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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금융위는 '비유의 달인'

  • 2020.02.19(수) 17:45

사모펀드 사태 해명에 축구·청동기·사형제 등 비유 동원
요지는 '부작용 있다고 시장 죽일 순 없다'

"항상 5대 0으로 이길 순 없는 거 아닙니까? 3대 1, 2대 1 식으로 골을 먹기도 하는 거니까…."

지난 18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김태현 금융위원회 사무처장이 축구 얘기를 꺼냈습니다. 금융위의 2020년 업무계획을 설명하던 자리였습니다.

해외금리 연계 파생결합펀드(DLF), 라임펀드 사태 등 최근 잇따르는 각종 금융사고에서 금융당국이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오자 김 처장은 축구를 예로 들며 규제완화 자체가 잘못된 결정은 아니라고 해명했습니다.

상대의 공격을 막지 못했다고 경기에 진 건 아니라는 겁니다.

DLF와 라임사태와 관련해 금융위는 일관된 입장을 보이고 있습니다. 부작용이 있어도 모험자본 공급 등 사모펀드의 순기능이 커 제도 자체를 수술대에 올릴 필요가 없다는 겁니다.

지난 14일에도 동일한 논리가 등장했습니다. 김정각 금융위 자본시장 정책관은 사모펀드의 현황과 제도개선 방향을 설명하는 자리에서 청동기와 석기시대 얘기를 꺼냈습니다. 그는 "청동기가 살인과 상해수단으로 쓰일 수도 있다. 그렇다고 석기시대에 머물 순 없는 것 아니냐"고 했습니다.

석기는 공모펀드, 청동기는 사모펀드를 의미합니다. 공모펀드에 적용하는 잣대를 사모펀드에 똑같이 들이대선 안된다는 얘기입니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이 19일 정부서울청사 합동브리핑실에서 2020년 금융위원회 업무계획을 설명하고 있다./사진=금융위 제공

19일에는 은성수 금융위원장이 비유의 대열에 합류했습니다. 그는 규제문제와 관련해 사형제 얘기를 꺼냈습니다.

"강한 처벌로 규제혁신을 악용하는 일을 예방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지만, 사형제가 있다고 범죄가 없어지느냐는 논쟁도 있다."

사모펀드의 부작용과 관련해 은 위원장은 처벌이 능사가 아니라는 시각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는 '딜레마'라고 표현했습니다. 규제를 풀면 부작용이 나타나고, 그 부작용을 막겠다고 규제의 벽을 높이면 금융산업의 발전이 더뎌지는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는 겁니다.

틀린 말은 아닐겁니다. DLF와 라임사태 등과 관련해 금융위의 시각은 '벼룩 잡자고 초가삼간 태우랴'라는 속담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한가지 걱정되는 건 있습니다. '가랑비에 옷 젖는지 모른다'는 속담이 있죠. 최근의 일들을 가볍게 여기다 실기하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큰 둑도 구멍 하나로 무너지는 세상입니다. DLF, 라임사태에서 나타난 금융기관의 도덕적 해이가 어쩌면 위기의 전조일지 모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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