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생명이 올들어 종신보험의 최저해지환급금을 지급하기 위한 보증비용을 큰 폭으로 인상한 것으로 나타났다. 삼성생명의 이번 보증비용 인상은 인상폭이나 기본보험료 대비 보증비용 비율 면에서 업계 최고수준이다.
'최저해지환급금 보증비용'은 가입자가 보험을 해지할때 '최저해지환금금'을 보장해주기 위해 보험료에서 떼는 보증비용이다.
일부 보험사는 연간 보증비용으로 한달치 보험료가 나가는 셈인데, 정작 소비자들은 보증비용을 얼마나 내는지도 잘 모르는 상황이다. 보증비용은 해지하지 않으면 비용만 부담할 뿐 혜택을 받지 못한다.
18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삼성생명 등 일부 보험사들은 저금리 장기화와 수익악화 등을 이유로 지난 4월 보험료를 인상하는 대대적인 상품개정을 하면서 보증비용도 올렸다.
◇ 삼성생명, 2.8%포인트 인상..연간 보험료의 한달치가 보증비용
삼성생명이 판매하는 금리연동형 종신보험(보증비용부과형)의 최저 해지환급금보증비용은 지난 3월말까지 기본보험료의 5.7%에서 4월 들어 8.5%로 2.8%포인트 올랐다. 한화생명은 1%포인트 오른 6%, 교보생명은 개정이후 변동하지 않고 그대로 6%를 유지했다.
생보사 가운데 보증비용부과형 종신보험을 판매하는 곳들은 대부분 빅3 생보사보다 낮은 보증비용을 적용하고 있다. 메트라이프생명은 기본보험료의 3.0%, ABL생명 4.5%, 농협생명 4.5%, 오렌지라이프 5.0%, 흥국생명 5.0%, 미래에셋생명 6.5% 수준이다. 보증비용과 인상폭 면에서 삼성생명이 업계 최고 수준이다.
월 10만원의 보험료를 내면 삼성생명의 경우 8500원, 한화생명과 교보생명은 각각 6000원을 보증비용으로 뗀다는 얘기다. 보증비용은 설계사 모집비용 등 사업비와는 별개 비용으로 떼는 만큼 적립금과 해지환급금도 낮아지게 된다.
실제 사망보험금 1억원 기준 20년간 납입하는 삼성생명 통합유니버설종신보험에 가입한 40세 남자의 월 납입보험료는 30만2000원이다. 이중 최저 해지환급금보증비용으로 2만5670원을 뗀다. 1년치 보험료를 계산하면 납입한 보험료는 362만4000원, 보증비용은 30만8040원으로 한달치 납입보험료를 넘는다.
보험사는 시중금리나 운용자산이익률을 감안해 공시이율을 산출하고 매월 낸 보험료에 적용해 적립금을 쌓는다. 종신보험은 사업비가 높아 적립금이 마이너스에서 시작하기 때문에 초기 해지할 경우 보험료를 돌려받지 못한다. 통상 납입기간 1년간은 보증비용을 내고도 해지환급금이 없으며 납입기간 2년을 채운 때부터 해지환급금이 발생한다.
최저해지환급금보증비용은 해지환급금을 지급할 때 공시이율과 상관없이 금리가 더 하락해도 최저한도의 해지환급금 지급을 보증하는데 소요되는 비용이다. 보험사는 이를 소비자들로부터 받는다. 과거 보증비용을 떼고서도 소비자들에게 알리지 않아 민원이 발생하면서 현재 판매되는 상품들은 최저해지환급금을 보장하는 상품에 대해 '보증비용부과형'이라는 이름을 붙여 소비자들이 알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소비자들은 여전히 낸 보험료에서 보증비용으로 얼마가 나가는지는 잘 인식하지 못하는 상태다.
보증비용이 높아지면 월 납입보험료에서 떼는 금액이 많아지기 때문에 그만큼 적립금은 낮아진다. 이는 곧 해지환금금도 낮아진다는 얘기다. 보험사들은 상품개정을 통해 예정이율과 최저보증이율을 낮췄고 시중금리 등에 연동해 변하는 공시이율도 점점 낮아지는 추세다. 즉 소비자들은 기존대비 높은 보험료를 내면서도 보증 받는 이율과 해지환급금은 낮아진데다 더 많은 보증비용까지 내게 됐다.
보증비용을 인상한 보험사들은 "0%대로 낮아진 기준금리와 향후에도 금리하락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보험업계 상품담당 한 관계자는 "예정이율을 낮추고 최저보증이율도 낮췄기 때문에 사실상 보증비용을 높이는 것은 맞지 않다"며 "다만 예정이율을 충분히 낮춰 반영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를 보증비용에 녹인 것"이라고 말했다.
◇ 삼성생명 보증비용 인상폭, 해지율 등 영향 미친 듯
특히 삼성생명 보증비용이 상대적으로 높은 것은 해지율도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각사마다 보증비용을 산출하는 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회사의 경영적인 판단에 따라 보증비용이 달라질 수 있지만 삼성생명이 올린 보증비용은 굉장히 높은 수준"이라며 "복합적으로 프라이싱(가격결정) 요소가 반영되지만 예상보다 조기해지율이 높았을 수 있다"고 말했다.
삼성생명이 계약관리를 잘하지 못해 보증비용이 더 올라갔을 수 있다는 얘기다.
실제 1년간 보험계약이 어느 정도 유지(해지)됐는지 판단할 수 있는 13회차 유지율을 보면 삼성생명의 유지율이 가장 큰 낙폭을 보였다.
2017년 84.2%를 기록했던 삼성생명 13회차 유지율은 2019년 79.9%로 4.3%포인트 떨어졌다. 같은기간 한화생명과 교보생명이 각각 3.7%포인트, 0.5%포인트 하락한 것과 비교해 큰 폭이다.
이에 대해 삼성생명 관계자는 "회사별로 보증비용을 산정하고 기준을 정할 때 회사가 가진 고객 데이터나 기존 산정기준이 다른데다 향후 금리예측을 바라보는 시각도 다르기 때문에 회사별로 차이가 날 수 있다"며 "금리변동 가능성이나 내부 시나리오를 보다 보수적으로 접근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 보증비용 인상 무한대 가능?…"적정성 따져봐야" 지적도
문제는 보험사들이 이처럼 산출한 보증비용이 과연 적정한지 여부를 따질 수 없다는 점이다. 보험사들이 자체적인 판단으로 내부기준을 변경해 보증비용을 계속 올린다고 해도 이를 지적하거나 제지할 수 있는 기준이 없기 때문이다.
실제 보험업감독기준시행세칙에 따른 '보험상품심사기준'에는 해지환급금에 대한 최저보증비용을 계약자가 부담할 때 보증유무를 선택할 수 있는지만 판단하도록 돼있다. 당국이 보험상품을 심사해도 보증비용이 얼마나 되는지, 이 비용이 적정한지 여부는 살펴보지 않는다는 얘기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보험사가 보증비용을 올리겠다고 하면 무한대로 계속해서 올릴 수 있다"며 "보증을 해주기 위한 비용이기 때문에 잘못됐다고 볼 수는 없지만 실제 적정한 수준인지 이를 검증하는 곳도 관련 규정도 없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어 "보증비용을 산출한 기준과 비용이 적정한지를 점검하는 프로세스 도입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