법(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이 도입되면서 굉장히 좋은 제도들이 완비됐다"이다.
자본시장법의 소비자보호 핵심장치는 적합성 원칙이다. 금융사는 면담·질문 등을 통해 투자자의 투자목적·경험, 재산상황 등 정보를 파악하고 그에 적합하지 않은 투자는 권유해선 안된다(자본시장법 46조). 이른바 '너의 고객을 알라(Know your customer)'는 원칙이다.
10년전에 튼튼하게 고친 '외양간'에서 DLF에 투자한 고객들은 수천억원의 돈을 잃어버렸다. 왜일까.
전문가들은 은행의 '(직원들에 대한) 영업 압박'을 꼽았다. 법보다 영업압박이 더 무서웠던 것이다.
조영은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이 사건이 발생한 이유는 제도가 없어서가 아니다"며 "제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저금리 기조가 지속되면서 예대마진이 떨어진 은행은 영업압박을 해서라도 수수료수익을 높여야 했다"고 분석했다. DLF 피해자가 집중적으로 나온 우리은행과 하나은행의 성과지표(KPI)는 경쟁사대비 비이자수익 배점이 최대 7배 높았다.
금융감독원은 지난주 DLF 검사를 마무리했다. 다음주 금융위원회는 두달간 검사 결과와 대책을 발표한다. 벌써부터 언론에선 'DLF에도 숙려기간 제도를 적용하고 사모펀드 위험등급제를 도입 검토한다'거나 '사모펀드 최소투자금액 상향 문제를 두고 금융위와 금감원이 접점을 찾지 못했다' 등의 전망이 나오고 있다.
금융당국이 어떻게 외양간을 고칠지는 모르지만 이번 사태가 제도가 허술해서 벌어진 것이 아니란 점은 되새겨야 한다. 섣불리 규제를 더 옭아맸다간 한국 자본시장에 이제 막 뿌리를 내린 사모펀드 시장이 고사할 수 있다.
지난달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DLF 사태에 대해 "사모펀드가 갑자기 성장하면서 생긴 성장통"이라고 했다. 당시 그는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고 말했다가 언론과 국회에서 뭇매를 맞았지만, 그는 여론에 휩쓸려 무작정 금융사에 낙인을 찍지 않았다. 사모펀드는 국내시장에서 도려내야할 암적 존재가 아닌, 더 키워야할 성장판인 셈이다.
이번 사태의 원인은 은행의 내부통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가운데 몰아친 영업압박, 미스터리 쇼핑과 민원 등 경고음을 무시한 금융당국 등에 있다. 4대 시중은행 중 선두권인 신한은행과 국민은행이 DLF를 걸러낸 것을 보면 3~4등 은행의 조바심이 영업압박의 강도를 더 키운 것으로 보인다.
하나은행과 우리은행이 조바심을 내지 않았다면, '너의 고객을 알라'는 적합성 원칙만 지켰다면, 이번 사태는 커지지 않았을 것이다. 적어도 리스크에 돈을 건 투자자만 돈을 잃었을 것이다.
이번 사태의 해결법은 간단하다. 새 규제를 만들 것이 아니라 법대로 처벌해 시장에 경각심을 주어야 한다. 치매노인에게 DLF를 판매한 행원, 투자자성향분석서를 멋대로 작성한 행원, 직원들을 몰아세운 경영진은 책임져야 한다. 우리은행과 하나은행은 조바심을 버리고 건전한 내부 경쟁을 이끌어야 한다. 최근 우리은행의 일부 DLF가 원금손실 구간을 회복했다고 안심할 상황은 아니다.
엉뚱한 처방으로는 DLF 사태 재발을 막을 수 없다. 소비자보호 체계는 이미 훌륭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